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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부승소 판결이 난 뒤 기뻐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창근 부장판사)는 "원고들이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근로자임을 확인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부승소 판결이 난 뒤 기뻐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창근 부장판사)는 "원고들이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근로자임을 확인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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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지쳐 있었다. 2010년 대법원이 내린 '정규직 인정' 판결을 믿고 끝까지 현대차 근로자 지위확인 집단소송 결과를 기다리던 비정규직들이나, 힘들고 지쳐 소를 취하하고 회사측의 특별채용에 지원서를 낸 비정규직들이나. 지치기는 매 한가지였다.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대부분 공정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릴 즈음 노조를 결성해 지난 10여 년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 온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그 사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면서 수백 명이 해고됐고, 수백 억 원의 손·배가압류로 고통받았다. 누구는 구속됐고 어떤 이는 자신의 몸을 불살랐고 어떤 이는 스스로 목을 맸다. 하지만 이들은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는 사실을 끝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현대차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인정 소송은 지난 2010년 1900여 명으로 시작해 올해 8월 21~22일 판결을 앞두고는 1600여 명으로 줄었다. 여기다 판결을 3일 앞둔 지난 8월 18일 현대차노사가 특별교섭에 합의하면서 판결이 연기된 후 다시 수백 명의 비정규직이 소를 취하했다.

끝까지 법원의 선고를 기다린 비정규직은 1100여 명으로 줄었지만 결국 이들은 18일과 19일 법원으로부터 정규직 인정 판결을 받았다.

1900명이 시작한 집단 소송, 4년 만에 1100여 명으로

지난해 10월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할 당시의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 280일 가까운 고공농성으로 현재 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할 당시의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 280일 가까운 고공농성으로 현재 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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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최병승씨가 7년간의 소송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정규직 인정 파기 환송 판결을 받은 후 현대차 비정규직 1900여 명은 '정규직 인정 집단소송'이라는 초유의 법적 다툼을 시작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이 싸움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고 봤다. 최대 로펌을 앞세운 대기업과 비정규직과의 싸움은 무척 힘들어 보였다.

2010년 말 비정규직 노동자 수백 명이 추위와 하루 김밥 한 줄이라는 배고픔을 인내하며 25일간 공장 점거 농성을 벌인 것도, 2012년 10월 17일부터 2013년 8월 8일까지 현대차 명촌 정문 앞 송전철탑 위에서 조합원 두 명이 296일간이나 고공농성을 벌이면서 외친 것도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는 거였다.

하지만 이들에게 '법'은 멀기만 했다. 돌아오는 건 '불법집단'이라는 보수언론의 비난과, 그들을 도우려 온 희망버스 탑승자들과 함께 폭도로 내몰린 불명예뿐이었다. 사회적 약자인 지역 비정규직을 도와야 할 지자체는 "희망버스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폭력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사법 당국의 엄중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관용 없이 책임을 끝까지 추궁할 것을 촉구한다"는 공고문까지 냈다.

현대차 비정규직들로부터 "불법파견을 해소해 달라"며 수차례 고발장을 받은 노동부와 검찰도 조사를 더디게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은 마찬가지였다.

2013년 8월 8일 현대차 비정규직 최병승·천의봉 두 조합원이 296일간의 농성을 마치고 철탑을 내려오기 직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시민사회단체가 철탑 아래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원은 그로부터 1년 뒤인 2014년 9월18일과 19일 현대차비정규직의 집단소송에서 정규직임을 인정했다.
 2013년 8월 8일 현대차 비정규직 최병승·천의봉 두 조합원이 296일간의 농성을 마치고 철탑을 내려오기 직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시민사회단체가 철탑 아래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원은 그로부터 1년 뒤인 2014년 9월18일과 19일 현대차비정규직의 집단소송에서 정규직임을 인정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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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들이 믿을 것은 법원의 판결뿐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선고는 더디기만 했다. 3년 넘게 끌어오던 판결이 올해 들어서도 수차례 연기됐다. 지난 2월 13일 내려질 예정이던 판결은 4월 10일로, 다시 8월 21~22일에서 9월 18~19일로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면서 비정규직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 사이 회사 측은 소송을 제기한 비정규직을 포함해 하청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규채용을 이어갔고, 해고되거나 재산을 압류 당해 생활고에 지친 일부 비정규직을 포함해 수백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스스로 소송을 취하하기도 했다.

현대차 비정규직들에 가해진 고통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부 보수 언론들의 보도는 이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법원의 선고 기일이 다가오면서 회사측이 추진하는 신규채용과 특별교섭 제안은 '용단'으로 보도된 반면, 비정규직들에게는 특별교섭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비난의 화살이 날아왔다.

법원의 선고 기일이 다가오면서 언론에는 '독불장군 지도부에 조합원만 피해를  본다'는 기사부터 ''비상구'조차 폐쇄하는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울산지회' 등 비정규직노조에 대한 비난 기사가 쏟아졌다.

이에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는 "일부 경제지와 지역언론들을 통해 사실을 왜곡해서 소설 같은 기사를 써가며 비정규지회를 매도하고 3지회에 대한 분열공작을 벌여왔다. 우리는 회사의 이러한 치졸한 작태에 강한 분노를 참을수가 없다"며 끝까지 소송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소송 자체가 무의미' 여론 뒤집은 판결

하지만 소송 결과를 기다리던 현대차 비정규직들에게 마지막 '쓰나미'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학수고대하던 법원 판결을 3일 앞둔 지난 8월 18일, 현대차 회사측과 믿었던 정규직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소 취하를 전제로 하는 특별교섭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특히 비정규직노조가 더욱 고통스러웠던 건, 비정규직노조 전주·아산지회가 이 같은 합의에 동참하면서 "소송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여론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회사측이 '비정규직 수천 명을 특별고용 한다'는 내용이 대서특필되면서 '사측의 특별고용은 3년 10개월을 기다리던 법원의 선고와 불법파견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정규직노조의 항변은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하지만 비정규직노조 울산지회는 "특별교섭 합의가 불법파견 판결을 흔들기 위한 잘 짜여진 각본"이라며 전주·아산지회 일부 조합원들과 '특별교섭 불복종 운동'을 벌이며 끝까지 맞섰다.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부승소 판결이 난 뒤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부승소 판결이 난 뒤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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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9월 18일, 비정규직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10개월 만에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정찬근)는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했다. 또한 그동안 밀린 정규직 임금을 지불하라고도 판결했다.

'소송이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심화되던 지난 11일부터 서울 중앙지법 앞에서 동료 비정규직과 함께 단식농성을 벌이던 현대차비정규노조 울산지회 이진환 수석부지회장의 외침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지난 10년 동안 구속, 해고, 가압류의 고통 속에서도 정부와 법원의 불법파견 인정 판정에 따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당한 법적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해 왔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우리의 주장은 당연하다."


태그:#현대차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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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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