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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잊은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를 가슴에 품고 음악을 들었다.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노래 가사를 받아쓰고, 가슴 졸이며 녹음을 하고, 마음에 오래오래 담아 두었다. 요즘은 클릭과 스킵을 하면서 음악을 빠르게 구하고 듣는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은 다 쓰면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음악을 쉽게 소비한다. 한때는 소녀였고 지금도 소녀라고 믿고 싶은 우리는 [올드걸의 음악다방]에서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마음 깊숙한 곳에 소장했던 노래를 꺼내 듣고, 누군가는 새로 알게 된 노래를 즐겼으면 좋겠다. -저자말


이등병의 편지.
 이등병의 편지.
ⓒ 반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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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사건 가해병사 4명의 기소혐의를 살인죄로 바꾼다는 기사를 보았다.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과 어쩌다가 살인자가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반반이다. 도대체 무엇이 병사들을 살인자로 만들었을까? 폐쇄된 공간, 박탈된 자유, 엄격한 서열관계, 과도한 훈련과 명령, 폭력을 묵인하는 분위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사이로 문득 병영훈련을 간 대학동기에게 실수한 일이 기억났다. 기분 나쁘고 황당했을 친구, 다시 생각해도 미안하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80년대 중반, 대학에 교련 수업이라는 강의가 있었다. 군사훈련이라는 뜻을 가진 남학생들만의 교양필수 과목. 3회 결석이면 바로 입영영장이 날아온다며 다른 강의는 빠져도 교련 과목은 절대로 빼먹지 않던 남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교련수업 중에 병영입소 훈련이 있었다. 일주일간 실제 군대에 입소하여 훈련을 받으니 다른 수업은 자연스럽게 휴강이 되었다. 여대에 다니거나 여학생만 있는 학과에서는 꿈꿀 수 없는 특별한 휴가였다.

미안한 마음에 남학생들에게 우리 여학생들은 위문편지를 쓰기로 했다. 덕분에 휴가를 얻었는데 한통으로 되겠어? 두통, 열통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비뽑기를 하여 편지 대상자를 정했다. 내가 편지를 써야 할 친구는 권군과 모모군. 누구였는지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모모군에게 쓰는 편지는 쉽게 썼다. 모모군의 첫인상, 신입생의 대학 이야기, 병영 훈련 잘 받고 오라는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편지에 썼던 것 같다.

다음 편지의 상대는 권군, 얘가 누구지? 입학하고 한 달 정도 지난 시간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동기들의 이름과 얼굴을 다 알지 못했다. 하루 종일 한 교실에서 생활하는 고등학교와 달리 강의가 있을 때만 모였다가 한마디 말도 안하고 흩어져서 그랬다. 핑계처럼 들리지만 사실이다. 강의실 앞자리에 앉는 나와 달리 권군은 뒷자리에만 앉았을 거다. 틀림없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군인에게 보내는 위문편지처럼 쓰려고 하니 그것은 아니고, 친구에게 쓰듯이 하려니 너무 아는 것이 없고 편지쓰기가 어려웠다. 머리카락을 뽑아가며 머리를 짜내도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만들어 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노래 가사를 베꼈다. 노래가 아닌 척 했다. 집에 있던 LP판을 뒤져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생각되는 노래를 베꼈다. 트윈폴리오, 양희은, 정태춘과 박은옥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이 하얗다는 서정적인 노래였다. 타이틀곡도 아니고 앨범 목록 뒤쪽에 자리 잡은 노래를 누가 알까 싶었다.

망신, 망신 개망신을 당했다.  내 편지를 받은 권군은 노래를 잘 아는 친구였다. '청생통'(청바지, 생맥주, 통기타)을 즐기는 친구. 남학생들이 우리가 보내준 선물과 편지에 고맙다고 열어준 파티에도 참석 못 할 정도로 부끄러웠다. 김광석이 부르는 '이등병의 편지'는 대학 졸업하고 한참 후에 알게 되었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권군이 생각난다.

친구들아 군대 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 않게
열차시간 다가올 때 두 손잡던 뜨거움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틈만 나면 나를 놀리고 섭섭함을 토로하던 권군이 쪼잔하게 보이기도 했다. 편지 한통이 뭐라고 사골 국물 우려내듯이 우려먹나 싶었다. 1주일간의 병영 훈련 중에 받은 편지니 그 정도지 군대였으면 어땠을까? 그때는 몰랐다. 군대는 힘든 곳이고 편지 한통을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곳이라는 것을… 병영 훈련도 군대와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몰랐다. 권군아, 진짜 진짜 미안했어.


태그:#올드걸의 음악다방, #김광석 이등병의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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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주부입니다. 교육, 문화, 책이야기에 관심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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