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을 하루 앞뒀던 지난 18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한국 대 KBL용병팀의 연습경기에서 한국 문태종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을 하루 앞뒀던 지난 18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한국 대 KBL용병팀의 연습경기에서 한국 문태종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16년만의 농구 월드컵에서 혹독한 시행착오를 겪고 돌아온 농구대표팀이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명예회복을 노린다.

한국 농구는 12년 전,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바 있다. 1982년 뉴델린 대회 이후 무려 20년만의 영광이었다.

특히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과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매순간이 극적인 장면의 연속이었다. 필리핀과의 준결승전에서는 이상민의 극적인 역전 버저비터가 터졌다. 중국과의 결승전에서는 김승현과 현주엽의 막판 활약으로 20점에 가까운 열세를 뒤집고 연장전에서 역전승을 거두었다.

한국 농구의 역사에 다시는 보기 어려운 기적이 연출됐다. 아직도 많은 팬들의 뇌리 속에 2002년 농구대표팀은 역대 최고의 드림팀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 금메달이 대한민국 농구팀이 획득한 마지막 금메달이었다.

2002년 금메달 획득했던 '드림팀'의 신화

12년의 세월이 흘러 농구대표팀은 다시 한 번 안방에서 아시아 정상에 도전장을 던졌다. 당시 멤버 중 지금도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김주성 한 명뿐이다. 당시 방성윤에 이어 팀 내 두 번째 막내였던 김주성은 어느덧 최고참급이 됐다. 그는 이제 자신의 마지막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2002년 대표팀은 1990년대 대학농구 전성시절부터 한국농구의 중심으로 활약해온 '농구대잔치 세대'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다. 이 가운데 김승현, 방성윤, 김주성 등 소위 프로화 이후 등장한 젊은 피들이 합류해서 신구조화가 잘 된 대표팀으로 평가받는다.

2002년 대표팀은 주축 선수들이 대부분 10여 년 이상 호흡을 맞춰오며 조직력이 매우 좋았다. 대회 내내 이렇다 할 부상선수가 나오지 않았고, 모처럼 홈에서 치르는 경기에 심리적인 부담 없이 편안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던 것이다.

무엇보다 2002년 대표팀만의 가장 큰 강점은 각 포지션별로 확실한 '해결사'가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대표팀의 공격 1옵션인 슈터 문경은은 경기당 20점을 책임지며 주득점원으로 맹활약했다. 국제대회마다 한국의 골밑을 외롭게 책임져오던 서장훈은 김주성이라는 파트너의 가세로 리바운드와 수비의 부담을 크게 덜었다.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한 이상민은 대회 내내 안정된 경기운영으로 팀을 이끌었다.

모두 나이에 비해 국제경험이 풍부하고 클러치타임에 강한 '강심장'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 농구는 아시아 무대의 어떤 포지션에 내놔도 개인 선수별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중국과의 결승전에서는 주전 이외의 선수들이 더 위력을 발휘했다. 문경은이 중국전에서 4쿼터까지 한 자릿수 득점에 묶이고 서장훈이 야오밍을 막느라 파울 트러블에 걸리자, 신예 김주성이 21득점을 올리며 오히려 공격을 이끌었다. 이상민이 5반칙 퇴장당한 경기 후반에는 김승현이 연이은 가로채기로 2분 정도를 남기고 13점 차를 뒤집는 데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다. 부상으로 대회 내내 출전시간이 적었던 현주엽은 중국전의 4쿼터와 연장전에서 뛰어난 일대일 능력을 선보이며 득점을 이끌었다.

2014 AG 대표팀, 2002년에 비해 향상된 점도 있지만...

냉정히 평가하자면 어느 정도 운도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필리핀전과 중국전 역전승은 사실 벤치의 전술·전략보다는 온전히 선수들의 개인능력에 의하여 만들어낸 성과에 가깝다. 홈 코트 어드밴티지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2014년 대표팀의 강점은 수비에 있다. 12년 전에 비해 한국농구의 수비 전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02년 당시만 하더라도 수비 전술은 지금만큼 다양하지 않았고, 팀플레이도 선수들의 개인능력과 경험에 의존하는 빈도가 높았다. 이제는 지역방어도 1-3-1, 3-2 드롭존 등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진화했다. '만수'라 불리는 유재학 감독의 뛰어난 경기운영능력과 선수단 장악은 아시아에서도 정상급이다.

파워와 높이도 지금이 우위를 보인다. 당시에는 2m 이상의 선수가 서장훈과 김주성뿐이었다면, 지금은 김주성 외에도 김종규, 이종현, 오세근 등 젊고 기동력까지 갖춘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가드진을 제외하면 대체로 각 포지션에서 장신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기술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 2002년과 비교했을 때 2014년 대표팀이 포지션 경쟁에서 우위를 보일만한 부분은 장신슈터 문태종이 포진한 스몰포워드 정도다. 농구월드컵에서 정상급 외국선수들을 상대로 유일하게 한국농구의 자존심을 세웠던 문태종은 우리 나이로 불혹을 바라보는 노장이다.

그나마 문태종을 제외하면 김승현이나 현주엽처럼 개인능력으로 경기흐름을 바꿔놓을 만한 해결사나 일대일에서 우위를 보일만한 선수가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농구월드컵을 통해 한국이 세계농구와 가장 격차를 드러낸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12년 전과 가장 달라진 부분은 바로 아시아농구의 상향평준화다. 2002년만 하더라도, 한국은 오직 중국만을 경쟁자로 생각해왔다. 아시안게임 결승전은 거의 한국과 중국의 만남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 외에도 이란, 필리핀 등 무시할 수 없는 상대가 즐비하다. 이들은 지난 농구월드컵에서 1승을 챙기며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웠다.

이란은 이미 중국마저도 넘어선 자타공인 아시아 최강팀이다. 탈아시아급으로 불리는 센터 하메드 하다디는 물론 전천후 포워드 니카 바라미도 한국에 위협적인 상대다. 필리핀은 농구월드컵에서 활약한 귀화선수 안드레이 블라체의 아시안게임 출전이 불발됐지만 대체선수로 마커스 다우잇이 가세했다.

한국은 2013년 아시아선수권에서 다우잇이 빠진 필리핀에 대량실점을 허용하며 패배한 바 있다. 지난해 한국에 밀려 농구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던 중국도 세대교체를 선언하며 이번 아시안게임에 '올인'한 상황이다. 대만, 일본, 중동 등의 복병까지 감안해야 하는 아시아 농구의 판도이다. 대한민국의 4강 진출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그립다

농구대표팀은 이미 지난 농구월드컵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팬들이 느낀 실망감은 세계농구와의 격차가 아니었다. 한국이 세계농구의 흐름을 따라잡으려는 노력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우승이 남긴 후유증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은 2002년 행운이 따른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변화의 시기를 놓치며 현상에 안주하려던 측면이 있었다. 결국 3~4년 뒤부터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리며 국제무대에서 암흑기를 맞이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의미는, 한국 농구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돼야 한다. 우승여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과제는 한국농구의 경쟁력과 인기회복을 위한 해답을 모색하는 것이다. 2002년 대표팀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보여줬다. 2014년 대표팀에게서도 그 열정을 느낄 수 있기를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대한민국 남자 농구대표팀은 지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상위 8개 팀에 들었던 덕분에 12강 본선 라운드에 자동 진출한다. 대표팀은 오는 24일 오후 6시 30분, 예선 A조 2위 통과팀과 첫 경기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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