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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 지은 약사암은 마치 하늘 위에 떠있는 느낌이 든다.
▲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약사봉 아래 약사전 산꼭대기에 지은 약사암은 마치 하늘 위에 떠있는 느낌이 든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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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들렀다 가야 될 곳이 있다. 바로 약사암인데, 힘들게 정산에 올랐다 이곳을 둘러 보지 않고 가게 되면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최고의 풍경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금오산 정산에 처음 오른 건 산을 자주 타지 않던 20대 초반 때였는데, 거친 산을 오르느라 다리 힘도 많이 풀렸고 다시 되돌아 내려갈 생각을 하니 뒷일이 까마득하여, 현월봉 정상 바로 옆에 있는 약사암에 내려 갔다 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구경도 힘이 남아 돌고 여유가 있어야만 즐거운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달리는 취미가 생겨 튼실한 두 다리를 갖게된 요즘은 어디를 가더라도 가만히 있지 못해 안달이다. 또 조금 만 더 발품을 팔면 더욱 멋진 자연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늘 품고 있다.

금오산 성안을 지나 정상에 올라온 나는 약사암을 거쳐, 안가본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볼 요량으로 약사암 입구에 들어섰다. 양쪽의 봉을 사이에 두고 저멀리 산아래 펼쳐진 드넓은 땅과 멋들어지게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이 마치 하늘 나라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예전의 난, 절을 보면 괜시리 거리감을 느꼈고 오래된 절의 그윽함과 신비로움을 느끼지 못했기에 금오산 정상에 왔다가도 약사암에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좀 들어 불혹을 넘긴 뒤로는 절의 단청무늬가 좋아지고 벽에 그려진 탱화를 비롯해 여러 그림들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절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서도 궁금해져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한 번 더 찾아보기도 했다. 

약사암은 약사전, 삼성각, 일주문, 종각, 요사로 구성되어 있다. 1985년 기암절벽 아래에 남향으로 건립한 약사전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집으로 약사암의 중심법당이다. 내부에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으로 조성한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어릴적엔 조금 무섭기도 했고 이상한 모습의 부처님상이 이젠 정감이 간다.
▲ 석조여래좌상 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어릴적엔 조금 무섭기도 했고 이상한 모습의 부처님상이 이젠 정감이 간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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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봉 밑의 약사전 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옥황상제가 하늘나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해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마침 내가 방문한 이날은 날씨가 워낙 쾌청해 저멀리 대구 북구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화창한 날 오르게 되면 더욱 멋진 광경을 볼 수 있게 되는 금오산이다.
▲ 산아래로 보이는 칠곡군 북삼과 저멀리 보이는 왜관과 대구 북구 전경 화창한 날 오르게 되면 더욱 멋진 광경을 볼 수 있게 되는 금오산이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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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금오산(金烏山, 977m) 정상의 약사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당시의 유물은 발견된 바 없으며, 1618년(광해군 10) 간행된 <일선지 一善誌>, 1799년(정조 23) 간행된 <범우고>에 고찰이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종 때 편찬된 <영남진지>에는 '법당은 8칸으로 성내(城內) 삼리(三里)에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1935년 우상학이 지은 '약사암중수기'에 본래 지리산에 있던 석불 3기 중 1기를 이곳 약사암으로, 나머지 2기를 수도산 수도암과 황악산 삼성암으로 옮겨 봉안했다고 쓰여 있다. 석조여래좌상 좌우로 일광, 월광보살이 협시되어 있으며 후불탱, 신중탱, 독성탱 등의 불화가 걸려 있다. 요사채 왼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바위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높이 5.5m의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이 조각되어 있다(두산백과 '약사암' 설명 중)

약사암이 있는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고 고려때에는 남숭산(南嵩山)이라 했으니 그 유래는 중국의 황하강 유역 하남성(河南省)에 숭산(嵩山)이라는 중국의 오악(五嶽) 중의 하나로 유명한 산이 있는데, 그와 생김새가 흡사하여 숭산이라 명명하면서 남쪽에 있다해서 남숭산이라 하고 황해도 해주에 북숭산을 두어 남북으로 대칭케 되었다고 한다.

종이 울리게 되면 은은히 저멀리 100리까지 종소리가 퍼져나갈 듯한 느낌이다.
▲ 금오산 약사암의 범종각 종이 울리게 되면 은은히 저멀리 100리까지 종소리가 퍼져나갈 듯한 느낌이다.
ⓒ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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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고려시대 문종은 왕자를 출가시켜 이 산에서 수도(修道)하게 하였고, 훗날 대각국사로 봉하여 호국불교로 포교와 국정의 자문에 임하도록 했으니 남숭산의 품격과 위상이 역사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금오산(金烏山)이라는 이름은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태양안에 금까마귀가 산다고 믿었고 그 금까마귀는 발이 셋달린 삼족조(三足鳥)로 기이한 형상의 까마귀이나 태양의 핵이요 상징으로, 태양은 원시시대부터 인류의 가장 숭고하고 위대한 절대적인 존재로 여겨 어느 민족이던 원시종교의 형태로 신앙의 자체라 믿었으며 그 태양안에서도 핵이요 정기인 금까마귀는 우리 인류의 절대적인 존재로 숭배되었다(구미시청 자료).

국내에서도 유일하게 깍아지를 듯한 산정상에 지어진 절이어서 더욱 신비감이 감돈다.
▲ 겨울에 바라본 약사암 국내에서도 유일하게 깍아지를 듯한 산정상에 지어진 절이어서 더욱 신비감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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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금까마귀가 사는 태양이 매일 아침 떠오르는 것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금오산 약사암이며 태양의 정기를 한몸에 받아 더욱 신비로운 이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전망으로 손색이 없다.

다가 오는 주말에 약사암에서 펼쳐지는 가슴 벅찬 대자연의 광활함을 느껴 보길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유통신문>과 <한국유통신문>의 카페와 블로그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금오산 약사암, #금오산 약사봉, #한국유통신문 오마이뉴스 후원, #구미김샘수학과학전문학원 수학무료동영상강의, #아도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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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빨간이의 땅 경북 구미에 살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우리네 일상을 기사화 시켜 도움을 주는 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힘이 쏫는 72년 쥐띠인 결혼한 남자입니다. 토끼같은 아내와 통통튀는 귀여운 아들과 딸로 부터 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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