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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6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무기한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마침내 길고 긴 유혈사태가 끝났다. 이 교전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사상 가장 긴 50일 동안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2140명이 사망하고 1만1000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10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민간인 5명과 군인 64명으로, 팔레스타인과 큰 차이를 보였다. '교전'이라면서 어째서 이렇게 양측의 상황이 다른 것일까?

갈등과 대립의 역사

수십 년에 걸친 양국 간 고질적인 갈등의 직접적 발단은 제 1차 세계대전 시절 영국의 이중외교이다. 영국이 후세인-맥마흔 서한(1914)과 밸푸어 선언(1917)을 통해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같은 팔레스타인 땅에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돕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후 급증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로 현지 아랍인과의 대립이 빚어지자 영국은 이 문제를 UN에 넘겼다.

UN은 130만 명의 아랍인들에게 43%의 영토를, 60만 명의 유대인들에게 56%의 영토를 주는 분할안을 가결했다. 거기에 더해 이스라엘은 연이어 전쟁을 치르며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그 결과 제3차 중동전쟁에서는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서안지구까지 점령하였다.

철군을 요구하는 UN의 결의안까지 무시한 이스라엘의 강제 점령으로 절망과 분노를 느낀 팔레스타인인들은 1차 인티파다(Intifada, 민중봉기)를 일으켰다. 1993년에는 오슬로 협정이 맺어져 가자·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협정 이후에도 계속된 빈곤과 가자·서안지구의 봉쇄, 유대인 정착촌 확대 등으로 다시 인티파다가 일어났다.

1,2차 인티파다가 진행되는 동안 이스라엘군은 시위를 잔혹하게 탄압했다. 어린이를 조준사격하거나 팔을 부러뜨려 돌을 던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2000년 아빠와 중고차 시장에 다녀오던 어린 소년 라미가 이스라엘 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프랑스 기자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인티파다 이후 양국 갈등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조직이 바로 하마스(HAMAS, 이슬람 저항 운동)이다. 이들은 자살폭탄공격 같은 무장 투쟁과 사회복지 사업을 병행하여 빈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면서 2006년에 집권당이 됐다. 하마스의 자살 폭탄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법은 많은 비판을 받는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자살폭탄테러 과정에서 어린이들이 죽고 다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훨씬 더 많이 죽고 다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는 하마스 창립자의 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교전이라고 불러야 할까

2009년과 2012년과 달리 이번 교전에서는 유난히 긴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 충돌은 대적할 힘을 가진 세력 간의 무력 싸움을 의미하는 '전쟁'이나 '교전'보다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민간인 학살에 훨씬 가까웠다.

이스라엘은 강력한 봉쇄 정책으로 사방이 막힌 좁은 가자지구 안에서 전투원이나 무력 단체 뿐 아니라 민간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도 폭격을 가했다. 병원이나 사원, 해변가, 심지어 수백 명의 민간인이 대피해 있는 UN 학교에서도 공습 사망자가 나왔다. UN은 피해자의 75%가 민간인이고 다수가 여성과 어린이라고 추정한다.

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사상자 수 차이가 너무 컸다. 팔레스타인의 대표적인 무력단체인 하마스조차 이스라엘의 군사력에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병력 규모 자체가 수십만 명인데다 최신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하마스는 보유 병력이 훨씬 적고 무기도 주변 국가에서 밀수입하거나 자체 개발한 저성능 로켓포 정도뿐이다. 이번에 하마스가 발사한 미사일은 이스라엘의 고액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으로 격추되었다.

