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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자락길 입구 메타세쿼이아 길
 앞산자락길 입구 메타세쿼이아 길
ⓒ 추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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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부산의 한 도보여행 단체가 걷는 대구앞산자락길 순례를 안내했다. 대구앞산자락길이란 고산골 입구 메타세쿼이아길에서 달비골 월곡못까지 앞산 둘레를 타고 이어지는 길을 말한다. 그러므로 오르막내리막을 숨가쁘게 타는 등산로는 결코 아니며, 천천히 산자락을 완만하게 거니는 도보여행의 길이다.

부산 사람들은 대구앞산자락길을 칭찬해마지 않았다. 일행 중 한 사람은 "내가 지금까지 걸어본 자락길 중 전국 최고"라고까지 격찬을 했다. 대구사람인 나는 "아니, 뭘 그렇게까지 찬사를 주십니까?"하고 겸양을 표했지만, 내심 흐뭇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실 대구앞산자락길은 우리나라 방방골골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한 내용을 두루 갖추고 있다. 첫째, 산 자체가 앞뒤로 남구와 달서구를 거느리고 있는 관계로 자가용을 끌고 찾지 않아도 되는 편의성이 있다. 둘째, 길이 부드러워 웬만한 노약자도 모두 걸을 수 있다. 셋째, 메타세쿼이아길, 이팝나무길, 꽃무릇길, 성불사 솔숲길 등 자연의 향기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넷째, 고려태조 왕건과 1910년대 국내 무장독립투쟁의 중심 조선국권회복단 유적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답사지이기도 하다.

고산골 입구의 공룡발자국 안내 표지판
 고산골 입구의 공룡발자국 안내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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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세쿼이아길이 끝나면 고산골로 들어가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하지만 역시 앞산자락길답게 경사가 거의 없고 평탄하다. 말 그대로 노약자도 전혀 부담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게다가 이곳에는 공룡발자국 화석까지 있다. 대도시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을 볼 수 있는 곳이 이곳 말고도 또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곳은 사람들이 사는 주택지가 끝난 지점이다. 그러므로 영어 표현인 다운타운 식으로 말한다면 이곳은 상당히 높은 곳이다. 그런데 공룡이 살았다? 공룡이라면 빙하기 시대에 물가에 살면서 풀을 뜯어먹은 동물이 아닌가? 이 높은 곳까지 빙하기에는 물이 가득차 있었다?

당신의 몸은 표준입니까?
 당신의 몸은 표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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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은 빙하기 시절 땅이 아니었다. 거대한 호수였다. 고산골 공룡발자국은 그 사실을 증언해주는 유적이다. 공룡이 다니면서 풀을 뜯어먹고 물을 마신 흔적이 바로 이곳의 공룡발자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전국 호수 중 절반 이상이 대구경북에 있고, 발견된 공룡발자국 역시 절반 이상이 대구경북에 소재하고 있다.

공룡발자국 화석지를 본 다음 조금 더 걸으면 재미있는 시설이 나온다. 시설은 "당신은 대한민국 표준입니까?" 하고 묻는다. 시설은 통나무를 세로로 세워놓은 다음 그 사이를 통과해 봄으로써 '내가 표준인지, 뚱뚱한지, 너무 말랐는지 확인해보라'고 주문한다.

앞산자락길을 걷는 사람들이 통나무 사이 중 어느 간극을 자신이 통과할 수 있는지 측정하고 있다. 60대는 24.39cm, 50대는 22.77cm, 40대는 20.42cm, 30대는 19.21cm, 20대는 17.35cm가 기준이다. 사람은 나이가 많아지면 점점 허리와 몸통이 굵어지는 모양이다.

시설이 아주 적당한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산을 오르내리는 길목이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듯하다. 어제는 지나지 못했던 간극을 오늘 통과했다면 스스로 흐뭇할 것이고, 그 반대라면 집에 가서부터 당장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이에 맞는 통과 간극을 지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뚱뚱하단 말인가?'하고 충격을 받는 순간,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신은 대한민국 표준입니까?'라는 안내문 앞에 여성 표식이 붙어 있다. 여성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은 이보다 훨씬 몸두께가 두꺼운 것이 분명하니 그 점을 참고하면 되겠다. 

앞산자락길 제2구간 맨발산책길. 바닥이 빙하기 흔적인 건열 무늬를 하고 있다.
 앞산자락길 제2구간 맨발산책길. 바닥이 빙하기 흔적인 건열 무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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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입구에서 길은 삼거리로 나뉜다. 직진을 하면 고산골 등산로로 들어간다. 하지만 오르막내리막이 있는 등산로는 자락길이 못 된다. 자락길은 편편하게 이어져야 한다. 과연 삼거리 중 오른쪽으로 나아가는 길은 정말 편편하다. 남구청이 발행한 <앞산 자락길> 소형 홍보물도 이 길을 '노약자 이용 가능 구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이 길은 맨발로 걷도록 인도 부분을 황토로 만들어 두었다.

차도 부분도 눈길을 끈다. 일반 차량은 금지하지만 유치원 아이들 현장체험학습 때문에 '노란 차'들은 통행이 허용되어 있는 차도의 바닥이 특이하다. 조금 전 공룡발자국 화석지에서 본 건열 무늬 타일로 바닥이 꾸며져 있다. 건열은 물기운이 날아가면서 바위나 지표에 생겨난 거북등 같은 무늬를 말한다. 건열 역시 이 일대가 아득한 옛날에는 땅이 아니라 물가였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지금까지 1구간(메타세쿼이아길)과 2구간(맨발산책길)을 다 걸었다. 공룡발자국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10분 정도 더 걸리지만, 그냥 걷기만 하면 1구간과 2구간은 합해서 1.8km 거리에 36분가량 걸리는 길이다. 이제 3구간(이팝나무길)을 걸을 차례가 되었다. 2구간 끝이자 3구간 시작점인 강당골 입구에 서서 적요한 산길을 바라본다. 길의 평화는 곧 내 마음의 평화다.

덧붙이는 글 | 대구앞산자락길 답사기는 계속됩니다.



태그:#앞산자락길, #왕건, #조선국권회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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