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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정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
 박우정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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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시민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아래 민언련)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민언련은 전두환 정권의 독재가 절정이던 1984년 12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초대의장은 청암 송건호 선생이 맡았다.

민언련은 이듬해인 1985년 대안언론의 원조격인 <말>지를 발행해 한국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말>지는 1986년에는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하기도 했다. 

민언련은 현재 언론 관련 시민 강좌인 '언론학교'와 신문과 방송 모니터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지난 19일 박우정 전 민언련 이사장을 만나 <말>지의 탄생 뒷이야기와 함께 세월호 언론 보도 문제에 대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박우정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개월이 되었어요. 누구나 세월호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했지만 5개월이 흐른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르겠어요. 현재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보세요?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가 처한 비극적인 상황과 구조를 가장 충격적이고 극적으로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생생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 온 국민은 참담한 심경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희생자들 가운데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는 국가를 보며 분노했습니다. 전국민적인 애도와 반성, 그리고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강력한 흐름이 형성됐습니다.

이런 정서 속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접적인 원인 규명과 함께 그 구조적인 원인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는, 이른바 '세월호 담론'이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그 모든 담론을 관통하는 가장 공통적인 명제는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세월호 참사는 정말 불행한 비극이지만 우리 자신과 사회를 변혁하는 분수령과 동력으로 전환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어요. 한데 지금 세월호 참사는 그러한 동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변화를 주도하고 책임져야 할 정치권이 국민적인 열망을 수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변혁운동의 동력으로 전환하기 위한 첫 단추가 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작업이 집권세력의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태도 때문에 수장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한낱 '해상 교통사고'로 규정하거나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수 없다는 완강한 자세는 집권세력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음을 보여줍니다. 또 진실이 밝혀질 경우, 자신들이 입을 정치적 타격과 함께 필연적으로 고조될 국민적인 변혁열망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리멸렬한 야당의 현 상황을 이용해 우리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변혁요구를 잠재우기 위한 일대 반격에 나섰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시도가 끝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봐요. 왜냐면 세월호 참사는 변화하지 않으면 엄청난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근본적인 변화를 거부한다면 현 집권세력의 기반도 같이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 하지만 지금까지도 어떤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진 적이 없어요. 세월호라고 해서 다를까요?
"세월호 참사처럼 단일 사건에 대해 온 국민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토론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힌 사례는 드물어요. 1980년대 운동권에서 한국사회 구성체론이 아주 광범위하게 전개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때의 논쟁은 일정 범위의 학생들과 지식인들에게 국한됐고 일반 국민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죠. 그러나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국민들 사이에서 우리 사회와 우리의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놓고 적극적이고 철저히 반성하는 세찬 흐름이 형성됐습니다. 저는 이를 변화의 동력으로 삼는다면 우리 사회가 크게 바뀔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 하지만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얽매여서 진실규명을 하지 않고 있어요. 국민은 무엇을 해야할까요?
"지금 한국의 대의정치는 국민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됐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원할 수 있는 평화적인 방법은 뭘까요. 국민들이 크게 뭉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언론이 강하게 주장해서 정치가 움직이도록 압력을 넣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여당과 보수 언론들은 참사 이후 두 차례 선거를 통해 민심이 드러났다며,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덮고 축소해서 빨리 수습하자는 쪽으로 몰고 가려 합니다. 그리고 야당은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한 모습만 보이고 있습니다. 정치권만 보면 세월호 참사도 그냥 유야무야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비록 정부 여당의 얄팍한 꼼수가 일시 성공한다 해도 세월호 참사는 5·18광주 민중항쟁처럼 향후 한국사회의 변혁을 추동하는 강력한 '진리운동'으로 심화 발전해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은 왜곡 보도와 오보를 해서 '기레기'라는 오명까지 썼는데 언론인으로서 어떻게 보세요?
"한국언론의 왜곡보도와 오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해방 직후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한 결정적인 오보를 비롯해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 공안사건과 80년 광주항쟁 등 각종 시국사건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에 이르기까지... 한국언론은 심각한 왜곡과 오보를 거듭했고 시국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이런 오보와 왜곡 보도를 일반 국민들은 스스로 분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치명적인 피해와 상처를 입은 당사자들은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통감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고 힘센 언론기관과 싸워봐야 이기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언론은 자신의 무책임한 보도로 인한 피해에 책임을 지지 않아 왔습니다.

