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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택배는 마냥 반갑다. 우리나라 대표 공기업 '우정사업본부'의 비전처럼 우편·택배 배달은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일'이다. 이렇게 고마운 우체부 아저씨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희망'과 '행복'을 전한다는 집배·택배원들은 행복에, 그리고 희망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장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린다. 기자들이 각각 정규직 집배원·재택집배원·위탁 택배원 유형에 해당하는 이들과 하루를 동행했다. 집배원들은 사측과의 갈등을 우려해 모두 익명을 당부했다. - 기자말

우정사업부는 중간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이들은 다시 위탁 택배원과 계약을 맺는다. 이른바 '하청의 하청'이다.
 우정사업부는 중간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이들은 다시 위탁 택배원과 계약을 맺는다. 이른바 '하청의 하청'이다.
ⓒ 고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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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오전 6시의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동 우편물류센터. 해가 뜬 지 얼마 안 돼 주위는 채 환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벌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부평 물류센터에는 8개 지역 우체국의 수화물들이 모이고 흩어진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출퇴근하지만, 대부분은 '위탁 택배원'이다. 우정사업부로부터 위탁받아 택배 배달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형님, 인주 없어, 인주?"

아침부터 집하장이 시끌벅적하다. 손에 '계약 협약서'를 든 위탁 택배원들이 동료 이아무개(45)씨에게 몰려들었다. 오늘은 새 조건의 재계약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원래 계약일보다 한 달하고도 보름이나 더 늦어졌다. 업체 측 관계자와 택배원과의 짧은 대화가 이어지고 돌아서며 이씨가 말했다.

"많이 돌아서 많이 벌게 해드릴게!"

평소에는 친하지만... 재계약 때는 노조 와해 전략으로 분위기 험악

이씨와 계약한 업체는 우정사업본부가 아닌 중간 업체다. 우정사업부는 중간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이들은 다시 위탁 택배원과 계약을 맺는다. 이른바 '하청의 하청'인 재하청이다. 재택 집배원과 마찬가지로 노사관계로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류비와 차량 관리비, 보험료 등의 비용은 물론 기본적인 근로기준법상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씨의 오늘 배달 물량은 100건이 채 안 된다. 물량이 적어서 다행이라는 기자의 말에 이씨는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며 "적게 배송하면 벌이가 줄어서 좋을 게 없다"고 답했다. 이들은 배송 건수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무게에 따라 건당 1000~1400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송 건수가 이들의 수입과 직결된다.

이렇게 한 달을 돌고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300만 원 가량이다. 여기에 차량 유지비나 각종 보험료 100여 만 원을 지출하면 남는 건 200만 원 남짓이다. 그나마도 전국우체국위탁택배조합(아래 위탁택배조합)의 투쟁 덕분에 이번 2014년부터 오른 가격이다. 이전에는 훨씬 더 열악했다.

위탁택배조합에 따르면 계약 가격은 10여 년 가량 변화가 없었다. 중간업체가 우정사업본부와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단가 낮추기 경쟁을 벌여 왔기 때문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위탁택배원들에게 돌아온다. 을의 입장이라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갑을관계라고? 을은 무슨... 병-정이지!"

이씨는 "그래도 하자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측에서 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면 방법이 없다. 이씨는 "단가 문제로 회사와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위탁 택배원에게 계약 만료는 해고나 마찬가지다.

집하장에서 늘어선 수화물들 사이로 택배원들의 "형님" "아우"하는 대화가 오갔다. 대부분이 40~50대인 데다 회사처럼 수직 구조가 아니다 보니 분위기가 화목했다. 이씨는 "여기 있는 사람들 80%는 바닥 한 번씩 치고 온 사람들이다"라고 귀띔했다. 비슷한 처지라는 동질감이 이들을 하나로 묶었다.

그러나 재계약 과정에서는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단가 협상을 벌이는 위탁택배조합을 방해하기 위해 중간 위탁업체에서 조합에 참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택배원 일부를 꼬드겼다. 위탁업체는 조합에 참여하지 않는 택배원만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계약금 인상 등을 단행했다. 결국 택배원들은 분열됐다. 우정사업본부도 마찬가지였다. 계약금을 올리느니 월급을 받는 정규직 집배원을 이용하겠다며 암암리에 압박했다. 이씨는 "동료 등에 칼을 꽂는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가 퍼즐 맞추듯 수화물을 빈틈없이 택배 차량에 실었다. 이씨의 담당 지역은 서울 강서구 등촌동 일대다. 등촌동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이씨의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오늘 내 물건이 몇 시쯤 도착하느냐"부터 "내 택배가 누가 보낸 물건이냐"까지 자질구레한 메시지가 이어졌다. 이씨는 "바빠도 답해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사소하게 여겼다간 민원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령 맡겨둔 경비실에서 택배가 분실되었을 때도 배상의 책임은 위탁 택배원에게 있다. 고가의 휴대폰이라도 분실할 경우에는 일 주일 치 임금이 날아간다. 이씨는 "가끔 고객들한테 서운할 때도 있지만 택배 받으시는 분들 표정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산타가 이런 기분일 거다"고 웃었다.

