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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마당] 백발 투사와 중국집 배달원의 만남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0만인클럽 '아름다운 만남'에서 어려운 옛글과 입말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지만 가진 게 딱 하나 있는 사람들, 알통이다"며 "그런 무지렁이 삶이 드러난 말, 민중의 말로 생각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고 말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0만인클럽 '아름다운 만남'에서 어려운 옛글과 입말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지만 가진 게 딱 하나 있는 사람들, 알통이다"며 "그런 무지렁이 삶이 드러난 말, 민중의 말로 생각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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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백발 투사는 울었다. 마른 장작 같은 몸뚱이에서 불꽃이 확~ 일 때면 앙다문 입술로 탁자를 내리쳤고 그때마다 흰머리가 일어섰다. 나뭇가지처럼 깡마른 손가락을 장구채 삼아 구성진 가락을 노래했다. 어깨를 들썩였고, 목에 몇 가닥 힘줄이 섰다. 그는 토막잠을 자고 일어나 "여기가 어디야!" 고함치며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팔순이 넘은 세월에 기력이 쇠한 탓일까? 군홧발에 짓밟혔던 그 장소가 떠올랐단다.

지난 4일 <오마이뉴스> 서울 서교동 마당 집에서 열린 대거리는 격동의 현대사를 옮긴 한 판의 마당극이었다. 그는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이야기하며, 노래하며, 시를 읊으며 한평생을 알알이 엮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을 훔친 이승만 정권과 4·19 혁명을 죽인 박정희 정권, 그 뒤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거의 한 세대동안 거리를 질주했던 그의 이야기 속엔 슬픔과 기쁨, 분노와 회한이 교차했다. 백 선생은 대거리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얼마 안 남았잖아? 이번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오늘 찬바람(에어컨) 나오는 택시를 타고 오는데 그걸 견디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어. 언제라도…."

이럴 때 그는 지쳐보였다. 하지만 광장에서 카랑카랑하게 외치던 불덩이 가슴은 아직 식지 않고 순간순간 불끈거렸다. 그날도 세월호 특별법에 딴죽을 건 박근혜 정권의 등짝을 죽비로 세게 후려쳤다.    

"왜 300명 중 단 한 사람도 살려내질 못한 거야? 왜 나라의 모든 능력을 침몰하는 세월호를 건지는데 집중하지 않은 거야? 세월호는 참사가 아니라 참혹한 학살이야! 박근혜 정권에 의한 학살!"

# 고구려는 말발굽 소리야!


한가위를 앞두고 풍성한 가을 햇살이 따갑던 이날,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인 백 선생을 '아름다운 만남'(아만남) 인터뷰에 초대한 노성출씨가 첫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선생님 자서전(<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겨레 출판)의 책장을 넘기면서 고구려 땅을 밟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런 문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요?"

노성출씨는 10여 년 동안 중국집에서 음식 배달을 해왔고, 1년여 전에 조그마한 중국집을 차린 10만인클럽 회원이다. 남대문에서 배달할 때부터 지금까지 매월 한 번씩 100여 차례에 걸쳐 자발적으로 <오마이뉴스>에 구독료를 내왔다. 이날도 노씨는 백 선생에게 특별한 중국 요리를 배달했다. 이 자리엔 또 다른 10만인클럽 회원이자 시인인 송경동씨도 함께 했다. 백 선생은 노씨의 질문을 받고 잠시 침묵한 뒤 허리를 숙여 얼굴을 맞댔다.     

"고구려라는 건 옛날 나라로 알면 안 돼. 고구려는 끊임없이 열린 땅으로 달려가는 말발굽 소리야. 교과서에 나오는 백제, 신라, 고구려, 이런 나라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니까. 근데 뭐, 나를 보고 고구려라고 그러면 내가 좀 부담스럽지. 이층 층계를 올라오기도 힘든데 무슨 고구려야.(웃음)"

고구려는 고유명사로 박제된 게 아니라 지금도 살아 펄펄 뛰는 동사란 말이다.

# 무지렁이 알통들의 말

사실 노씨의 말처럼 그는 자서전에서뿐만 아니라 인터뷰에서도 낯이 설은 우리말을 썼다. 인터뷰를 '대거리'라고 했고, 별명을 '덧이름'이라고 했다. 또 진보는 '아리아리', 일생을 '한살매', 좌우명을 '새김말'이라고 불렀다. 왜 어려운 옛말을 고집 하냐고 물었더니, 이런 말이 되돌아왔다.

"옛말을 끄집어 쓰는 게 아냐. 무지렁이들의 말로 생각하는 거지.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지만 가진 게 딱 하나 있는 사람들, 알통이지. 그런 무지렁이 삶이 드러난 말이나 글은 어디를 가도 없어. 도서관에도 없고 예술을 한다는 사람에게도 없어. 나는 이 땅의 무지렁이들, 요샛말로 하면 민중이지 뭐. 민중의 말로 생각하려고 그냥 몸부림치고 있는 거야."

그는 노랫가락에도 몸부림을 새겼다. 백 선생의 한살매 대거리에 앞서 그가 직접 부르는 '알통들의 목소리'를 들려드린다. 아래 1분20초짜리 동영상 링크를 클릭해보시라. 

