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인천시 서구 인천아시아드 경기장에서 열린 제 17회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이영애씨와 어린이들이 성화를 점화 하고 있다.

19일 오후 인천시 서구 인천아시아드 경기장에서 열린 제 17회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이영애씨와 어린이들이 성화를 점화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9일 저녁 열린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개회식이 이틀이 넘도록 여론의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45억의 꿈, 하나 되는 아시아'를 주제로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펼쳐진 이번 아시안게임 개회식은 영화감독인 임권택과 장진 감독이 함께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개회식 공연에 투입된 예산만 230억 원이다. 엄청난 물량 공세를 펼쳤던 베이징올림픽이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는 비교할수 없지만, 한국만의 개성과 문화를 살린 무대를 꾸밀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개회식이 열린 후 국내 팬들과 누리꾼들은 물론이고 외신들조차도 대체로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훨씬 우세하다. 전체적으로 독창성이나 개연성을 느낄 수 없는 무색무취한 퍼포먼스에, 그나마도 '연예인 행사'로 전락한 인상을 주며 스포츠 축제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악평이 줄을 잇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변명

  19일 오후 인천 서구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제 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19일 오후 인천 서구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제 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개회식을 지켜본 대중들과 내외신 보도의 비판을 종합하면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개회식이 '한류'와 연예인 스타 홍보 잔치 속에 정작 스포츠는 들러리로 전락하며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점, 둘째는 확실한 메시지나 색깔을 느낄 수 없는 맥빠진 구성, 셋째 개회식 전후로 드러난 조직위의 미숙한 운영과 행정력이다.

연출을 맡은 임권택 감독은 개막식을 마치고 한 인터뷰에서 "그 동안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의 개회식이 개최국의 위상과 힘을 과시하는 무대였다. 우리는 비교적 저예산으로 치르면서도 참가국이 좀 더 평화롭고, 평등하고, 정이 흐르는 무대가 될 수 있도록 차별화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강대국과 약소국을 고루 소개하고 각 나라의 특징을 보여줌으로써 이번 대회의 기본 이념인 배려와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려 했다"는 게 이번 개회식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임 감독은 개회식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저예산과 부족했던 시간을 강조했다. 한 마디로 주어진 상황에서 이 정도면 잘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개회식을 지켜본 이들 중에 임 감독의 자평에 동의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아시아인들과 공감할 게 한류뿐인가

 가수 싸이가 19일 오후 서구 연희동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축하공연을 펼치고 있다.

가수 싸이가 19일 오후 서구 연희동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축하공연을 펼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19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렸다. '인천-하나된 아시아를 만나는 곳'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19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렸다. '인천-하나된 아시아를 만나는 곳'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대중들의 싸늘한 반응은 규모가 아니라 '공감'의 문제였다. 중국같이 과시적인 물량공세를 꼭 따라야할 필요는 없다. 아시안게임의 취지에 걸맞게, 아시아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인천만의 메시지와 개성을 담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런데 인천아시안게임 개회식 행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관성 없는 퍼포먼스의 기계적 나열만 있었을 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는 구성이었다. 굴렁쇠 소녀부터 소프라노 조수미의 공연까지, 이전 한국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한 번은 봤음직한 장면이 재탕됐다. 단체 무대 연출도 웅장함이나 일사불란한 호흡이 떨어지고 어딘지 급조된 듯 조잡한 인상만을 줬다.

여기에다 주경기장의 지붕이 개방되어 있어 와이어 등을 사용할 수 없는 인천아시아드의 구조상 다양한 무대 구성에 한계가 있었고, 특수효과 연출과 사운드 조율에도 문제를 드러냈다. 무대 영상과 공연이 일치하지 않는 등, 전체적으로 호흡이 자주 끊기고 산만한 인상을 줬다. 개회식 공연 현장보다는 화면으로 지켜보는 TV 시청자들을 더 의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어설픈 기교에 치우친 연출이 많았다.

장동건과 현빈, 김수현, 이영애, 싸이 등으로 이어진 한류 연예인들의 대거 등장은 도대체 아시안게임과의 연관성 면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홍보대사인 JYJ는 그렇다 쳐도, 다른 출연자들은 개회식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색깔과도 맞지 않은, 말 그대로 '한류 홍보 콘서트'로 변질된 느낌을 줬다.

물론 연예인이라고 아시안게임에 서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은 본질적으로 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축제다. 아카데미나 대종상 시상식에 영화배우들보다 스포츠 스타가 더 많이 출연한다면 어떨까? 이영애가 성화 점화자로 자격 미달까지는 아니지만, 김연아, 차범근, 박지성, 박태환, 박찬호 등 역대 한국스포츠를 대표하는 레전드들을 제칠 만큼 스포츠 축제의 메인 이벤트에 걸맞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더구나 아시안게임은 인천이나 한국만의 축제가 아니다. 이날 무대와 아시안게임의 연관성을 굳이 꼽자면 '한류'뿐이었다. 개막식의 관점에서 바라본 아시아는 케이팝과 영화, 드라마, 한국 연예인 등 한류를 사랑하는 이들과 한류의 주요 시장이 되는 존재 가치로서의 아시아에 불과했다.

왜 개최지가 '인천'이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당위성이나 '인천속의 아시아'를 표현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감대는 전혀 없었다. 베이징올림픽과 광저우 대회 당시 국내에서 그토록 비판했던 '중화주의식' 자화자찬과 본질적으로는 다를 게 없는 한류 예찬에 그쳤다. 개회식을 지켜보는 아시아인들은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도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나 감동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이유다.

이 정도의 기획력이라면, 예산과 시간에 여유가 있었더라도 더 좋은 공연이 나왔을지 의문이다. 이번 개회식을 위해 오랜 시간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스태프와 출연자들의 노력이 빛바래게 된 것은 아쉽지만 감수해야 할 비판이기도 하다. 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이미 수많은 국제 대회를 개최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한국만의 개성은 어디로 갔는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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