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들의 구조에 사용하려고 했던 다이빙벨

지난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들의 구조에 사용하려고 했던 다이빙벨 ⓒ 남소연


사회적 문제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다시금 최근 정국과 맞물리며 이슈와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영화가 공개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상영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정부기관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심도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영화제를 통해 첫 상영이 예정되면서 영화제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분위기다.

하지만 영화계 인사들은 "이 같은 반응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며, 문화후진국을 염원하는 발상"이라면서 비판적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사회 분위기가 그만큼 경직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천박한 문화 인식의 발로라는 것이다.

부산영화제, "다이빙벨 상영 관심 새삼스러울 것 없어"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다이빙벨>이 오는 2일 개막하는 1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공개된 가운데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극우 진영은 성명을 발표해 상영 자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부기관들도 부산시청과 부산영화제 등에 문의해 영화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차세대문화인연대라는 단체는 지난 14일 발표한 성명에서 "영화제에서 세월호 문제를 일방적 시선으로만 보여줘선 안 된다"며 상영 자제를 촉구했다. 이들은 또한 '아직 완료되지 않은 진상조사 결과에 대해 일부의 편향적 주장만을 사실인양 세계에 알려 국론분열을 일으키는 그 씻을 수 없는 잘못을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제가 하지 않길 바란다.'는 주장을 폈다. 이어 심사위원과 선정 기준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트위터를 통해 동조 의사를 나타냈다.  하 의원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상호 기자와 이종인 대표가 출연하는 다큐 다이빙벨을 상영한다는군요. 뭘 상영하든 영화제 자유지만 그래도 프로그램 선정하는 프로그래머 수준이 너무 낮은 거 아닐까요?' 라는 글과 함께 관련 내용을 보도한 극우 매체의 기사를 링크시켰다. 하 의원은 영화제의 개최되는  해운대를 지역구로 하고 있다.

영화 제작을 돕고 있는 한 관계자는 "정보기관과 정부 부처 등에서 난리가 난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부 기관의 관계자는 "<다이빙벨> 영화 상영과 관련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디이빙벨>에 출연하는 이종인 대표와 작품을 연출한 이상호 기자

다큐멘터리 영화 <디이빙벨>에 출연하는 이종인 대표와 작품을 연출한 이상호 기자 ⓒ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영화제 측은 "(민감한 작품이 나올 경우)예전부터 종종 있던 일이었고, 특별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영화제의 실무관계자는 "그렇다고 상영을 취소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고, 지난해 <한공주>처럼 영화제 기간 중 주목받는 화제작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특정 작품에 대한 초반 관심이 계속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 문의가 "영화제 쪽 보다는 시청 쪽으로 문의가 많이 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산영화제 사정을 잘 아는 한 영화계 인사는 "대외적인 압박이 상당히 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다양한 경로에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보니 영화제 측이 느끼는 강도가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큰 것 같다"고 귀띰했다.

국회의원의 프로그래머 수준 언급은 무지하고 경솔한 표현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는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는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 부산국제영화제




국내 영화계는 <다이빙벨>을 놓고 벌어지는 이 같은 반응이 "일단 상식적이지 못하고 억지스런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보수적 성향의 영화계 인사들 역시 "상영작품을 놓고 저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내 놓고 있다.

영화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지금까지 주요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들이 상영됐는지도 모를 만큼 무지한 상태에서 나온 주장으로, 사실 관계가 다른 부분도 있는 데다, 표현의 자유 존중을 언급하면서 상영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는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다는 것이다. 성명에 참여한 인물 중에는 조희문 영진위원장 시절 부정 심사 논란의 수혜자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다이빙벨>을 상영하면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건국대 영화과 송낙원 교수는 "국제영화제가 갖는 의미조차 파악 못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송 교수는 "국제영화제에는 등급분류가 없다. 이는 영화제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영화제는 모든 소재를 틀 수 있어야 한다.  제한 없이 상영하고 관객들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칸과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상영하려는 작품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사례는 없다"면서 "영화제의 특수성을 모른 채 지나치게 민감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영진위원으로 국제영화제 지원 심사를 맡기도 했던 송 교수는 작품에 대한 불만으로 영화제 지원을 줄여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문화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예산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역시 아직 어떤 공개되지도 않은 작품에 대해 소재를 이유로 상영을 하지 말라는 것 자체가 관객들을 우습게 보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문화적 인식이 무지함을 드러내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정 평론가는 또 "극우 진영의 성명 내용 중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주장한 부분도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 2일 부산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다이빙벨>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고 보도자료 역시도 제목과 감독 등 기본 사항 외에 어떤 언급도 없었는데, 성명내용에는 마치 부산영화제가 이를 공개적으로 밝힌 듯 사실과 다른 내용이 들어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사위원 명단과 선정기준을 밝히라고 요구한 부분에 대해서도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기초적인 내용조차 모르고 성명을 낸 것 같다"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의 의견에 응수한 이상호 기자의 트위터

하태경 의원의 의견에 응수한 이상호 기자의 트위터 ⓒ 성하훈


하태경 의원이 이 같은 주장에 동조해 프로그래머의 수준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단순히 잘 모르는 차원을 넘어 프로그래머들을 모독한 표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국내 한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는 "부산영화제가 성장한 것은 유능한 프로그래머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고, 세계 영화계에서도 영향력이 큰 사람들인데, 국회의원이 영화제에 대해 잘 모르는 듯 경솔한 표현을 함부로 쓴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일단 <다이빙벨>을 연출한 이상호 기자는 하태경 의원의 의견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하의원님 초대할께요'라고 응수한 상태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 침해는 대통령 문화융성 정책과 어긋나.

보수진영 인사들 역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보수진영의 원로인 정진우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은 "사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내용이라면 모를까 기본적인 창작과 상영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를 도왔던 영화계 인사 역시 "영화가 어떻든 보는 사람들이 판단하게 해야지 상영을 막는다든가 못 보게 하려는 것은 보수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최종 판단은 관객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어 "조희문 영진위원장 때처럼 영화계가 또 다시 혼란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일부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부류들이 더러 있지만 보수진영이 다 거기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이 문화융성 정책을 강조하고 있는 상태에서 저런 주장이 뜬금없다는 반응이었다.

국내 영화제의 한 집행위원장은 "그런 주장을 하는 단체의 인물 중에는 예전에 조희문 영진위원장 시절 부정심사를 통해 자격도 안 되면서 특혜 의혹을 받았던 단체에 있던 인사도 포함돼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는 2010년 독립영화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심사 논란을 지적하는 것으로 당시 공모에서 하위 평가를 받았던 단체가 재공모에서 1등으로 올라 부정 심사 논란과 함께 특혜 시비가 커지기도 했다. 당시 논란의 주역이었던 조희문 위원장은 이후 다른 심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이 확인돼 영진위원장에서 해임됐는데, 지난 3월 대학교수 채용 과정에서의 비리혐의로 구속됐다.

<다이빙벨>은 최근 일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시사회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영화를 본 보수성향의 인사는 이런 영화는 대통령이 꼭 봐야할 영화라고 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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