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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모양의 발코니와 지중해를 떠올리게 하는 둥근 창문
▲ 카사바트요 뼈 모양의 발코니와 지중해를 떠올리게 하는 둥근 창문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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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빵과 커피 한 잔 하며 '어딜 갈까' 고민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테지. 일 분이라도 더 바르셀로나를 즐기고 싶어 얼른 딸을 깨웠다. 너무 여유를 부린 탓에 가우디 투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늘은 기필코 가우디 건축물을 다 보고 말겠다는 각오로 길을 나섰다.

4월 23일에 남자가 여자에게 장미 선물하는 이유?

처음으로 간 곳은 카사바트요. 스페인어로 '바트요의 집'이라는 뜻이다. 카사바트요를 보자마자 '무슨 이런 건물이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특이한 외관에 호기심이 생겼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창문 앞의 발코니는 마치 해골 같았고, 건물기둥은 다리 뼈처럼 보였다. 창문도 곡선의 형태였다. 이는 창문은 '네모나다'는 기존의 생각을 과감히 뒤집어줬다. 외관의 뼈 형태 때문인지 카사바트요는 '인체의 집'이라고도 불린다.

카사바트요의 전경
▲ 카사바트요 카사바트요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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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츄파춥스의 소유라는 카사바트요는 지금까지 방문했던 관광지 중 가장 비싼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건물 내부는 얼마나 독특한 모습일까 궁금해 21.5유로라는 거금을 내고 들어갔다. 기괴해 보이기도 했던 외관과 달리 내부는 바닷속에 들어온 것처럼 신비로웠다. 창문과 문은 모두 파란 계통의 동그란 색 유리가 끼워져 있어 마치 물방울처럼 보였다.

천장과 벽, 창문은 모두 직선 없이 곡선으로만 이뤄져 있어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 중앙의 뻥 뚫린 공간은 물빛의 타일로 장식돼 있다. 층층마다 있는 불투명 유리와 타일을 바라보면 물속에 있는 것처럼 출렁임이 느껴진다. 카사바트요는 지중해를 테마로 만들어진 건물이라더니 세부적인 것 하나하나 바다의 느낌이 살아 있다.

이번에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의 굴뚝과 벽면은 모두 형형색색의 타일 조각으로 장식돼 있었다. 트렌카디스라 불리는 이 기법은 타일이나 깨진 유리를 이용한 모자이크 장식으로, 가우디 건축물의 대표적 특징이다. 정교한 타일 장식과 화려한 색감이 감탄을 자아냈다. 색색의 타일 조각은 햇빛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빛났다.

옥상 정면은 용의 등을 연상하게 하는데 이 모습은 성 조지 전설과 관련이 있다. 카탈루냐의 수호 성인인 성 조지는 길을 가다가 한 여인이 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여인은 그 지역의 공주였고, 그 지역에서는 용에게 매일 양 두 마리를 바쳐야 했는데 양이 다 떨어지자 공주를 바치게 된 것이었다. 성 조지는 지역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는다는 조건 하에 용의 등에 칼을 꽂아 용을 무찔렀다. 가우디는 이 전설을 옥상에 그대로 담아 용의 척추뼈 위에 십자가 모양의 칼을 세웠다.

이 전설은 건물 내부에서 짧은 영상으로 상영해 줬다. 영상은 장미꽃이 흩날리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는데 성 조지는 용의 피에서 피어난 장미꽃을 공주에게 줬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날을 기념해 4월 23일은 남자가 여자에게 장미를 선물한다.

용의 등뼈 같은 지붕 위에 타일로 장식한 굴뚝과 십자가 모양의 탑이 서 있다.
▲ 카사바트요 옥상 용의 등뼈 같은 지붕 위에 타일로 장식한 굴뚝과 십자가 모양의 탑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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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상징하는 파란색 타일의 벽과 창문
▲ 까사 바트요 지중해를 상징하는 파란색 타일의 벽과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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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스승은 '자연'이라 말했던 가우디

밖으로 나와 카사바트요를 다시 바라봤다. 해가 높이 떠서인지 알록달록한 외관이 더욱 반짝인다. 자신의 스승을 자연이라 말한 가우디는 자연을 닮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거대한 나무 숲 같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중해 바다를 연상 시키는 카사바트요는 모두 자연의 모습으로 표현됐다.

