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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리예경 선수가 팀의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인천 럭비경기장을 메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다! 멋있다 코리아!"

북한 선수의 골에 남북공동응원단이 한목소리로 응답합니다. 9월 20일 열린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C조 조별리그 2차전​ 북한과 홍콩전에서의 일입니다. 이날 북한은 홍콩에 5-0 큰 스코어 차로 승리해 조1위를 기록하고 8강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여자축구는 아무리 큰 행사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진 못하죠. 게다가 북한과 홍콩의 경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날 눈에 띈 것은 단연 남북공동응원단입니다. 관중석 대부분이 남북공동응원단으로, 그 수가 3000명 가까이 되어 보였으니까요.

북한이 이번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면서 응원단도 함께 오기로 했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무산되어 북한으로서는 쓸쓸한 경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2000년(6·15공동선언)과 2007년(10·4선언) 남북정삼회담 이후에 한반도에 평화무드가 조성되고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에 남북단일팀이 간간이 논의되던 때도 있었지요.

그러나 달라진 정부정책과 국제정세로 인해 한반도가 경색 국면에 들어서자 지금은 매우 불편하고 때로는 위험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런 배경으로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는 북한 응원단은 물론 거리에 인공기(북한 국기)가 게양되는 것도 어려워졌으니, 남북 관계가 어느 정도로 내몰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남북공동응원단의 출현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민간에서 나서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것, 요즘같이 '종북' 낙인찍기가 횡행하는 정국에서는 사실 쉽지 않지요. 그럼에도 이날 인천럭비경기장에는 관중석의 대부분을 남북공동응원단이 매웠으니, 아직 통일의 열기가 식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다!" 남북단일팀, 가능할까?

그날 현장의 분위기는 매우 뜨거웠습니다. 축구경기를 직접 본다는 것도 그렇고, 북한 선수들의 실력이 홍콩 선수들에 비해 뛰어나 경기 내용도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뜨거운 열기는 무엇보다, 다른 국적이지만 우리와 같은 얼굴로 같은 말을 하는 선수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인천 땅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모습 자체 때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골을 넣은 장면도, 응원단의 열띤 응원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북녘의 선수들이 우리 응원단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그 순간, 응원단 역시 그들을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오랜만인 반가운 만남은 평소 통일이라는 민족적 대의를 잊고 지냈던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가슴 뭉클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저 저 멀리서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 관중석에서 보여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은 역시 우리가 한민족이었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날 태국에서는 AFC 16세 이하 청소년축구대회 결승, 남과 북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북한이 2-1로 이겼다는 사실은 아마 우리나라 많은 축구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듯합니다. 경기도 격렬하게 진행돼서 경기가 끝난 이후에 몸싸움까지도 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도 연출되어 경기와는 무관하게 아쉬움도 좀 남았습니다.

그러나 남과 북이 결승에 올라 승패를 겨뤘지만, 결국 그날의 우승은 '코리아'였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남북단일팀으로 남쪽의 이승우와 장결희 등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의 소중한 재원을 활용하고, 북쪽의 조직력을 결합한다면 세계축구 무대에도 통할 수 있겠다는 짜릿한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기에는 우리가 넘을 산이 아직도 많습니다. 하지만 만나보니 우리가 갖고 있는 어색함과 경계심도 한번에 무너질 수 있을 듯합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서라도 통일에 대해, 민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남북공동응원단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길, 저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백성균 블로그 ssro2000.blog.me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아시안게임, #여자축구, #남북공동응원단, #남북단일팀, #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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