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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값을 대폭 올린다고 합니다.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국민들 뜻을 물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루에 담배 한 갑씩 피우는 사람이 연중 부담하는 세금이 무려 9억 원짜리 아파트에 부과되는 세금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정부에서는 세금 인상 계획이 없다고 하지만 여론의 향배는 '꼼수'라는 반응입니다. 담배 값 인상에 이어 주민세와 자동차세도 인상할 거라는 소식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금들이 정부가 의도하고 있거나, 회자되고 있는 대로 처리된다면 꼼수니 정법이니 하는 시비를 떠나 국민 개개인의 사정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세금이 채 6개월도 걸리지 않아 얼렁뚱땅 결정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정부가 말하는 대로 담배 값을 올리는 게 정말 국민들 건강을 위한 궁여지책, 금연을 위한 방책 중 하나라면 시간적 여유를 갖고 국민들이 믿을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며 추진하면 될 것입니다.

주민세와 자동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 살림에 꼭 필요해서라면 그 씀씀이를 솔직하게 말하고 동의를 구해서 인상하면 될 것입니다. 단 전제가 있습니다. 씀씀이가 투명해야 합니다. 인상을 하는 이유에 거짓이 없어야 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 최고의 명군을 꼽으라고 하면 27명의 왕 중 당연 세종일 거라 생각됩니다. 세종의 어떤 면이 후대에 세종을 최고의 명군으로 꼽게 하는 이유나 치적이 되었을까가 궁금합니다. 

세종이 남긴 치적은 실로 한 둘이 아닙니다.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농업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를 정리하고, 공법(貢法)을 제정하는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하여 민족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세종이 최고의 명군이 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한 이유는 논쟁을 서슴지 않은 소통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세종은 자신이 출중한 능력을 소유한 실력자였지만 결코 독단적이지 않았습니다.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고, 동의할 때까지 거듭 설득하는 리더십이었습니다.

종래의 세법이던 답험손실법(踏驗損實法)에서 새로운 세법인 공법을 실시하기까지 소요된 17년이라는 시간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논쟁들이야 말로 세종이 어떤 임금이었으며, 세종이 명군일 수밖에 없는 자질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조선을 움직인 다섯 가지 격론 <논쟁으로 본 조선>

<논쟁으로 본 조선> (지은이 이한 / 펴낸곳 청아출판사/2014년 8월 30일 / 값 1만 8000원)
 <논쟁으로 본 조선> (지은이 이한 / 펴낸곳 청아출판사/2014년 8월 30일 / 값 1만 8000원)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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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본 조선>(지은이 이한, 펴낸곳 청아출판사)에서는 조선 시대에 벌어졌던 다섯 가지 토론을 실록과 문집 등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다섯 가지 토론, 한성 천도 논쟁, 공법 실시 논쟁, 1차 예송 논쟁, 2차 예송 논쟁, 문체 반정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과 역사적 의미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다섯 가지 토론은 그자체가 역사이기도 하지만 논쟁의 주재자가 된 왕이 어떤 리더십의 소유자며 통치권자,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가늠하기에 충분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세종을 주재자로 하는 공법 실시 논쟁은 지속된 시간만도 17년이나 되는 엄청난 세월입니다. 토론에 소요된 시간만 엄청난 게 아니라 그 과정 또한 지루할 만큼 반복되고 거듭됩니다. 왕이 곧 국가였던 시대였지만 세종은 독단적이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에게 그 뜻을 묻고, 관리들이 허심탄회하게 하는 말들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이해하고 공감할 때까지 설명하고 설득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백성들과 관리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기 위해 세종은 부단히 공부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거나 잘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격의없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각 도의 환상(還上)을 삭감해 줄 액수를 가늠하여 아뢰게 하고, 백성이 원망하는 것과 백성을 기쁘게 할 일을 각각 진술하라."

부채를 줄일 방법을 말하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말하라는 소리였다. 그러면서 세종은 이런 말도 했다.

"내가 명철(明哲)하지 못해서 일의 옳고 그른 것을 내다보지 못하여 조소를 받기에 이르렀다. -<논쟁으로 본 조선> 159쪽-

세종은 자신의 권력과 지식을 무기로 삼아 마구 휘두르거나, 강압적으로 윽박지르지 않았다. 대신 집념과 불굴의 의지로 신하들을 설득했다. 그러면서도 손수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며 공법의 사항을 고민하고, 민생을 걱정하고, 신하들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없느냐고 물었다. 수십 년간 말이다. -<논쟁으로 본 조선> 185쪽-

세종 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는 공법 실시 논쟁은 조선 최대의 마라톤 토론입니다. 실력도 있었고, 능력도 됐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권력도 있었던 세종이 그토록 지루한 세월 동안 토론을 거듭했던 건 세종 자신이 갖추고 있는 명군의 자질을 보인 결과일 수도 있지만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정치적 산물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열하일기> 쓴 박지원, 정조에게 반성문을 쓰다

같은 시대의 역사라 할지라도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역사적 평가와 가치는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역사적 평가는 단색 프리즘처럼 획일적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이러한 이유가 있기에 역사 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됩니다.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은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열하일기> 이후에는 별다른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명문가로 알려진 박지원이 과연 어떤 이유로 <열하일기> 이후에는 별다른 작품을 남기지 않았는지 궁금해집니다.

창작의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의 작품을 내놓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까닭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건, 정조가 주재한 문체반정 논쟁 때문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개혁 군주로 알려진 정조였지만 정조는 문체에서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점차 자유분방해지는 소설문체(稗史小品體; 옛 사상이나 문체에서 벗어나 현실의 다양한 면모와 각양각색의 인물군상을 생동감 있게 담은 새로운 문체)를 정통고문(正統古文)으로 되돌리려는 정책의 일환이 낳은 논쟁이 문체반정입니다.   

"사신私信이기는 하지만 임금의 명령을 받든 것이라,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두렵더니 뒤따라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 그러나 글방의 버려진 책이 위로 띠끌 하나 없이 맑은 대궐을 더럽힐 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논쟁으로 본 조선> 431쪽-

정조의 뜻이 그러함에도 문체를 고치지 않은 이옥은 과거를 볼 자격을 잃었을 뿐 아니라, 웬만한 양반들은 다 면제받는 군대도 두 번이나 다녀와야 했습니다. 이때, 박지원 또한 바른 문체로 죗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남공철을 통해 받아 쓴 반성문의 일부가 위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책에서 조명하고 있는 다섯 가지 격론들을 되새김질해 보는 게 누구에게는 단순히 역사를 되돌아보는 정도로 한정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정을 책임지고 있거나 정책입안에 관여하고 있는 관료들에겐 국가의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했을 때, 역사적으로 그 결과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시감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조선 시대에 벌어졌던 다섯 가지 토론을 통해 박근혜정부가 펼치는 작금의 정책들과 박근혜 정부가 미래에 받게 될 역사적 평가를 흐릿하게나마 미리 어림해 볼 수 있는 만물상 같은 거울이 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논쟁으로 본 조선> (지은이 이한 / 펴낸곳 청아출판사/2014년 8월 30일 / 값 1만 8000원)



논쟁으로 본 조선 - 조선을 움직인 다섯 가지 격론

이한 지음, 청아출판사(2014)


태그:#논쟁으로 본 조선, #이한, #청아출판사, #문체반정, #예송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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