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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청년들이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마치 안전장비 없이 맨 몸으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재주꾼의 능력이 제 아무리 좋더라도 늘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것이 줄타기이다. 별 탈 없이 줄 위를 지나가기도 하지만, 떨어지고 다치는 경우도 많다.

낙상의 대가로 몸에는 부상을, 마음에는 좌절을 얻게 된다. 청년들도 이런 곡예같은 노동을 하고 있다. 수시로 넘어지고 다치는 청년들이 찾는 것이 있는데, 바로 청년유니온 노동상담 전화이다. 그래서인지 청년유니온에 걸려오는 노동상담 전화는 벨소리마저도 서글프다.

벨소리마저 슬픈 청년유니온의 노동상담 전화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노출된 청년들이 계약직과 파트타임을 전전하며 겪는 사연들은 정말이지 눈물겹다.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노출된 청년들이 계약직과 파트타임을 전전하며 겪는 사연들은 정말이지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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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은 2010년 창립한 이래로 지금까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노동상담을 하고 있다. 일하다가 부당한 일을 겪은 청년들이 언제든 전화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내 일이다.

주로 전화를 통해 상담을 받고 있고, 온라인 게시판, SNS, 캠페인 등 다양한 경로로 들어오는 노동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부터 노동상담을 하며 만났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노출된 청년들이 계약직과 파트타임을 전전하며 겪는 사연들은 정말이지 눈물겹다. 얼마 되지 않는 임금마저도 받지 못한 청년들이 도움의 손길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엔 청년유니온에 전화를 걸어온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현시창'에 직면한 느낌이 든다. 현시창은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의 줄임말인데, 영화 <8마일>에 나오는 '명대사'이다. 노동후진국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삶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전화를 건 사람들이 처음 꺼내는 말은 보통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으나 알 수 없었다'이다. 정보의 홍수라는 인터넷을 가장 잘 활용할 것 같은 젊은 청년들이 정작 그곳에서 자신의 권리는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인의 답변, 관공서의 문서, 대법원 판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상황과 연결시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청년들은 사실 거의 없다.

10년이 넘는 의무교육을 받고도 일하는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권리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다. 왜 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중요한 내용을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노동자를 보호해줄 안전 장치의 사용법을 어려서부터 차근차근 배웠다면 현실이 조금은 달랐을텐데.

청년 구직자들에게 필요한 좌절금지 팁  

그러나 아무리 시궁창같은 현실에 있더라도 가끔은 진흙을 털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다보면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런데 구제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는 나조차도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대체로 이들 청년 구직자들은 자신의 근로조건, 특히 근무시간과 근무지 등을 입증할 자료가 없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로의 좌절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몇 가지 팁을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로 근로계약서는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근로계약서는 추후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분쟁을 예방하는 데 꼭 필요한 장치이다. 근로조건과 근로계약 사실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 아르바이트라고 할지라도 일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교부받아야 한다. 근로계약서에는 근로계약기간, 근로일 및 근로일별 근로시간, 임금, 휴게시간, 휴일, 휴가 등의 내용이 기재되어야 한다. 친절하게도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표준근로계약서가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그런데 만약 사업주가 근로계약서를 거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가 없으면 잇몸을 써도 괜찮다. 채용공고에 기본적인 근로조건이 명시되어 있으니 사진을 찍어두거나 캡처를 해두면 근로계약서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면접(이라기엔 민망한 대화) 시에 녹취를 하면 그 내용이 근로조건을 증명할 자료가 된다. 대한민국에서 양당사자 간의 대화 녹취는 합법이니 걱정하지 말고 휴대폰 녹음 기능을 활용하자.

두 번째로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를 하면 받을 수 있는 추가수당을 챙기자(상시근로자 5인 이상). 그러기 위해서는 약속된 시간 외에 근무시간을 증명해야 한다. 실제로 근무한 시간을 증명하기 위한 잇몸은 다음과 같다.

출퇴근기록부가 있는 사업장이라면 자신의 근무시간이 적혀있는 기록부를 사진으로 찍어두는 방법이 있다. 만약 사업장에 그런 기록이 없다면 출퇴근 시간마다 사업장을 배경으로 자신의 사진을 찍어두는 게 좋다. 한 마디로 셀카(셀프 카메라)를 찍는 것인데, 사진에 기록된 촬영시각 정보는 임의로 변경할 수 없으므로 좋은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휴대폰 기능에 따라서 위치까지 저장되기도 하니 수준 높은 증거자료이다). 그리고 출퇴근 시간이 일정한 조건이라면 출퇴근 시 사용한 교통카드 내역이 근무시간을 증명해주기도 한다.

세 번째로 임금을 지급받을 때 현금보다는 예금통장으로 지급받는 게 좋다. 어떤 경우에는 사업주가 근로관계 자체를 부인하면서 "이 사람을 고용한 적이 없다"라고 한다. 그럴 때 통장에 주기적인 입금내역이 존재한다면 근로관계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임금체불 상황에서 얼마가 들어왔고 얼마를 더 넣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되니 매우 중요한 증거 자료이다.

이렇게 몇 가지 예방법과 대처법을 아는 것만으로도 노동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작은 정보조차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일상적으로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청년들의 일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청년유니온에서 제작한 추석 연휴 단기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노동자들을 위한 '권리보호 매뉴얼'
 청년유니온에서 제작한 추석 연휴 단기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노동자들을 위한 '권리보호 매뉴얼'
ⓒ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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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에 청년유니온에서는 추석 연휴 단기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노동자들을 위한 '권리보호 매뉴얼'을 발간했다. 명절특수에는 으레 단기 아르바이트가 급증하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단기알바를 하다보면 임금체불, 산재에 노출될 가능성도 함께 급증한다. '권리보호 매뉴얼'은 청년들이 일터에 뛰어들어 줄타기를 할 때 몸에 지닐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된다.

한 세대를 살아가는 같은 청년으로서, 그리고 그들과 대화하는 상담자로서 현실을 바라보면 청년노동의 실상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실업의 수치, 아르바이트 권리침해, 삼포세대 등을 언론에서 자주 접하고는 있지만, 이들의 실상은 생각보다 더욱 처절하다.

그래서 이제부터 이 지면을 빌려 청년유니온에서 노동상담을 했던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며 청년노동의 현실을 이야기할까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청년들의 이야기를 알고, 함께 고민한다면 시궁창이 조금은 맑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 청년유니온에 노동문제 상담하러 가기

덧붙이는 글 | 청년유니온 노동상담 전화 02-735-0262



태그:#청년유니온, #청년노동, #노동상담, #청년,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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