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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독일, 대만 등은 핵발전소가 위험하다고 신규 발전소를 안짓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정부는 최근 30년 된 월성1호기 가동기간을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들 국가와 우리나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지난 17일 서울 정동길 천주교 프란치스코 회관에서는 <한국 에너지 거버넌스의 현주소를 묻는다>라는 주제로 이 문제를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민간 전문 연구기관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주최로 학계, 환경단체, 국회, 송전탑 피해주민 등 40여 명이 참여해 4시간 동안 논의가 이뤄졌다.

9월 17일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는 <한국 에너지 거버넌스의 현주소를 묻는다>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9월 17일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는 <한국 에너지 거버넌스의 현주소를 묻는다>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 이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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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2004년 민간단체인 시민과학센터 준비로 마련된 '원자력 중심의 전력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시민합의회의는 지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합의회의는 퇴직교사, 가정주부, 대학생, 회사원, 농업기술자 등 20대~70대의 시민패널 18명이 선출돼, 관련 정보를 제공받고 무기명투표로 의견을 모았다. 원자력계 인사, 관련부처 공무원, 시민참여 전문가, 기자 등으로 조정위원회를 꾸려 이 회의가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참가 시민들은 ▲원자력에 대한 종속심화, ▲전력정책 결정과정의 폐쇄성, ▲신재생에너지 개발노력 부족 등을 주요 문제로 꼽고, 신규 핵발전소는 그만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합의회의 실무를 담당했던 국민대 김병수 연구교수는 "당시 합의회의는 선구적인 일이었다"며 "최근들어 10년 전에 열렸던 시민회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자료집을 구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들어온다"고 소회를 밝혔다.

2004년은 전라북도 부안 핵폐기장 설치 문제로 정부-주민간 갈등이 커진 때기도 했다. 당시 부안주민들은 스스로 주민투표를 준비해 주민 일반의 뜻을 모았고, 결국 부안 핵폐기장은 백지화 됐다. 당시 부안주민투표관리위원회 사무처장을 맡은 하승수 녹색당 운영위원장도 토론회에 참여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박진희 소장은 " 2003년 부안 항쟁의 홍역을 교훈삼아 시민 수준에서 전력정책의 거버넌스 모델을 시도했던 2004년 시민합의회의는 그 방식과 깊이가 지금도 유력한 참고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2007년 노무현정부는 국가에너지 위원회를 처음 만들었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위원장은 대통령이 되고, 각계장관 7명 학계, 시민단체 등 민간위원 16명이 모여 논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이 위원회는 이후 유명무실해졌고, 이명박 정부는 산업자원통상부 산하 기구로 위상을 낮추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양이원영 처장은 "여론 수렴절차와 이와같은 거버넌스는 다른 듯 하다"며 "거버넌스에서 정권이 정한 방향과 다른 결론을 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양 처장은 최근 발표된 정부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열린 민간 합동회의는 위상은 낮아졌으나 관련자료 접근성은 전보다 높아져 의외였다고 평가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회, 언론 등 사회 전반 관심이 높아진 게 원인으로 보인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2차 에너지 기본계획, ▲노후원전 스트레스 테스트,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 의원회,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각종 에너지 민관회의를 제안했다. 이를 두고 참여할 지 말 지 시민단체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기도 하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한국 에너지 거버넌스의 성격을 ▲강한 국가주도성, ▲단기적 경제성과 산업 경쟁력 중심, ▲여전한 일방성과 폐쇄성으로 정리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할 방향으로 ▲에너지 거버넌스 정책의 원칙(다양성, 투명성, 민주성, 접근성) 확립, ▲에너지 관련 법제도의 통합, ▲에너지 시민운동 확대, ▲시민사회의 에너지 거버넌스 전략 재검토 등을 제시했다.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 소장은 에너지 전환 운동은 장기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20~30년간 계속되는 과정을 초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대만에서는 공정률 98%의 새 핵발전소(4호기) 가동이 일시 중단되었다. 대만은 1989년부터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반대여론을 모았고, 2000년 정권교체 뒤 대만정부는 4호기 건설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당시 국민당의 반발로 다시 추진되었으나, 2014년 국민들의 광범위한 반발로 결국 중단되게 되었다. 최근 대만 국민당 대변인은 "4호기 핵발전소 건설을 일시 중단하며, 재가동 여부는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의당 김제남 국회의원실의 김세호 비서관은 국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국회가 곧 거버넌스가 아니냐는 것이다. 김 비서관은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전문 관료들을 견제할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전 관계자들을 상대하면서 철의 옹벽 같은 카르텔 구조를 느꼈다고 밝혔다.

2022년까지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독일은 정당정치와 국회가 발달한 나라다. 지난 2013년 열린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민/기사당은 311석, 사민당은 193석, 좌파당은 64석, 녹색당은 63석을 얻었다. 정당 비례대표로 뽑는 국회의원 수가 많은 덕분에 녹색당은 8% 지지율을 얻었음에도 이와 같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들 정당은 서로 연합해 총리를 뽑는다. 실제로 녹색당은 소수정당임에도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사민당과 연합하여 건강부·환경부·소비자보호부, 농업부 장관 등을 맡을 수 있었다. 이런 정치환경 덕분에 독일 정부는 새 정책을 마련할 때, 각 정당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일반 시민의 의견 수렴과정을 중시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개방적인 독일의 정치환경은 시민-행정-정치가 소통하는 협력적 거버넌스를 발달시켰다.

한편 밀양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김준한 신부는 환경 피해 주민들의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이슈화되기 힘들고 지역만의 문제로 한정돼 버리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거버넌스 등 사회적 협의기구가 원자력 발전소 주변 지역, 송전탑 건설 지역 등 환경 약자들의 목소리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내줬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언주 간사는 원자력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사람은 예상보다 적었다며, 이렇게 정보공개를 통해 받은 자료를 시민들이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방사능와치(http://www.nukeknock.net)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핵발전과 관련한 정보를 따로 정리해 공개하는 캠페인을 진행중이다.


태그:#거버넌스, #에너지위원회, #전력정책기본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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