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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 재생산 ,여성주의 투쟁사
▲ 혁명의 영점 가사노동. 재생산 ,여성주의 투쟁사
ⓒ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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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가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여성주의자가 된 뒤에는 어머니가 투쟁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노동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깃들어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 노동을 당연시하고, 절대로 자신만의 돈을 따로 챙기는 일이 없었으며, 한푼이라도 쓸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에게 의존해야 했던 역사 속에서는 얼마나 큰 희생이 감춰져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본문 중-

나는 여성 가장이고 실직 중이다.  내가  실직을 했다고 해서 풀 서비스, 연중무휴 부불노동인 가사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난 주부라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기혼이며 아내라는 직업과 전업주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직업은 전업 주부라고 당당하게  타인에게 소개할 자신이 있는가. 당신은 모임에 가서 당신 자신을 무엇이라고 소개하는가? 당신은 주부라는 직업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으며 노동의 대가로  얼마의 환금(노동)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주부의 가사노동, 한 푼의 금전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여성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주부들의 가사노동의 가치는 월 250만 원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에서는 주부가 가정에서 하는 가사노동이나 재생산 노동은 한 푼의 금전 가치로도 환산되지 않는다. 주부라는 직업을 직업이라 생각하거나 당당하게 전업주부라고 소개하는 일도 쉽지 않다. 주부는 정망 백수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며 가사노동은 노동의 가치를 금전화 할 수 없는 것일까.

<혁명의 영점>(실비아 페데리치. 갈무리)은  여성의 가사노동, 재생산, 여성주의 투쟁사를 다룬 논문이다. 이 논문은 여성들이 남성중심의 자본주의에 어떻게 길들여져 왔으며 한편으로 치열하게 투쟁해 왔는지 소외된 여성의 가사노동에서 우리가 자본에 내어 준 것이 무엇인지, 이 세상을 보살핌과 살림, 돌봄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 1부 가사노동의 이론화와 정치화 ▲ 2부 세계화와 사회적 재생산 ▲ 3부 공유재의 재생산 등 총 3부 13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인류 생존의 틀을 마련했던 돌봄과 재생산 등 여성이 지닌 장점이 정착 생활과 산업화로  자본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부계사회가 되면서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재생산 노동은 여전히 노동과 시장, 자본 축적의 근간을 이룬다. 가정은 분명 일터로 나가기 위한 재충전의 장소요, 쉼의 장소이다. 돌봄 노동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재충전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가사노동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환자를 돌보는 일이나 육아, 살림을 도와주는 일은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일보다 싼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

부불(不拂,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노동)노동이던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이 사회화 하면서 여성의 일자리로 자리했지만 여전이 제대로 된 가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저자에 따르면 자본의 축적을 위해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꿈꿨던 맑스조차 고령자 사회보장이나 노인 돌봄의 문제, 재생산 노동이 자본 축적의 핵심이며 새로운 생산으로 조직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맑스의 관심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동학을 이해하고 계급투쟁이 어떻게 여기에 도전하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자본주의의 동학이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이해하는데 있었다. 고령자의 사회보장과 노인돌봄은 이런 논의에 끼어들지 못했다. 맑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전언을 믿을 경우, 맑스의 시기에는 맨체스터와 리버풀 같은 산업지역의 평균기대수명이 많아야 30세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공장노동자들과 광부 중에는 고령자가 드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맑스가 자본 축적을 위해서나 새로운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해서나 재생산노동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 모두 영국노동자계급이 생활하고 노동했던 끔찍한 상황을 묘사했지만, 맑스는 재생산노동이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서, 또는 투쟁의 과정 속에서 재조직 할 수 있음을 상상하지 못하고 재생산과정을 거의 당연시 하다시피 했다. -본문 중-

저자는 이 책은 일상생활의 변혁과 새로운 형태의 연대 창출에 대한 책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 책을 자신의 예술과 정치적 행동, 암 투병을 통해 '치유의 섬'을 구체적으로 구현해 돌봄의 공동체를 실현한 다라 그린왈드에게 헌정한다.

모계사회로부터 가부장적 부권사회로 변환된 이래 여성의 임신과 출산 돌봄 등 가사 전반에 걸친 재생산 노동은 부불노동이었다.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사회전반에 걸쳐 여성의 노동을 값싸게 이용하면서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가사노동은 여전히 부불노동이었다.

여성주의자들은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 부불노동인 가사노동 투쟁을 해 왔다. 저자는 여성의 가사노동에 내재한 모순이 폭발의 임계점인 유일한 영점( ground zero 핵폭발의 중심점)은 아니지만 혁명적 실천이 가능한 영점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가사노동, 재생산 여성주의 혁명은 탈 인간화에 대한 저항을 넘어 보살핌과 창의성, 돌봄의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여성이 지닌 협력의 역량을 일상적인 활동을 통해 펼쳐 내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재생산 부불노동자인 나는 책장을 덮으며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여성만 사는 섬과 남성만 사는 섬이 있다면 어느 섬이 궁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마도 돌봄, 재생산, 보살핌, 협력에 능한 여성들이 최후의 생존자가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혁명의 영점/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옮김/ 갈무리/ 20,000



혁명의 영점 - 가사노동, 재생산, 여성주의 투쟁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옮김, 갈무리(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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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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