이번엔 카사밀라로 간다. 밀라는 친구 바트요의 추천을 받아 가우디에게 집을 의뢰했고,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집중하기 전까지 온 힘을 기울여 카사 밀라를 건축했다. 당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카사 밀라는 벌집, 채석장이라 불리며 혹평 받았고 연립주택인 카사 밀라는 분양이 거의 되지 않아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었단다.

카사 밀라의 입구에는 채석장이란 뜻의 '라 페드레라(La pedrera)'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건물이 거칠고 거대한 바위처럼 보여서 채석장이란 별명으로 불린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외부 공사 중이라 외관을 볼 수 없었다. 파도가 출렁이는 듯한 곡선 형태의 외벽이 인상적이어서 꼭 보고 싶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건물 전체에 천막이 쳐 있어 아쉬웠다.

카사밀라 옥상의 굴뚝 모습. 투구를 쓴 병사 같은 모습이 스타워즈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 카사밀라 카사밀라 옥상의 굴뚝 모습. 투구를 쓴 병사 같은 모습이 스타워즈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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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왔으니 건물 내부라도 보자'싶어 카사바트요보다 약간 저렴한 16.5유로를 내고 입장했다.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갔다. 옥상에는 타일 조각으로 장식된 십자가 모양의 굴뚝과 투구를 쓴 병사처럼 생긴 굴뚝이 있었다. 독특한 투구 모양은 스타워즈 캐릭터의 모티브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구들이 전시돼 있었다. 카사 밀라에는 벽면이 직선인 곳이 하나도 없어 일반적인 가구를 배치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밀라의 부인은 이 건물을 매우 싫어했단다.

가우디는 모든 가구를 디자인했는데, 가우디의 가구와 문 손잡이는 인체공학적 디자인이라 사용하기에 매우 편해 보였다. 연립 주택인 카사 밀라는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어 일부만 개방돼 있었는데 각 방에는 그 당시의 생활상이 재연돼 있었다. 방 안 창문으로 살짝 보이는 해초 모양의 테라스 장식을 보며 외관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옥상에서 내려다 본 중정
▲ 카사밀라 옥상에서 내려다 본 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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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로 만든 해초 형태의 테라스
▲ 카사밀라의 테라스 주철로 만든 해초 형태의 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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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적인 가우디의 건축 세계

가우디의 초기 작품인 카사비센스도 찾아갔다. 초기 작품이라 곡선 대신 직선적인 느낌이 강하다. 건물은 초록색 타일로 장식돼 있는데 건물의 주인이었던 비센스가 타일 공장 사장이었기 때문에 타일을 맘껏 사용했단다. 자세히 보니 타일에는 금잔화가 그려져 있었다.

당시 이 장소에 금잔화와 야자수가 가득했기에 건물 디자인에 적용한 것이란다. 야자수는 문의 철제 장식으로 표현돼 있다. 카사비센스는 개인 소유의 저택이라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카사비센스를 뒤로 하고 서둘러 구엘 공원으로 향했다.

가우디의 다른 건물과 달리 직선적인 형태이다. 금잔화 타일과 야자수 잎 모양의 장식이 인상적이다.
▲ 카사비센스 가우디의 다른 건물과 달리 직선적인 형태이다. 금잔화 타일과 야자수 잎 모양의 장식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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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비센스를 장식하고 있는 금잔화 문양의 타일
▲ 카사비센스의 타일 카사비센스를 장식하고 있는 금잔화 문양의 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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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후원자인 구엘 백작은 전원주택을 짓고자 가우디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처음에는 60채 정도의 주택을 지어 공급하고자 했으나 가우디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해서 시간이 지체됐다고 한다. 거기에다 자금난까지 겹쳐 30채 정도만 지어졌다. 그중에서도 3채만 분양됐는데, 그 셋은 구엘과 구엘의 변호사, 가우디였단다. 이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땅을 사들여 공원으로 꾸미고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구엘 공원은 무료였다가 지난 2013년 10월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입장 시간은 6시까진데 우리는 6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다행히 유료 구간은 일부여서 공원을 둘러볼 수 있었다. 후문으로 입장하자 가장 먼저 돌기둥이 눈에 띈다. 돌기둥은 그 위에서 자라고 있는 풀과 나무와 어우러져 커다란 나무처럼 보인다. 자연 그대로를 담아내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살린 디자인을 보니 '가우디답다'고 생각했다.

