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슬픈연극>에서 장만호를 연기하는 강신일

연극 <슬픈연극>에서 장만호를 연기하는 강신일 ⓒ 차이무


연극 <슬픈연극>에서 배우 강신일이 연기하는 장만호는 첫눈에 반한 여자와 결혼에 성공한 운 좋은 남자다. 하지만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탁자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을 보고 수선하기 위해 누워있는 걸 아내가 보고 기겁하는 장면에서, 아니, 연극 제목의 '슬픈'이라는 형용사를 통해 장만호의 건강이 어떤가를 눈치 빠른 관객은 미리 짐작할 수 있다.

극중 인물 장만호와 배우 강신일은 '투병'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이 개인적인 경험에 출연을 고사했을 수도 있었지만, 강신일은 이를 극복하고 무대 출연을 결심했다. 이십 대 관객보다 중장년 관객이 눈시울을 붉힌다는 <슬픈연극>의 강신일을 만났다.

"간암 판정 받았던 나, 이겨내리란 확신 있었지만...장만호는 달랐을 것"

- 초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슬픈연극>은 50대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초연 때에는 나보다 젊은 30대 중후반 배우들이 50대 주인공의 정서를 잘 살려서 공연했다. 보면서 가슴에 메어질 정도였다. 지금은 극중 인물이 실제 내 연령대다. 작가가 '사람이 나이를 먹듯이 작품도 세월을 먹은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를 건넨 적이 있다. 초연과는 느낌이 달라졌다."

- 장만호는 사랑하던 하숙집 주인 딸 심숙자와 결혼에 골인하는 데 성공한다. 사랑하던 사람과 결혼했지만 속마음과는 달리 투박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때가 있더라.
"누구나 사랑해서 결혼을 한다. 하지만 사랑이 평생 이어지기란 쉽지 않다. 젊었을 때의 사랑의 표현은 직접적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사랑의 표현은 젊을 때와는 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열정이 쇠퇴한 건 아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젊었을 때만큼 사랑을 달콤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젊었을 때와는 달리 중년 이후의 사랑은 말 한 마디에 배우자를 위하는 사랑이 담겨 있다."

 "젊었을 때만큼 사랑을 달콤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젊었을 때와는 달리 중년 이후의 사랑은 말 한 마디에 배우자를 위하는 사랑이 담겨 있다."

"젊었을 때만큼 사랑을 달콤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젊었을 때와는 달리 중년 이후의 사랑은 말 한 마디에 배우자를 위하는 사랑이 담겨 있다." ⓒ 차이무


- 부부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독백도 인상적인 연극이다.
"죽음으로 이별을 앞둔 부부의 하루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건데, 하루 만에 이들의 인생 전체를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독백이라는 장치가 필요했다. 부부가 티격태격하는 중간에 삽입되어 이들 부부의 이해를 돕기 위한 도우미 역할을 한다."

- 장만호는 IMF 이후 갖은 어려움을 겪은 후 이제는 살 만하니까 중병이 찾아오는 인물이다.
"장만호는 자신이 아픈 것에 대해 처음에는 원망도 많았고 화도 많이 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 50을 넘기다 보면 세상 돌아가는 것이 원리원칙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김대중 선생은 정치를 '생물'이라고 표현했다. 마찬가지로 장만호도 인생에서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다'라는 걸 아는 통찰력이 생겼을 나이다. 자신에게 병이 있다는 걸 안 처음에는 화가 났을지언정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해야 해야 할지를 준비했을 것이다."

- 강신일씨 역시 극 중 장만호처럼 투병의 기간을 겪었다. 투병을 떠올리는 작품이라 어려웠을 법도 한데, 작품을 고사할 생각은 없었는가.
"3년 전부터 배우가 무대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이외에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심하다가 '강신일과 여우'라는 공연을 기획했다. 시와 노래, 출연작을 아홉 단락으로 보여주는 공연인데 그 중에 유일하게 출연하지 않았던 작품이 <슬픈연극>이었다.

처음에 간암 판정을 받았을 때에는 멍했다. 하지만 그런 판정을 받았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완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병마를 극복했다. 하지만 죽음이 앞에 있다는 걸 장만호는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슬픈연극>에서 장만호가 화분에 물을 주는 주기를 기록하고 화분에 식물의 이름을 기록하는 건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자 이생에서 남겨질 아내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슬픈연극', 슬픔만이 주된 정서 아냐...삶 성찰하는 연극 됐으면"

 "세상에 있는 모든 역할을 한 배우가 모두 연기할 수는 없다. <레드>를 연기할 때 기뻤다. 지금은 특정한 작품에 대한 욕심은 없다. 생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을 하는 게 소원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역할을 한 배우가 모두 연기할 수는 없다. <레드>를 연기할 때 기뻤다. 지금은 특정한 작품에 대한 욕심은 없다. 생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을 하는 게 소원이다." ⓒ 차이무


- 언제 어느 때 관람해도 <슬픈연극>은 관객석에서 울음소리가 항상 들리더라.
"5~6년 전에 연출가에게 함께 공연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에는 몸이 좋지 않을 때였다. 공연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서 참여하지 못했다. 이번 공연에 참여할 때 처음에는 관객에게 진한 울음을 안겨주자는 심정으로 참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연습하며 점점 울리는 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이 50이 넘어서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남겨질 배우자를 어떻게 배려하고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중요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극이 슬프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관객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싶었다. 관객이 많이 웃을 수 있도록 하고도 싶었다.

<슬픈연극>은 슬픔이라는 정서가 주된 연극은 아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삶에 대한 성찰을 관객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모든 이가 상대방을 배려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사람은 태생적으로 다른 환경 가운데서 다른 사고와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것에 대한 이해가 폭넓어진다면 세상의 마찰은 줄어들고 전쟁도 줄어들 것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입장을 이해하는 배려심이 더욱 넓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거꾸로 없는 사람, 소외된 사람,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이 참고 이해하는 세상이다. 힘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희생해야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거꾸로 된 것 같다."

- 그동안 무대와 TV, 드라마에서 많은 역할을 연기했다. 아직도 해보지 않은 역할이 있을까.
"세상에 있는 모든 역할을 한 배우가 모두 연기할 수는 없다. <레드>를 연기할 때 기뻤다. 지금은 특정한 작품에 대한 욕심은 없다. 생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을 하는 게 소원이다."

강신일 슬픈연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