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대표팀의 윤석민이 23일 저녁 베이징 우커송야구장에서 열린 올림픽야구 결승전 쿠바와의 경기에서 3대2로 승리한 뒤 김광현과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지난 2008년 8월 23일 저녁 베이징 우커송야구장에서 열린 올림픽야구 결승전 쿠바와의 경기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의 윤석민이 3대2로 승리한 뒤 김광현과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한국 야구는 최근 4번의 대회에서 3번이나 정상에 오르며 아시안게임에서는 최강국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후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08 베이징올림픽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판 드림팀의 시초가 된 것이 바로 아시안게임 대표팀이었다.

국제 대회가 많지 않은 야구의 특성상, 프로선수들로 구성된 최정예 대표팀을 볼 수 있는 아시안게임은 한국 야구의 높아진 위상과 국제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부터인가 프로구단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미필자들의 병역혜택 획득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을 초래하기도 했다.

드림팀의 탄생과 아시안게임 2연패

야구가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 때부터다. 아마추어 대학 선발팀이 주축을 이뤘지만 지금 돌아보면 히로시마 대회 역시 쟁쟁한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문동환, 임선동, 조성민, 손민한 등 유독 걸출한 투수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던 1990년대 초중반의 대학 선발팀은 프로와 견줘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은 조별 예선에서 준결승까지 대만(9-0), 몽골(20-0), 중국(14-0)은 잇달아 연파하며 단 1점도 내주지 않고 결승까지 올랐다. 하지만 결승에서 일본을 상대로 5-6으로 분패했다. 아쉽게 은메달에 그친 한국 야구는, 절치부심하여 프로선수들의 출전이 허용된 1998년 방콕 대회부터 최정예 멤버들을 출전시키며 아시아 정상을 호령하게 된다.

방콕 아시안게임은 한국 야구 사상 '드림팀'의 원조로 꼽힌다. 당시 유일한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의 가세는 대표팀의 무게감을 단숨에 업그레이드했다. LA 다저스에서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며 전성기에 접어들던 박찬호는 아직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절실했다.

한국은 예선 첫 경기에서 대만을 16-5로 대파했고, 2차전에서는 일본과 접전 끝에 13-8로 승리했다. 드림팀이 가장 고전했던 경기는 예선 2차 리그에서의 대만전으로, 한국은 막판까지 대만의 추격에 진땀을 흘렸으나 8회부터 선발 박찬호를 마무리로 등판시키는 초강수를 선택한 끝에 5-4로 1점차의 진땀승을 거뒀다.

토너먼트는 오히려 수월했다. 준결승에서는 김병현이 8연속 타자 탈삼진과 6이닝 무실점의 완벽투를 펼친 데 힘입어 9-2의 완승을 거뒀다. 결승에서 다시 만난 일본에게는 선발 박찬호의 완투와 초반 타선 폭발에 힘입어 13-1 콜드게임으로 완승을 거두며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완성했다.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한국 야구에 많은 의미를 지닌다. 병역 문제를 해결한 박찬호는 이후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성장하며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병규, 김병현, 김동주, 홍성흔, 진갑용 등 많은 선수들이 프로무대에서 최고의 스타로 성장하며 한국 야구 중흥의 기틀을 닦았다.

기세를 몰아 한국 야구는 2002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도 다시 한 번 최정예 멤버를 출격 시켜 2연패에 성공한다. 마침 2002년은 한국 스포츠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해로 꼽힌다.

안방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축구대표팀이 4강 신화를 작성했고, 농구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에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두며 20년 만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구기 종목을 대표하는 또 다른 인기 스포츠인 야구도 금메달을 수확하며 한국 스포츠의 자존심을 세우는 데 동참했다.

한국은 중국(8-0), 대만(7-0), 일본(9-0)으로 이어진 조별리그 3경기에서 연이어 무실점 완승을 거두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토너먼트 들어 고전했다. 약체로 꼽히던 중국과의 준결승에서 방심하다가 중반까지 고전했고, 뒤늦게 터진 타선의 힘으로 7-2 승리를 거두며 한숨을 돌렸다.

대만과 다시 만난 결승전에서는 타선이 대만 투수들의 스피드에 눌려 안타수에서 4-8로 두 배 차이의 열세를 보이며 고전했다. 김인식 감독은 박명환에 이어 임창용-송진우를 올리는 특유의 계투 작전을 통하여 중반 이후 대만의 타선을 봉쇄했고 4-3, 1점차의 진땀승을 거두며 아슬아슬하게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당시 대만은 경기 후 심판의 스트라이크존 판정에 격한 불만을 토로하며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챔피언의 자존심은 지켰지만, 대만 야구의 성장과 줄어든 전력차는 한국 야구의 미래에 대한 경고의 복선이었다.