이스라엘은 줄곧 하마스의 테러를 문제 삼으며 가자지구에 대한 경계는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표방해왔다. 하지만 그 말과는 달리 교전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팔레스타인 측의 사망자, 특히 민간 사망자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비인도적인 행태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스라엘만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사태의 책임이 이스라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즘'의 출발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였다. 그리스도교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던 중세 유럽에서 사람들은 유대인이 예수를 살해한 민족이라고 믿었다. 토지를 소유할 수도, 공직에 오를 수도 없는 유대인들이 시작한 고리대금업도 반유대주의의 확산에 기여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이 각국에서 대대적으로 추방을 당하거나, 억울하게 지목되어 살해당하거나, 강제로 격리당한 경우는 무수히 많았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차르가 암살당했을 때나 프랑스에서 스파이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각각 죄 없는 유대인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 유대인 기자 테오도르 헤르츨이 시오니즘을 처음 주장한 것도 이런 사건을 취재한 후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가 저지른 대대적인 유대인 학살은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 이주를 가속화했고, 유대인에 대한 동정 여론으로 시오니즘이 큰 설득력을 얻게 했다.

또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의 가장 직접적인 발단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자국의 이익만을 꾀했던 영국의 외교정책이었다. 사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도 협정을 맺어 삼중 외교를 벌였을 정도로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므로 국제사회, 특히 유럽의 강대국들에게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대립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안에서의 유대인의 영향력은 정치, 언론, 영화, 금융 등 분야를 막론하고 막강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군사적 원조를 계속하면서 그 군사력으로 저질러지는 행위를 방관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조사를 위한 UN 결의안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언론들은 이스라엘 측 주장이 많이 반영된 시각으로 뉴스를 전하고, 이스라엘을 비난하거나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글을 쓴 기자들을 징계하기도 했다.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이는 미국은 팔레스타인에서 반인권적인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

그 땅에서 총성이 멈추려면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개입이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서구 국가들의 과실이나 책임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멈추지 않은 대립과 갈등으로 자체적인 갈등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서로에 대한 증오와 테러와 공습, 끊이지 않는 희생이라는 악순환은 지금껏 되풀이되어 왔다. 지난달의 휴전 협정 후에도 장기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아직까지 나아갈 길이 멀다. 한 달 안에 다시 논의될 쟁점이 가자지구 봉쇄 해제, 하마스의 무장해제 등 양측 모두 양보하기 어려운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접점과 공존방안을 찾고 그들 사이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불신과 증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3자인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번 휴전 협정도 이집트의 중재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이와 관련하여 국제분쟁전문기자인 성공회대 김재명 교수는 저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과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에서 UN평화유지군 파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거 시에라리온에서도 평화를 되찾게 했던 UN평화유지군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혈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자 가장 시급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동 평화가 바로 '나와 내 이웃의 문제'라고 여기고 중동 평화의 전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곳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중동지역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 중 중동지역의 분쟁의 실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스라엘에 대한 항의 시위가 일어나는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나와 내 이웃의 문제'는커녕 중동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적다. 일본과 중국에 비해 국내 언론사의 중동 특파원 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이스라엘 전쟁범죄 조사를 위한 결의안에서 기권표를 던졌다.

이렇게 우리가 중동을 대하는 태도는 무관심, 또는 무지였다. 그런데, 지금껏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왔던 '국제사회'에 우리나라도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제사회의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고종은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기 위해 노력했다. 3·1 운동 전에 상하이의 신한청년당은 파리강화회의에 민족대표를 파견해 독립을 청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의 독도나 동해의 표기 문제에 있어서도 국제사회의 관심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국제적인 관심을 필요로 하는 지역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이어 '러블 버킷 챌린지'가 등장한 것도 관심의 힘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현지 기자인 아이만 알 아울은 그곳에서는 물을 구하거나 얼음을 얼릴 수 없다며 대신 폭격된 건물 잔해(Rubble)로 러블 버킷 챌린지를 처음 시도했다. 그는 세계인들이 팔레스타인 사태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양동이에 흙먼지를 가득 담아 몸에 부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아이만 알 아울이 호소했던 우리의 관심은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분쟁의 해결은 평화와 인권이라는 소중한 가치와도 이어져 있다. 모든 것이 파괴된 가자지구에서 살아가야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인권은 누구나 가진 권리라는 당연한 진리를 수호하고, 모두가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은, 고통 받는 이웃의 삶에 대한 작은 관심으로도 충분히 시작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 소속 경기도청소년기자단 틴볼 웹진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팔레스타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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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경기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 소속 경기도청소년기자단 틴볼 12기 기자 이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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