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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 서울의 지하철 3개 노선을 1시간 동안 타는 20대 후반의 직장녀입니다. 지하철 출퇴근 시 특별한 일이 있을까 했는데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마주하니 세상을 경험하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기자 말

올 추석은 예년보다 길었다. 나는 친가, 외가 모두 집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어 길 막힐 걱정도 없이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다. 그래서 남은 시간 어디를 놀러갈지를 정리하며 퇴근길에 올랐다.

우리나라 회사들은 명절을 앞두고 관례적으로 선물세트를 준다. 직장인이 10명 중 6명이 명절 전후 이직을 고려한다고 하니 이직을 막기 위함이 아닐까... 이유야 어쨌든 선물세트를 2개나 주어서 양손은 무겁지만 집에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러나 지하철 4호선 사당역에 탄 그녀 때문에 내 마음 한 켠이 무거워졌다.

사당역에서 문이 열리면서 여자 2명이 타더니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섰다. 처음 본 사람들이었지만 몇 마디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을 들으니 대충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두 여자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데 부서는 다르지만 동갑이었다. 한 여자가 회사 상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나도 처음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쳐다봤다. 그 이후에는 귀로만 이야기를 듣고 창문에 비치는 모습으로 그녀의 행동을 살폈다.

"오늘 외근 갈 일이 있어서 회사 차를 이용하려고 해서 차키를 동네방네 찾았는데 결국 상사가 가지고 있었다. 이게 다 내가 미워서 그런 거다. 회사에 있으면 그 상사 때문에 숨이 막히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

여자가 울먹거리는데 옆의 동료 여자는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먹이던 여자는 자기 이야기를 계속 해 나갔다. 

"한시라도 빨리 회사를 나오고 싶었지만 6시 칼퇴근 하면 한 마디 할까봐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6시 30분에 퇴근했다."

그녀는 눈물 콧물 섞어가며 속사포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마스카라는 번져서 판다 눈이 되었다. 여자 동료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흥분하거나 동조하지 않고 냉정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 여기가 평생 직장도 아닌데 뭐."

울던 그녀가 바로 되받아쳤다.

"하루에도 수 십번씩 그만두고 싶은데 대출금을 갚아야 해서 안 돼."

나는 그녀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꼈다. 나 또한 대학을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원금 갚는 건 꿈도 못 꾸고 매월 학자금 이자만 10만원 정도 내고 있다. 매월 핸드폰, 교통비, 보험비, 학자금 등 고정지출만 해도 단 한달만 회사를 그만둬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다. 울고 있는 그녀도 나와 같지 않을까...

나도 그녀처럼 지하철 퇴근길 혼자서 흐느끼며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들어줄 동료가 있었지만 난 혼자였다. 회사에서 20대는 나 혼자였고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을 만들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가'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그녀의 울음과 한탄은 직장 동료와 나만이 들은 게 아니다. 서로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퇴근길 지하철이기에 아마도 귀기울여 공감해 주고 있지 않았을까. 용기 내어 손수건을 내민 사람이 없었을 뿐.

20여 분을 달린 지하철이 멈춰서고 그녀와 나는 같은 역에서 내렸다. 나는 그녀 뒤에서 한 발짝 떨어져 걸어갔다. 그녀는 지하철역 화장실로 사라져 버렸다. 출근길이 버거운 그녀에게 엄마 같은 위로와 조언이 담긴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라는 책을 권해주고 싶었다.


태그:#지하철, #출퇴근, #사당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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