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같아서는 내년 칠레에서 열리는 17세이하 남자월드컵에 이들을 잘 어울리게 하여 단일 팀을 만들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탁월한 골잡이 둘이 나란히 남북 대결 결승전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었다.

최진철 감독이 이끌고 있는 16세 이하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20일 밤 8시 태국 방콕에 있는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 AFC(아시아축구연맹) U-16 챔피언십 결승전 북한과의 맞대결에서 최재영의 코너킥 세트 피스 선취골을 지켜내지 못하고 후반전에 내리 두 골을 내주며 1-2로 역전패했다.

이승우-한광성, 남북 최고 골잡이들의 아름다운 해후

한국에 세계 축구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이승우가 있다면 북한에도 그에 못지 않은 골잡이 한광성이 있었다. 그의 이름 그대로 결승전에서 누구보다 별처럼 빛난 것이다.

먼저 자신의 명성을 자랑한 것은 역시 이승우였다. 비록 골로 연결되지 못해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승우가 17분과 28분에 각각 오른발로 골을 노린 중거리 슛 과정은 감탄사가 여러 차례 튀어나올 정도였다. 북한 수비수들이 작정하고 거칠게 달려드는 것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북한 문지기 리철성을 직접 위협하는 유효 슛을 날렸기 때문이다.

북한에도 이승우 못지 않는 탄탄한 골잡이가 있었다. '쿠웨이트, 우즈베키스탄, 네팔'과 차례로 맞붙은 조별리그 C그룹 세 경기를 통해 연속골 행진을 기록했던 한광성이 그 주인공이다.

경기 시작 후 30분만에 한광성에서 드디어 자체 발광이 시작되었다. 한국 수비형 미드필더 장재원을 기막히게 따돌리고 왼발로 감아찬 공은 우리 문지기 안준수가 오른쪽으로 몸을 쓰면서 겨우 쳐내야 할 정도로 위력적인 것이었다.

이처럼 '이승우-한광성'이 전반전에 실력을 자랑한 것만 놓고 봐도 흐뭇한 결승전이었다. 그러더니 34분에 드디어 균형이 깨졌다. 한국이 얻은 왼쪽 코너킥을 미드필더 이상헌이 올려주었고 공격에 가담한 수비수 최재영이 머리로 슬쩍 방향을 바꿔 선취골을 터뜨린 것이다.

이에 한국 선수들은 별 어려움 없이 전승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낭만적 환상에 빠졌다. 후반전에 북한이 이대로 물러설 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화근이었다.

수비수들의 결정적인 실수 둘, 고비 못 넘고 눈물 흘려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실점 없이 우승의 꿈을 이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경기는 결승전이었다. 아무리 골을 내주며 한국에게 끌려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 팀 북한은 이란, 호주와 같은 아시아의 전통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결승전에 올라온 팀이었다.

앞선 두 경기(8강, 4강) 모두 연장전+승부차기를 연거푸 치르느라 그들이 지칠 것이라 속단한 것일까? 우리 선수들은 후반전에 추가골을 뽑아내지 못하고 역전패의 분루를 삼켜야 했다.

후반전 시작 후 4분만에 동점골이 나왔다. 북한의 측면 미드필더 박영관이 길게 넘겨준 공을 한광성이 정확하게 잡아 놓고 침착하게 오른발로 골문을 갈랐다. 그런데 한국 선수들 입장에서는 이 골을 내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가운데 수비 자리에서 한광성에게 공이 전달되지 못하도록 처리해야 할 최재영이 바로 직전에 무리한 드리블로 공격에 가담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유가 컸다. 최재영 대신에 미드필더 이상헌이 커버 플레이에 나섰지만 자신의 키를 넘어 떨어지는 공의 낙하지점조차 찾지 못했던 것이다.

전반전에 선취골을 자신이 터뜨렸다고 후반전에 자기 발끝에서 더 많은 것이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 속에 무리하게 공격에 가담하여 드리블하다가 어이없이 가로채기를 당한 것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어린 선수들이 생각 없이 뛰다가 고비를 못 넘고 무너지는 전형적인 패턴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좋게 해석하자면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수비수의 치명적인 실수는 66분에도 이어졌다. 북한 수비 쪽에서 장성일이 길게 오른쪽 측면으로 넘겨준 공을 처리하기 위해 한국의 왼쪽 측면 수비수 박명수가 몸을 날리며 왼발 끝을 내밀었지만 조금 짧아서 맞고 떨어져나갔다. 오히려 이것이 북한 공격수에게 좋은 패스를 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기회를 최성혁이 놓칠 리 없었다. 그의 오른발 대각선 슛은 시원하게 우리 골문 왼쪽 톱 코너를 꿰뚫었다. 문지기 안준수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완벽한 구석으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이후 한국의 최진철 감독은 가운데 미드필더 김정민을 빼고 공격수 유주안을 들여보내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자 했다. 입장이 바뀌어 동점골이 너무나 절실해진 형편이었다.

최진철 감독은 유주안을 선택한 것도 모자라 79분에 키다리 공격수 이형경을 들여보내 높은 공으로 마지막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이형경이 처리한 높은 공이 떨어지는 지점에 우리 선수들이 빠르게 달려가지 못했다.

사실 역전골을 얻어맞기 전에 북한의 간판 수비수 김위성은 고의적인 잡기 반칙으로 한국의 간판 이승우를 쓰러뜨렸다. 이승우의 폭풍 드리블이 상대 문지기 리철성을 코앞에 둔 상황이었기에 퇴장 명령이 내려졌어야 했다. 하지만 모하나드 카심 사라이(이라크)  주심은 그냥 노란 딱지만 내밀었다. 사실상 이 지점이 승부의 갈림길이 된 셈이다.

78분에 후반전 교체 선수 유주안이 이승우의 기막히게 재치있는 패스를 받아 오른발로 강하게 찼지만 북한 문지기 리철성이 몸을 날리며 막아냈다. 추가 시간 5분도 거의 다 지나서 유주안은 또 한 차례 결정적인 동점골 기회를 잡았지만 슛 타이밍에서 머뭇거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종료 직전에도 공격에 가담한 수비수 이상민의 결정적인 헤더가 빛났지만 아슬아슬하게 북한 골문 왼쪽 옆그물에 걸리는 바람에 우리 선수들은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승우에게 거칠게 반칙을 저지르며 강한 압박 수비를 펼친다고 해서 상대 선수들에게 화를 낼 일이 아니다. 더 냉철하게 제2, 제3의 전술을 마련했어야 하는 경기였다.

수준 이하의 주심 판정에 득점 기회를 날려버린 것 또한 억울하겠지만 오심도 판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우리 어린 선수들이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셈이다. 사실 이들의 진정한 목표는 내년에 칠레에서 열리는 17세 이하 남자월드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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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4 AFC U-16 챔피언십 결승전 결과(20일 밤 8시, 라자망갈라 스타디움-방콕)

★ 한국 1-2 북한 [득점 : 최재영(34분,도움-이상헌) / 한광성(49분,도움-박영관), 최성혁(66분)]

◎ 한국 선수들
FW : 장결희(79분↔이형경), 이승우
MF : 이상헌, 장재원, 김정민(69분↔유주안), 유승민(46분↔박상혁)
DF : 박명수, 최재영, 이상민, 윤서호
GK : 안준수

◎ 북한 선수들
FW : 정창범, 한광성
MF : 박영관(82분↔주현혁), 연준혁, 김예범, 최성혁
DF : 최진남, 장성일, 김위성, 리국현
GK : 리철성
축구 AFC U-16 챔피언십 이승우 한광성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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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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