더 나쁜 범죄는 '편파 왜곡 보도'입니다. 오보는 대체로 취재 부족 또는 실수에서 비롯되지만 편파 왜곡 보도는 기자의 고의성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이념적인 이유에서든 사적인 이기주의에서든 편파 왜곡 보도는 사실과 진실을 은폐하고 사람들의 시각과 생각을 오도한다는 점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범죄 행위입니다.

저는 오보보다는 편파 왜곡보도를 일삼는 기자야말로 '기레기'라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런 기자들은 기득권층의 하수인이거나 스스로 기득권층의 일원으로서 현 체제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려는 나름의 신념에 따라 그같은 행위를 아무 죄책감없이 자행합니다. 이런 편파적인 시각에 사로잡힌 기자들에게 공정보도나 진실보도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해방후 우리 현대사에서 언론의 편파 왜곡 보도가 역사발전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를 사례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하면 아마 놀라운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 외국의 경우 오보를 하면 문을 닫을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오보를 해도 넘어갑니다. 이런 분위기도 오보가 나오는 원인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요. 외국에서 기자들이 특종을 하려는 욕심 때문에 고의적으로 오보를 해서 큰 스캔들을 일으키는 경우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건을 조작해서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경우도 있었죠.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곳에서는 그러한 사실이 드러나면 기자가 무거운 처벌을 받는 건 물론이고 언론사 대표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집니다.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만큼 언론의 윤리적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다는 원칙이 살아 있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규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요. 우리나라 언론사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오보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못 느끼기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오보를 해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관례처럼 굳어지다 보니 오보의 심각성에 대한 직업윤리적 죄의식이나 사회적 책임에 둔감한 풍토와 멘탈리티가 형성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물론 최근에 와서는 언론중재위라든지 오보에 대한 피해를 구제하는 법적인 제도가 운용되면서 예전보다 훨씬 조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 아무래도 SNS의 영향이 클 것 같아요.
"맞습니다. 전통적인 매체가 지배했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뉴스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한정되어 있었잖아요. 그것들이 전해주는 것을 사실인 것처럼 믿었고 따라서 매체의 영향력이 굉장히 컸죠. 하지만 SNS가 등장하면서 언론 보도에 대한 시민 개개인의 검색과 감시 기능이 비약적으로 강화됐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 언론사가 오보를 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들통이 나고 그 사실이 SNS를 통해 쫙 퍼집니다. 또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SNS를 통해 광범하게 유통되고 공유되면서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공식 매체보다도 훨씬 전문적이고 깊이있는 정보를 전하고 전혀 다른 시각을 전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전통적인 매체가 종래처럼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알려주려는 경향이 종종 제동 걸리곤 합니다. 보수적인 매체들이 SNS에 비판적이고 때로 적의까지 공공연히 드러내는 데는 이런 이유들이 있는 거죠.

그러나 중대한 사태나 근본적인 쟁점 등 그들 기득권 체제의 존립에 관련된 사안에서 기존 매체들의 편파 왜곡보도는 아직도 심각한 상태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 대형 참사는 예전에도 많았어요. 가깝게는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와 1990년대의 참사들이 있어요. 그때의 보도와 비교를 해보면 어떤가요?
"과거의 대형참사들은 대체로 그 원인이 단순하고 명확했습니다. 물론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요인도 직간접적으로 작용했지만, 세월호 참사처럼 총체적이고 다차원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는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무능과 무책임이라는 또다른 정치적 차원의 문제가 겹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지금까지 보도된 가시권 밖에 있을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세월호 참사와 비교하면 과거의 대형 사고들은 결정적인 오보나 왜곡 보도를 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지 않았나 싶습니다."