택배를 운송하는 위탁 택배원. 우체부의 삶이 다 고달프지만 위탁 택배원은 을 중에서도 을의 입장이다.
 택배를 운송하는 위탁 택배원. 우체부의 삶이 다 고달프지만 위탁 택배원은 을 중에서도 을의 입장이다.
ⓒ 고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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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제로 행복에 한 걸음? 우체국은 아직 행복하지 않다

지금도 집배원들은 최대 600개에 달하는 물량을 맞추기 위해 위험천만한 오토바이 운행을 무릅쓴다. 재택 집배원들은 정해진 구역도 없이 공터 바닥에 쪼그려 앉아 우체국에서 해야 할 분류 업무까지 떠맡고 있다. 위탁 택배원들은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루어진 구조에서 을도 아닌 병·정의 위치로 전락해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시간에 쫓겨 끊임없이 달려야만 하는 이들은 우정사업본부의 철저한 소모품이다.

주말까지도 근무해야 했던 집배, 택배원들은 그 누구보다도 주5일제 시행을 간절히 바라왔다. 결국 10년에 걸친 요구 끝에 지난 7월부터 주5일제가 전면 시행됐다. 우정사업본부 앞에서의 수많은 집회와 시위, 서명운동 등을 통해 간신히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기자와 동행했던 이들도 일단은 반기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중노동은 여전하다.

집배원들은 주5일제 시행으로 6일에 끝내야 할 업무를 5일 동안 처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명절을 비롯한 폭주기가 시작되면 이들의 근로시간은 하루 15시간을 훌쩍 넘어선다. 우정본부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는 집배원 조아무개(46)씨는 "토요일에는 그저 집에 쓰러져 쉬기 바쁘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열렸던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서 약속된 '1000명 이상의 인력 증원'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우정사업본부에서도 인력 증원을 요청했으나 인원을 관리하는 안전행정부는 고작 2년 간 320명을 증원하는 데 그쳤다. 안전행정부에서는 "우체국에서 내근하는 실장과 주임 등의 관리직을 현장 업무에 투입하면 되지 않느냐"며 반문하는 상황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확립된 우체국의 시스템은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지난 6월 30일 진행된 주5일제 시행 관련 긴급 면담 과정에서도 인력 충원은 언급되지 않았다.

재택 집배원과 위탁 택배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들과의 위탁 계약을 고용 계약으로 전환하지 않는다. 관리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들은 개인 사업자다. 중간 위탁업체로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도 여전하다. 이들에 대한 복지를 확대하기는커녕 비정규직인 '상시 집배원'을 수시로 뽑아 계약의 주도권을 유지한다.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면 되니 힘들면 그만두라'는 묵언의 압력이다.

위탁 택배 시스템은 중간 업체와의 위탁 택배원의 관계를 수수방관하면서 '지주와 마름 그리고 소작'과 같은 전근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부문이 대기업보다 더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비참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1년 전 공공운수노조 우편지부 재택집배원지회와 전국우체국위탁택배조합이 각각 출범했지만, 아직은 그 영향력이 미미한 실정이다.

택배 버스가 나란히 서 있다. 앞의 차는 정규직 집배원, 뒷차는 위탁 택배원의 차량이다.
 택배 버스가 나란히 서 있다. 앞의 차는 정규직 집배원, 뒷차는 위탁 택배원의 차량이다.
ⓒ 고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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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은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한다고 한다. 그리고 집배원과 택배원은 그 우체국의 발이다. 이들은 희망적이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집배원 장시간·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 소속 김아무개(43)씨는 안타까운 현실에 고개를 떨궜다.

"고객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기쁨을 느끼며 일하고 싶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삼성언론재단의 제1회 대학생 탐사보도 공모전 노력상 수상작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우체국, #집배원, #재택집배원, #위탁택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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