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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개정된 <사랑채 학습노트>. '10월 유신헌법'과 '6·3항쟁'이 빠져 있다.
 지난해 8월 개정된 <사랑채 학습노트>. '10월 유신헌법'과 '6·3항쟁'이 빠져 있다.
ⓒ 유기홍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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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19일 오후 4시 4분]

서울 종로구 효자로13길 45에는 '청와대 사랑채'가 있다. 이곳은 옛 '효자동 사랑방'을 리모델링해 지은 기념관으로 이명박 정부 시기인 지난 2010년 1월 개관했다. 당시 서울시 예산 190억 원이 투입됐다. 

청와대 사랑채는 원래 역대 대통령들의 발자취와 서울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기념관이었다. 다만 지난 3월부터 운영주체가 서울시에서 한국관광공사로 바뀌면서 기념관의 역할이 조금 더 커졌다. 한국관광공사가 올해 5월 13억5000만 원을 들여 다시 개관하면서 기념관을 '종합적인 한국문화관광홍보관'으로 확장한 것이다.   

특히 한국관광공사는 매주 토요일 이곳에서 '나는 미래의 대통령'이라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2층에 있는 청와대관을 둘러본 뒤 자신이 살고 싶은 청와대를 구상해보는 것이 교육내용이다. 그런데 청와대 사랑채(당시 운영은 서울시)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프로그램 교재를 개정하면서 '10월 유신헌법'과 '6·3항쟁'이 삭제됐다.

청와대 사랑채는 지난 2010년 개관한 이후 '4대강 사업 홍보관'을 운영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는 선거 쟁점이 되는 정부의 정책사업을 홍보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면서 홍보관 운영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교재 개정 거치면서 빠진 10월 유신헌법과 6월항쟁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인 지난해 8월 '나는 미래의 대통령' 프로그램에 사용하던 교재를 개정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을 경제대통령으로 미화하는 내용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종신독재'라고 평가받았던 '10월 유신헌법'와 한일회담을 반대해 일어난 '6·3항쟁'을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는 미래의 대통령' 프로그램의 교재(<사랑채 학습노트>)가 개정되기 전, 해당 교재 8쪽에는 '대통령의 이름표를 채우고 상자안의 내용과 관련 있는 사람을 연결하세요'라는 문항이 제시됐다. 이 문항 왼쪽에는 김대중, 이승만, 전두환, 이명박, 박정희 등 5명의 역대 대통령 사진이, 오른쪽에는 각 대통령에 해당하는 설명상자가 배치돼 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에 해당하는 설명상자에는 '10월 유신헌법, 경부 고속도로 개통, 6·3항쟁'이라고 서술돼 있다. 특히 설명상자에 6·3항쟁(혹은 6·3시위)이 들어간 것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이 항쟁에 참여한 '6·3세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10월 유신헌법'과 '6·3항쟁'은 지난해 8월 교재 내용을 수정하면서 사라졌다. 원래 한 개였던 문항은 개정된 교재에서 두 개의 문항으로 구성됐다. 하나는 '다음 상자에서 설명하는 대통령은 누구일까요?'라는 문항이고, 다른 하나는 '다음 대통령의 이름표를 채우고 상자 안의 내용과 관련있는 인물과 연결하세요'라는 문항이다. 먼저 새롭게 추가된 전자의 문항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 상자가 배치돼 있다.

"'경제대통령'이라고 불리며,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 추진을 시작으로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면서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었으며, 일본 수상과의 회담을 통해 한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신 제5대~제9대 대통령."

경부고속도로 개통, 새마을운동 등 박정희 대통령의 긍정적 업적을 서술한 문항을 단독문항으로 추가한 것이다. 특히 6·3항쟁을 불러왔고, 굴욕협상이라고 평가받은 한일협상조차도 '한일관계 개선'으로 미화했다.

이런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 때 포함돼 있던 '10월 유신 헌법'과 '6·3항쟁'이 슬그머니 빠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역사는 전부 빼버린 것이다. 특히 이 설명상자 안에는 '이 대통령의 영부인은 육영수 여사님입니다'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어 있다.

개정되기 전 <사랑채 학습노트> 8쪽. 박정희 전 대통령에 해당하는 '10월 유신헌법'과 '6·3항쟁'이 설명상자에 들어가 있다.
 개정되기 전 <사랑채 학습노트> 8쪽. 박정희 전 대통령에 해당하는 '10월 유신헌법'과 '6·3항쟁'이 설명상자에 들어가 있다.
ⓒ 유기홍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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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홍 "특정 대통령 미화 교재, 제대로 감수받아야"

유기홍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월 유신 헌법은 삭제했고, 박 전 대통령을 '한국 경제발전을 이끈 위인'으로 미화하는 내용을 새롭게 추가했다"라면서 "이는 기존의 교재에서 역대 대통령을 고르게 설명한 것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한국관광공사는 특정 대통령을 미화한 교재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라며 "10월에 발간할 예정인 교재는 제대로 감수받아야 하고, 이를 국정감사에 확인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한국관광공사는 "<사랑채 학습노트>는 2011년 4월과 11월, 2013년 8월 등 총 3회 제작됐다"라면서 "한국관광공사가 사랑채 운영에 참가하기 이전인 2013년 8월에 제작됐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교재가 개정된 때에는 서울시에서 청와대 사랑채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국관광공사는 "초등생 대상 교육효과를 제고하기 위해 역대 대통령의 업적 위주로 기술됐으며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질문 형식의 편집과정에서 관련 내용이 수록됐다"라면서 "하지만 '위인'이라는 표현이 새롭게 추가된 바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관광공사에서는 <사랑채 학습노트>와 관련한 기사와 관계 없이 10월 중 내용을 더 충실히 보강한 새로운 교재를 제작할 계획이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해 9월부터 사용된 <사랑채 학습노트>는 청와대 사랑채 소속 학예사가 제작했다. 하지만 교사 등 교육전문가로부터 교재를 감수받은 적은 한 차례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 9월 현재까지 43회 진행된 '나는 미래의 대통령' 프로그램에는 총 537명의 초등학생들이 참여했다.


태그:#청와대 사랑채, #나는 미래의 대통령,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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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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