- 그럼 이전 참사와 세월호의 성격이 다르다고 보세요?
"대형 사고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나 사고 발생 후 대처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의문점과 미스터리가 제기됐다는 것 자체가 특이합니다. 또 이런 의문점들과 미스터리가 언론에 의해 석연하게 해명되지 않은 채 미궁 속으로 빠졌다는 점에서도 다르다고 봅니다.

세월호 참사는 대다수가 어린 학생들인 304명이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떼죽음을 당한 워낙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때문에 이런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국민들이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국가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무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인 점도 건전한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 이러한 진실을 파헤치려는 언론들의 취재 보도가 크게 미흡했고, 심지어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는 데 앞장서거나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 제가 취재를 해보니 이런 문제는 대형 참사엔 늘 있어왔다고 하더라고요. 때문에 대형 참사 때마다 언론 문제가 반복되는게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죠. 대형 사고가 발생해 취재 보도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오보와 실수를 범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언론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반성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노력이 꾸준히 이뤄졌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자들이 그런 실수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주의하겠지요.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보도의 정확성과 기자들의 보도윤리 감각이 고양되는 피드백 과정이 정착되고, 언론의 신뢰성 회복에도 도움이 됐을 겁니다.

정확한 사실 보도보다는 속보 경쟁을 중시해온 우리나라 언론의 오랜 관행도 문제입니다. 다른 매체에 앞서 특종을 보도해서 매체의 성가를 높인다는 메카니즘에서 속보 경쟁에 함몰돼 왔는데 지금은 속보 경쟁이 별 의미가 없어요. 이제는 시민들이 속보보다는 정확한 사실보도와 진실보도를 원하고 있어요. 언론 매체들도 그런 요구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박 전 이사장께서는 1975년에 <경향신문>에 입사했지만 1980년에 해직되고 이후 민언련의 전신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아래 언협)과 <말>지 창간 멤버세요. <말>지에 대해 20~40대 젊은 세대는 잘 몰라요. 아마도 현재 독립 언론인 <뉴스타파>와 비슷한 개념일 것 같은데 <말>지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어요.
"전두환 정권의 공포정치가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인 1984년 12월 앞서 말한 동아·조선 투위 선배들과 1980년 해직기자들과 몇몇 문화단체들이 언협을 발족 시켰어요. 당시 여러 부문에서 전두환 독재정권의 폭압을 뚫고 조직적인 민주민중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언론계에서도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통합적인 언론운동 단체를 만든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해직기자들이 주체가 된 언협은 기존의 복직투쟁 중심의 자유언론운동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쇄신할 필요를 절감하게 됐어요. 그리고 자연 제도언론에 대항하는 독립적인 매체를 만들자는데 의견이 모아져서 1985년 5월 <말>지 창간호가 발행됐어요.

<말>지는 운동권에서 나온 매체였지만 문장과 디자인이 세련되고 제도언론이 다루지 않는 주요 뉴스와 심층기사를 많이 다뤄 일반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었습니다. 월간을 목표로 했지만 워낙 지하에서 만드는 매체인지라 꼬박꼬박 발행 기일을 맞추지는 못했습니다. 대안언론이라는 측면에서 <말>과 오늘의 <뉴스타파>는 성격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합법적이고 많은 시민들이 공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뉴스타파>에 비해 <말>지는 훨씬 엄혹한 정치상황에서 극도로 비밀리에 만들어 내야했던 지하저항매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1986년 언협은 '보도지침'을 세상에 폭로하는 거사를 일으킵니다. '보도지침' 폭로는 두 가지 점에서 한국언론운동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첫째는 당시 전두환 독재정권과 제도언론의 추악한 유착관계를 낱낱이 드러내 제도언론의 반민주·반민중·반민족적 성격을 폭로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이런 제도언론에 대항할 새로운 민주적인 매체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혔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87년 6월항쟁 이후 <한겨레> 신문의 창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말>지는 그뒤 언협에서 독립해 형식상 합법적인 매체로 변신해 꽤많은 독자층을 확보했다가 아쉽게도 운영난으로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말>지는 한국언론사상 대자본이 주인이 아니라 순수한 운동단체가 주도해 만든 대중매체였다는 점에서 정당한 자리매김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박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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