백기완 선생의 노래

그는 아직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세월호 농성장과 밀양 송전탑, 싸우는 노동현장 맨 앞줄에 서 있다. 그의 불타는 살과 뼈를 만든 민중의 정서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우선 긴 대거리 중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던진 직설부터 선보인다.      

#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말

10여 년 동안 중국집에서 음식 배달을 하면서 100회 이상 10만인클럽에 후원한 노성출 씨(오른쪽)가 10만인클럽 '아름다운 만남' 세 번째 초청자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추천했다.
 10여 년 동안 중국집에서 음식 배달을 하면서 100회 이상 10만인클럽에 후원한 노성출 씨(오른쪽)가 10만인클럽 '아름다운 만남' 세 번째 초청자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추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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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겨울.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 대한문 앞에서 조그마한 집회가 열렸단다. 백 선생은 그 자리에서 한 이야기를 다시 들려줬다. 그 이야기를 듣다가 귀를 의심했다. 그로부터 2년 가까이 흐른 지금, 청와대 앞까지 찾아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손을 내팽개친 싸늘한 대통령을 향해 호통 친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1951년 1월 달이야. 수원 근방에서 기차가 멎었어. 눈은 펄펄 내리고, 우꿍! 따다다당~하고 중국 놈들이 쳐들어 왔어. 화물열차 안은 사람들로 꽉 차서 지붕위로 올라갔는데 화물열차는 지붕이 (손을 비스듬하게 치켜들면서) 이렇게 돼 있어. 미끄러워서 떨어질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거기에 비비적거리며 앉은 거지. 피난민들은 길거리에 수십 만 명이 밀려 내려오는데, 우리는 운 좋게 기차를 탄 거야.

조금 있다가 삑-칙-삑-칙-하면서 출발했어. 바로 내 앞에 스물두어살 밖에 안 된 아주머니가 탔는데 한 손에는 젖먹이 아이를 안고 다른 손에는 3살짜리 아이의 손을 잡았어. 아줌마가 깜빡 졸았나봐. 딱! 깨더니, '아저씨 내 아들 어디 갔어요?'라고 묻더라고. 나도, 다른 사람들도 모른다고 했어. 기차는 칙폭칙폭~ 찌그덕~ 칙폭~ 막 달렸어. 조금 있다가 아들을 찾던 그 아줌마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애를 안아달라고 하더니 아들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내리는 거야. 애 이름을 부르면서...

그게 조선 어머니의 참모습이야! 눈보라 치는 기차 위에서 아들을 찾아서 덮어놓고 뛰어내리는 게 바로 조선의 어머니고 조선의 여자라는 얘기야. 아니 그게 사람이다, 이 말이야! 박근혜는 지금 뭐하는 거야. 조선의 어머니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자격이 없어. 그렇게 말하니 사람들이 손뼉을 치더라고. 그게 박근혜에게 한 첫 말이었어."

거리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예지력이 번뜩였다.

그는 대거리를 마친 뒤인 지난 19일 오전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특별법은 자기하고 관계없다, 국회에서 합의된 대로 해라. 이렇게 말을 했지요. 이건 뭐요? 자기를 조사 대상에 삼을 생각은 하지 말라, 그런 얘기거든요. 나는 세월호 학살사건의 책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아니라는 폭탄선언이죠.

박근혜 스스로 대통령 아니라고 선언했으니 이제 대통령 자리에서 책임지고 물러가라, 이것이 진상규명의 핵심이죠."

그는 백발의 청년이었다. 

[백기완 선생과의 대거리 다섯 마당②] "내가 싼 똥과 오줌을 핥으라고? 난 절망했다"
[백기완 선생과의 대거리 다섯 마당③] "세 번이나 반역한 건 박정희밖에 없을 거야"
[백기완 선생과의 대거리 다섯 마당④] "백발 투사? 난 울보다"
[백기완 선생과의 대거리 다섯 마당⑤] "뿔로살이처럼 네 성깔대로 살란 말이야"

백기완 소장은 누구인가
▲1933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남
▲1954~1961    농민운동, 나무심기운동, 빈민운동을 함
▲1964             한일협정 반대투쟁 앞장
▲1967             백범사상연구소 설립
▲1969             3선개헌 반대투쟁 앞장
▲1973             박정희 유신타도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주도
▲1974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투옥(15년형)
▲1979             '명동 YWCA 위장결혼사건' 주도해 투옥(모진 고문을 당함)
▲1986             '부천경찰서 성고문 폭로대회' 주도해 투옥
▲1987, 1992     민중대통령 후보(재야·야당 통합을 시도, 좌절)
▲1999             계간 '노나메기' 창간
▲2011             '희망버스' 운동에 앞장
▲2014             현재 통일문제연구소장

■주요 저서
항일 민족론(1970)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1979)

통일이냐 반통일이냐(1987)
장산곶매 이야기(1993)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2009)
시집_ 젊은 날(1982), 이제 때는 왔다(1985), 백두산 천지(1989), 아 나에게도(1996)
영화극본_ 단돈 만원(1994), 대륙(1995), 쾌지나 칭칭 나네(1996)




태그:#아름다운만남, #10만인클럽, #벡기완, #박근혜,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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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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