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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지나고 며칠뒤는 제 생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적에는 추석 챙기기에 온 정신을 쏟으신 후에 긴장이 풀린 엄마가 가끔 미역국 끓이는 걸 잊으시기도 했습니다. 결혼한 후에는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주중에 생일이 걸리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간혹 그 날을 챙겨보겠다고 남편이 서울에서 대전까지 경부선을 가르며 내려오면 저는 어김없이 여수 등 먼 곳으로 출장을 가게 되거나 아니면 꼭 회사에서 야근하며 밤 새울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내려가도 못 만나는 생일을 그냥 지나치고 주말에 보는 것이 당연시됐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육아휴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집에서 함께 맞이하는 첫 생일이라, 사실 기대를 조금 했습니다. 아침에 정성스레 미역국을 끓여주고 풍선을 달아 이벤트를 해주었다는 동생의 남편 즉 제부의 행적을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따라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우리 남편은 전날 저녁까지 회식이라며 술이 고주망태가 돼 들어왔습니다. 심지어 안주로 먹은 곱창냄새를 가득 풍기며 잠들었습니다. 제 생일 날 아침에는 도리어 남편을 깨워 일어나게 해야 했습니다. 내가 뭘 바라나 싶어 미역국도 끓이지 않은 아침, 예년과 다르지 않게 지나나 보다 했습니다.

케이크 두 개와 선물상자를 들고 나타난 남편

그런데, 저녁에 말입니다.

그날도 조금 야근을 하고 늦는다던 남편은 오후 8시 30분이나 돼서 들어왔습니다.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 케이크,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치즈케이크를 들고 입으로는 작은 선물상자가 든 가방을 물고서 말입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저와는 달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아이들은 와~하는 소리와 함께 남편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포장을 모두 풀어헤치고 케이크들을 나란히 놓았습니다.

아이스크림, 치즈, 그리고 아이클레이
▲ 세개의 케잌 아이스크림, 치즈, 그리고 아이클레이
ⓒ dong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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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책덩어리 남편은 센스있는 처제, 제수씨로부터 협찬받은 케이크 두 개를 사왔습니다. 그 가운데 큰아이가 만든 아이클레이 케이크까지 모두 세 개의 케이크에 초를 꽂았습니다. 

"어이구 이 주책 맞은 아빠야, 그렇다고 이걸 지금 다 사 들고 온 거야?"

구박을 하면서도 싫지 않았습니다. 초에 불을 붙이고 끄면서 신이나 수다도 떨었습니다.  아, 작은 가방 거기에는 가는 줄의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정말 가늘어서 끊어지겠다. 돈 좀 더 쓰지 그랬어'라고 또 한 번 구박하면서도 선물은 걸어줘야 제맛이라고 목을 쭈욱 내밀었습니다. 짧은 식사 후에는 아내의 육아휴직으로 그동안 잊고 살았다는 남편의 설거지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 순간 아이들은 아빠의 양옆으로 끼어 들어가 저희도 하겠다고 나섭니다.

아이들이 많이 컸습니다.
▲ 설겆이하는 세 부녀 아이들이 많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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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후 맞이하는 첫 생일, 가슴 설레게 하는 이벤트는 없었지만, 가슴 따뜻하게 만드는 가족들이 곁에 있었습니다. 아빠의 양 옆에서 밀고 웃고 하는 딸들과 귀찮아하면서도 가운데서 도와주는 아빠.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셋이 꼭 붙어있는 뒷모습을 보면서 먹는 치즈케이크는 유난히 부드럽고 달콤했습니다.


태그:#생일케이크, #생일, #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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