2006년 도하의 굴욕과 2010년 광저우의 명예회복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은 한국 야구의 국제 무대 도전사를 통틀어 가장 치욕적인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는 대회다. 연초에 열린 2006년 초대 WBC 대회 4강으로 야구 열기가 정점에 달해 있던 한국 야구는 내친 김에 아시안게임 3연속 우승을 노리고 이번에도 프로선수로 구성된 대표팀을 파견했다. 사령탑은 2000년대 현대 왕조의 4회 우승을 이끌었던 김재박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병역 미필자 위주로 선발된 대표팀은 선수구성과 조직력 면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토너먼트 없이 풀리그로만 치러진 도하 대회에서 한국은 첫 경기인 대만전을 2-4로 패한 데 이어, 일본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류현진, 오승환 등 최고 투수들을 모두 내보내고도 7-10의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WBC를 시작으로 프로야구 장기 레이스까지 1년 내내 강행군을 이어온 대표팀의 주력 선수들이 대부분 컨디션 관리에 문제를 드러냈다는 점이 치명타였다. 여기에 상대팀을 경시한 전력 분석 소홀과 중동 기후에 대한 현지 적응 실패 등이 겹쳤다.

한국은 남은 경기를 전승하며 겨우 동메달을 따냈지만, 실질적으로 아시안게임에서 제대로 된 야구팀이 대만, 일본까지 단 3팀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꼴찌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절치부심한 한국 야구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설욕에 성공한다. 병역 문제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최고의 선수들을 대거 선발했으며, 감독 선임 과정의 논란을 피하기 위하여 일찌감치 지난해 한국 시리즈 우승팀 감독 자격으로 당시 KIA 조범현 감독이 내정되었다.

한국은 광저우에서 5전 전승으로 8년 만에 퍼펙트 우승을 달성했다. B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류현진을 선발로 앞세워 난적 대만을 6-1로 격파하며 4년 전의 빚을 갚았고, 손쉬운 홍콩과 파키스탄을 모두 콜드게임으로 이겨 3전 전승으로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했다.

준결승에서 만난 중국에는 선발 양현종을 내세워 7-1로 눌렀고, 결승에서는 대만과 재회하며 류현진-윤석민으로 이어지는 최강 마운드와 강정호의 홈런 두 방을 앞세워 9-3으로 완승했다. 대표팀은 5경기에서 단 5점만 내주고 무려 54점을 엮어낸 완벽한 우승을 연출했다.

다시 돌아온 아시안게임, 2014년에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은 출발부터 잡음이 다소 있었다. 당초 최고의 선수 선발을 공언했던 류중일 야구대표팀 감독과 기술위원회는 처음의 공언과 달리, 병역 미필자와 팀별 안배에 치우친 듯한 선수 구성으로 논란을 자아냈고, 이는 결국 대기업을 등에 업은 프로구단들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최종 엔트리 24명중 미필자만 13명이었고, 이 과정에서 국제 대회 경험이 많은 베테랑과 소속팀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던 선수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대거 탈락했다. 어떤 선수는 소속팀에서 부진한데도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발탁되고, 어떤 선수는 성적이 좋아도 멀티 포지션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제외하는 등 선수 선발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낳았다. 벌써부터 일부 야구팬들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야구가 이미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퇴출된 데 이어 아시안게임에서도 그 위상이 점점 애매해지고 있다는 것 또한 문제다. 프로선수들의 아시안게임 출전이 허용된 지 16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아시안게임에 비중을 두고 참가하는 국가는 한국과 대만 정도다. 이 시간 동안 아시아 국가들의 야구 수준과 인프라가 크게 향상된 것도 아니다.

유독 한국만 아시안게임에 집착하는 이유도 결국 병역혜택 때문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지금의 대표팀이 예전의 드림팀만큼 구성 자체만으로 화제를 모으는 상황도 아니고, '잘해야 본전'이라는 부담만 커졌다. 안팎의 어수선한 변화 속에 이젠 더 이상 아시안게임 우승 자체만으로 높이 평가받을 수 없는 분위기는 예전과 가장 달라진 점이다.

류중일 감독은 이번 대회 '전승 우승'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어차피 우승 외에는 어떤 결과도 인정받을 수 없는 분위기에서 정면 돌파를 선언한 셈이다. 한국 야구는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한번 성적과 감동의 두 마리 토끼로 팬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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