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해 본다. 이제 막 21세기에 들어선 그때, 생전 처음 느껴보는 남자들만의 세계인 '남고'. 그 생소함과 막연한 두려움은 어느덧 '그게 바로 학창시절이지'라는 생각을 스스로하게 만들 만큼 재미로 바뀌어 있었다.

당시 한창 유행했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으로 뭉친 우리는 매일 같이 몰려다녔다. 우리는 싸움이면 싸움,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게임이면 게임 못 하는 게 없었다. 한마디로 어딜 가든 무서울 것이 없었다. 청춘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그때, 우리는 빛났다.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 ⓒ 따듯한 영화사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그린다. 같은 고등학생이라도 1학년, 2학년, 3학년이 다르다. 18세인 2학년이 제일 방황하기 쉬운 때인 것 같다.

군대는 일병, 상병 때가 제일 열심히 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도 잘 간다고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은 그 반대다. 대학생이 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고, 그렇다고 마냥 놀기에는 어중간하다. 뭘 하든 애매한 시기.

"네가 걔네랑 같이 논다고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

영화는 '동도'라는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이 주인공이다. 그는 비디오 보는 걸 낙으로 삼는데, 19세 미만 관람 불가를 빌려오는 게 일탈의 전부다. 키는 작아서 무시 받기 딱이고, 공부도 잘하지 못한다. 그런 그가 일진인 '현승'과 인연이 닿아 친해지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친구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현승 덕분에 동도는 일진 후배들에게 인사까지 받기에 이른다.

고등학교 남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꿔봄 직한 학교생활을 하게 된 동도. 평소 친하게 지내온 친구까지 내팽개치고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잦아진다. 자연스레 술과 담배를 배우고 급기야 그들에게 물들게 된다. 마치 자신이 뭐라도 된 양 행동하게 된 것이다.

"야, 네가 걔네랑 같이 논다고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 정신 차려 인마! 너랑 안 어울려. 관두라고. 허접해 보인다고, 똑바로 좀 살아라. 응?"

특히 일행의 절대적 카리스마 '동철'은 동도 뿐 아니라 일행에게 큰 힘이 된다. 아무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한다. 그러나 동철의 독재에 가까운 카리스마는 큰 부담을 안기기도 한다. 친구끼리 복종을 강요하는 동철과, 친구끼리 절대적 평등을 주장하는 현승의 줄다리기는 계속된다.

또 다른 학원 액션... 후반 전개가 아쉽다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의 한 장면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의 한 장면 ⓒ 따듯한 영화사


고등학생의 일탈 아닌 일탈을 다룬 영화는 우리를 자주 찾아 왔다. 얼핏 생각나는 것만 해도 2001년의 <친구>, 2004년의 <말죽거리 잔혹사>, 2009년의 <바람>, 2011년의 <파수꾼> 등이다. 여기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절대적 카리스마를 가진 친구와 상대적으로 약한 친구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서로 친한 친구가 되곤 하는데, 그 끝이 좋지 않을 때가 많다.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는 위의 학원 장르의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파수꾼>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이를 살짝 벗어나 약간 다른 각도를 제시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뭔가 말하려고 하거나 훈계를 늘어 놓지 않는다. 그저 고등학교 2학년의 일반적이고 당연한 일탈을 가감 없이 있는 보여줄 뿐이다. 감독도 영화의 흐름에 제동을 걸거나 방향을 틀려고 하지 않는다. 물 흐르듯 전개된다.

이 영화는 고등학생을 주인공을 내세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교실도 나오지 않는다. 거의 방과 후를 그리고 있다. 또 주인공의 집은 '동도'와 '동철'만 나오는데, 동도는 편모 슬하에 동철은 편부 슬하다. 동도의 엄마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 동도의 뒷 바라지를 하는 반면, 동철의 아빠는 백수로 지내며 깡패 같은 동철의 형한테 눌러산다. 동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연기는 빛났다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의 한 장면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의 한 장면 ⓒ 따듯한 영화사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발단한다. '사랑'이라고 해야할까. 동철이 좋아해 마지 않는 연희, 그러나 연희는 동철보다 다른 친구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그녀를 멀리서 흠모하는 동도까지. 이 상황을 직감적으로 눈치챈 동철은 이들에게 피의 복수(?)를 한다. 그리고 결국 파국을 맞는다.

영화는 여기서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아쉬운 전개를 보인다. 극적 연출을 마지 못해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 전체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당사자 '연희'는 그다지 비중이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이유는 바로 주인공들의 연기다. 찌질하고, 약하고, 소심한 동도 역의 이재응과 남자의 진짜 의리를 보여준 현승 역의 차엽, 카리스마 동철 역의 이익준. 이재응을 제외하고는 눈에 익지 않은 배우들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누구보다도 빛난다. 특히 동철의 이익준은 흡사 <말죽거리 잔혹사> 우식의 이정진을 보는 듯했다. 그 삐뚤어진 카리스마를 10년 만에 재현해낸 것 같다.

큰 기대 않고 감상한다면 그 은근함에 집중하며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게 한다. 돌아가고 싶기도, 돌아가기 싫기도 한 그때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 고등학생 학원액션 스토리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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