동굴 같은 기둥 사이 통로를 걸어가니 기다란 벤치가 보였다.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장식된 벤치는 생각 외로 편안했다. 아름답고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벤치를 보고 가우디의 천재성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광장에서 멀리 지중해도 보인다. 해가 져서 어둑어둑했지만 바르셀로나 야경과 함께 보이는 지중해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낮에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야경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릴 반겨준다.

아기자기한 문양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는 구엘 공원의 벤치
▲ 구엘공원의 벤치 아기자기한 문양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는 구엘 공원의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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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으로 내려가니 신전이 나타났다. 도리아식으로 지어졌다는 신전은 입장 시간이 끝나 막아놓은 것인지 들어갈 수 없었다. 신전 앞에는 구엘 공원의 마스코트인 도마뱀 분수가 있었다. 낮에는 알록달록한 도마뱀과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붐빈다는데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도마뱀과 더불어 카탈루냐의 충성심을 상징한다는 개와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정문 양옆에는 정말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예쁜 건물이 있었다. 경비실과 관리실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이 건물은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집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란다. 건물 옆에 서 있으니 꼭 동화 나라에 온 듯하다. 한 사람의 아름다운 건축과 디자인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바르셀로나 곳곳에는 온통 가우디 관련 기념품이 넘친다.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장식된 기념품과 가우디 건축물 모형, 구엘 공원의 도마뱀 모형까지 가우디와 관련된 물품이 넘친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가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유가 있으면 바르셀로나 시내도 천천히 둘러보고, 남은 가우디 건축물도 더 볼 수 있을 텐데...

구엘공원 관람을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내일 아침에 출발하지만 새벽 일찍 공항에 갈 자신이 없어 미리 공항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 카탈루냐 광장으로 갔다.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동안 항상 지나 다녔던 카탈루냐 광장을 떠나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스페인과 작별을 해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스페인을 눈에 담았다.

한 편의 동화 같은 구엘공원 과자집과 바로셀로나의 야경
▲ 구엘공원의 야경 한 편의 동화 같은 구엘공원 과자집과 바로셀로나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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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있어 가능했던 여행... "네 덕분이야"

이번 여행은 꿈이 이루어지는 시간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들었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알함브라 궁전이 눈앞에 펼쳐졌고, 책과 영상으로만 보던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가우디의 걸작들이 하나둘씩 다가왔다. 보면 볼수록 더욱 마음에 다가오는 나라 스페인.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나라 스페인은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은 나라가 됐다.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열정의 나라 스페인에서 사계절을 느껴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스페인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은 딸과 함께 했기 때문이리라. 딸과 함께 여행한 것은 지난번 인도 여행 이후 두 번째였다.

"다 큰 딸의 여행비까지 내주며 데리고 다니는 나 같이 좋은 엄마가 어디있냐"고 큰 소리치지만 사실은 딸에게 얹혀 가는 것이다. 딸은 24시간 가이드가 되어 길을 찾고 의사소통하며 여행지 정보까지 검색했다. 좀 더 저렴한 가격의 숙소와 좀 더 맛있는 식당, 볼거리가 있는 곳을 찾아 엄마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느라 힘들었을 텐데... 티 내지 않고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감상하는 내 속도에 맞춰줬다.

쉰이 넘은 나이로 패키지가 아닌 배낭여행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딸 덕분이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딸의 껌딱지였다. 혼자였으면 두렵고 외로웠을 여행길에서 찰싹 붙어 24시간을 함께 했다. 환상의 여행 파트너인 우리 모녀. 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넌지시 물어보고 함께 가고 싶다는 대답이 나오면 바로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리라.


태그:#바르셀로나, #가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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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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