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준우승을 차지한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16세 이하 챔피언십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단연 이승우(16·FC 바르셀로나)였다. 이승우는 5골(4도움)을 기록해 대회 득점왕과 최우수선수를 휩쓸었다.

이승우는 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 활약하며 일찌감치 한국축구의 미래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국내 팬들이 이승우의 실제 기량과 잠재력을 확인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하여 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도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던 이승우의 명성이 헛되지않았음이 명백히 증명됐다.

판타지스타에 굶주린 한국축구, 왜 이승우에 열광하나

이승우는 오만과의 첫 경기서 결장한 이후 말레이시아, 태국과의 조별예선 두 경기서 1골씩을 넣었고, 8강 일본전에선 2골을 몰아쳤다. 시리아와는 4강전에선 1골과 함께 4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7-1 대승을 이끄는 등 팀의 결승진출에 결정적 수훈을 세웠다.

이번 16세 이하 아시아 챔피언십은 스페인, 브라질 등 해외 외신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성인팀 경기도 아니고 축구변방인 아시아의 청소년 대회가 이정도로 주목받는 경우도 보기 드물다. 그 중심에 이승우의 영향이 컸다. 그만큼 세계무대에서도 인정받는 유망주의 반열에 오른 이승우의 재능과 위상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국내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이승우의 화려한 플레이와 당당한 태도였다. 일본전에서 보여준 50m 단독 드리블 돌파에 의한 득점은 온전히 이승우의 개인능력에 의하여 만들어낸 골이자, 이전의 한국축구에서 (심지어 성인팀에서도) 쉽게 보기힘든 장면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는 거침이 없었다. 8강전을 앞두고 "일본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이승우는 혼자 2골을 터뜨려 완승을 견인했다. 북한과의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배하여 준우승에 그친 뒤에도 주눅들지 않고 "이번 대회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면 내년 월드컵에서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장담하며 끝까지 당당한 태도를 잃지않았다.

경기장 안에서도 볼에 대한 욕심, 심판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제스츄어, 골을 놓고 기쁨의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모습은 플레이스타일에서도 항상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과거의 유망주들과 차원이 다른 끼와 재능, 스타성을 두루 겸비한 이승우가 미래에 한국축구가 갈망하는 새로운 '판타지스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췄음을 보여준다.

천재라 불리우던 선배들, 이승우에게 주는 교훈

벌써부터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이승우에게 '천재'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은 그만큼 한국축구가 이승우의 재능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도 한국축구에 천재라는 찬사를 받던 유망주들은 존재했다. 고종수, 이천수, 박주영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자 한국축구사에서 나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천재 소리를 들었던 선수치고 축구인생이 평탄한 길을 걸었던 이들은 오히려 드물다.짧은 전성기를 뒤로 하고 말로가 썩 좋지못했거나, 축구인생 내내 극심한 롤러코스터 곡선을 그렸던 경우가 더 많다. 어린 나이부터 천재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진 높은 기대와 압박감이 오히려 유망주의 미래에는 족쇄가 될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오늘날 한국축구의 대표적인 레전드로 평가받는 차범근이나 박지성, 이영표같은 선수들은 물론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그보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결국 최고의 반열까지 오른 선수들이다.

이승우가 지난 챔피언십을 통하여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한편으로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않았던게 사실이다. 이승우의 거침없는 언행이 얼핏 가볍고 교만하게 비칠수 있다는 것이다.

16세 이승우의 패기를 바라보면서 가장 많이 오버랩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이천수다. 부평고 시절부터 일찌감치 당대 최고의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이천수는 '밀레니엄 특급' '무서운 아이'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거침없는 플레이가 돋보였다. 축구실력만큼이나 성격과 언행도 워낙 자유분방했고 쇼맨십고 강했던 탓에 누구보다 많은 설화와 구설수에 오르내린 것도 이천수였다. 이승우의 플레이스타일도 몇몇 장면에서는 전성기의 이천수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 많다.

2002-2006 월드컵을 거치며 한국축구 정상급 스타의 반열에 오른 이천수의 축구 재능과 열정은 진실이었지만, 아쉽게도 이천수는 이후 자신의 커리어를 슬기롭게 관리하는데는 실패했다. 자신을 둘러싼 유명세를 제대로 통제하지못했고, 지나치게 축구외적인 논란에 에너지를 허비하면서 전성기를 날렸다. 한때 그에게 쏟아지던 찬사와 기대는 실망감과 비판으로 바뀌었고 한동안 슬럼프를 겪다가 최근에야 겨우 재기에 성공했다.

2000년대 중반 역시 천재로 불리우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박주영은 이천수와는 또다른 케이스다. 박주영은 자신을 둘러싼 유명세에 부담감을 느끼며 축구인생 내내 늘 언론이나 팬들과 두터운 벽을 쌓아왔다. 병역논란이나 아스널에서의 벤치생활 등 실망스러운 행보를 이어가면서도 주변의 여론을 듣지않고 폐쇄적이고 고립된 태도만 고집하며 몰락의 길을 자초했다.

보통의 축구선수들이 서른을 갓 넘어 전성기를 맞이해야할 시점에 박주영은 소속팀도 없이 방황하고 있다. 잘못된 길을 갈때도 주변에 냉철하게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잇단 무임승차 논란 등에서 보듯 오히려 한국축구계의 무책임한 편애와 특혜가 선수를 망친 전례로도 꼽힌다.

이제 16세에 불과한 이승우의 생각이나 개성을 벌써부터 획일적인 잣대로 재단하려는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 하지만 이승우에게 쏟아지는 찬사만큼이나, 쓴 소리 역시 이승우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반증이다. 이승우의 재능과 개성은 충분히 보호받아야겠지만, 그 재능이 자칫 삐뚤어진 방향으로 어긋나지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것도 주변에서 해야할 일이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찬사나 감싸기도, 단점만 꼬집거나 개성을 무시한 획일화도 정답이 아니다.

스포츠계에서는 해마다 무수한 재능들이 화려하게 꽃피우다가 또 금새 사라지기도 한다. 이승우 이전에 한때 천재라고 불리우던 축구선배들이 걸어온 길이 이승우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은, '축구는 재능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살아온 인생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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