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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다카츠키시에서 세운 기념비와 인공 굴이 있는 산입니다.
 1995년 다카츠키시에서 세운 기념비와 인공 굴이 있는 산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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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오사카부 다카츠키시(高槻市) 동북쪽에 있는 나리아이초(成合町)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1944년부터 한 해 동안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한국 사람들이 인공 굴을 팠던 곳입니다. 다카츠키 시에서는 1995년, 종전 50 주년 기념 비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944년 여름 일제는 사이판 섬이 미군에게 함락되고 일본 본토 공격이 시작되자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나가노현 마츠시로 대본영을 시작으로 일본 전국 200여 곳에 인공 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일본군은 굴을 파서 군사 지휘 시설이나 황실 가족, 무기고, 전투기 공장들을 인공 굴 안 넣으려고 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나면서 인공 굴은 대부분 다 파지 못하여 사용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공 굴 가운데 가장 큰 곳은 도쿄 북쪽 나가노현 마츠시로에 있습니다. 마츠시로 인공 굴은 넓이가 4만㎡로 당시 한반도에서 끌려온 사람은 1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곳 다카츠키 인공 굴은 도쿄 아사카와(淺川), 군마현 야브즈카(藪塚)), 아이치현 가쿠덴(樂田)에 이어서 다섯 번 째 크기입니다.

다카츠키 나리아이초 인공 굴은 넓이가 1만 7000㎡입니다. 그 때 동원된 사람들은 3천 500 명 정도입니다. 그 가운데 한반도나 일본에서 끌려온 한국 사람들은 6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굴을 파면서 위험이 따르는 폭파작업이나 고된 일은 대부분 한반도에 온 사람이 맡아서 했다고 합니다.

일본군은 전쟁이 끝난 뒤 바로 인공 굴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최근 다카츠키시나 재일 한국인, 일본 민간단체들이 공동으로 인공 굴을 조사하여 그 전모가 밝혀졌습니다.

이곳 다카츠키시 나리아이초 마을 산에 있는 터널은 다섯 곳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일본군은 인공 굴을 파는 작전을 다치소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다카츠키시 지하 창고의 머리글자를 간추려서 다치소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원래 인공 굴은 창고로 쓰려고 했습니다. 미군의 공격으로 후쿠시마나 고베에 있는 비행기 공장이 피해를 입자 이들 비행기 공장을 이전하기 위해서 설계를 바꾸었습니다. 인공 굴 안에는 비행기 엔진을 만들기 위해서 선반이 놓인 곳도 있었습니다. 일부 지하 인공 굴 공장에서 전투기 엔진을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나리아이기타노초 마을 회관과 옆에 흐르는 히오가와(檜尾川) 강입니다.
 나리아이기타노초 마을 회관과 옆에 흐르는 히오가와(檜尾川) 강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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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아이기타노초 마을은 오래 전부터 조선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곳에서 인공 굴을 팠던 사람들이 그대로 눌러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은 덩그러니 마을 회관만 남아있고, 한가한 시골 마을로 오가는 사람들도 그다지 눈에 띠지 않고 논에는 벼들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인공 굴은 다섯 곳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각 지역별로 땅 속에 바둑판처럼 팠습니다. 입구는 대부분 남쪽으로 뚫려있습니다. 지역에 따라서 다르지만 남쪽으로 입구가 28곳이나 되는 곳도 있습니다. 인공 굴은 지역에 따라서 다르지만 높이가 83cm에서 5m가 넘는 곳도 있습니다.

인공 굴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최근 인공 굴 근처로 제2메이신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공사로 인해서 일부 인공 굴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다카츠키는 교토시와 오카사시 사이에 있습니다. 오사카나 교토, 어느 곳(JR 철도길 기준 21 km)이나 가기가 쉽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많이 살아왔고 여러 가지 생활필수품 공장이 많이 있습니다. 일본군은 1944년 이곳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다 일을 시켰습니다.

현재 다카츠키시 인구는 35만 5천 명 정도입니다. 다카츠키시에는 JR, 한큐 등 철도 역이 있고, 교토나 오사카, 고베 등 큰 도시와 이어져 있습니다. 특히 JR 다카츠키역은 신쾌속 전철이 머물기 때문에 한층 편리합니다.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나 일부 시민단체나 연구자들은 과거 일본이 행한 잔인한 진실을 밝혀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카츠키 다치소 인공 굴과 관련된 자료를 찾고, 현장을 방문하여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부디 이런 사람들이 더 늘어났으면 합니다.

  최근 인공 굴을 조사하여 크기 넓이를 비롯하여 무너지거나 막힌 곳, 굴을 파는 도구도 찾아냈습니다.
 최근 인공 굴을 조사하여 크기 넓이를 비롯하여 무너지거나 막힌 곳, 굴을 파는 도구도 찾아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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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다치소 이야기, 패전 전야 다카츠키 조선인 강제 노동,  다카츠키 다치소 전적보존회, 1994.
다카츠키시 누리집, http://www.city.takatsuki.osaka.jp/,
사와 이사오 외 3인, 오사카부 다카츠키시 전쟁유적, 다치소 인공 굴의 사진과 측량 분석, 동굴환경 NET학회, 기요4호,2013. http://www.cave-ens.com/pdf/CENS4_014.pdf#search='%E3%82%BF%E3%83%81%E3%82%BD',
아사히신문(2014.8.28) http://www.asahi.com/articles/ASG8W3SMVG8WPPTB001.html,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태그:#다카츠키, #다치소, #인공 굴, #일제 강점기 , #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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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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