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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금싸라기땅인 한국전력 삼성동 부지. 축구장 12개를 합친 면적(7만9천342㎡)의 한전부지 입찰은 감정가는 3조3346억 원이다.
 서울 강남의 금싸라기땅인 한국전력 삼성동 부지. 축구장 12개를 합친 면적(7만9천342㎡)의 한전부지 입찰은 감정가는 3조3346억 원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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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의 의지 없인 불가능한 일 아닌가."

18일 오전 현대자동차그룹 한 임원의 말이다.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 입찰 과정에서 10조 원이 넘는 파격적인 값을 써낸 과정을 물었을 때였다. 결국 서울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은 현대차에게 돌아갔다. 국내 재계 1위 삼성은 고개를 숙였다. 현대차는 '그룹의 100년 앞을 내다본 투자'라면서 나름 승리를 자축했다.

하지만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과연 땅값으로 10조 원 넘게 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개발 이익 등 수익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칫 현대차의 경쟁력만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다. 주식시장에서 현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입찰 참여 3개사의 주가는 7~9%가량 폭락했다.

감정가 3~4조원 땅을 10조5500억에 산 현대차

이날 오전 한국전력은 삼성동 부지 낙찰자로 현대자동차그룹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에서 일부 직원들은 박수를 치면서 기뻐했다. 반면 서초동 삼성그룹은 조용했다. 이어 텔레비전 자막 속보로 현대차의 낙찰 가격이 공개되자, 양쪽 회사 직원들은 모두 놀랐다. 삼성 관계자는 "TV 자막에 (현대차의) 낙찰 가격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장의 예상 낙찰가는 4~5조 원 수준으로 들었는데…"라며 "아쉬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현대차의 낙찰가는 파격적이었다. 시장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 넘었다. 한전부지 면적은 모두 7만9342평방미터(㎡), 감정가는 3조3346억 원이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4조 원 안팎에서 부지가 낙찰될 것으로 예상했다.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지 매입으로 4조 원 넘게 쓸 경우 개발 이익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같은 전망을 무색하게 했다. 현대차가 써낸 입찰가는 무려 10조5500억 원이었다. 시장의 예상치나 감정가보다 3배 이상 높은 금액이다. 3.3평방미터(㎡)당 4억3879만 원에 달한다.

부동산 업계와 재계에서는 현대차가 너무 무리하게 베팅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 전문위원은 "현대차 스스로 밝혔듯이 그룹 계열사들이 직접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 예상치보다 높게 써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 내부에서 이번 부지 입찰을 두고 '무조건 삼성을 이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면서 "자칫 국내 재계 1, 2위 업체간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라고 전했다.

"상징적 랜드마크 만들 것"... 승자의 저주 우려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은 지난해 1월 2일 현대자동차그룹 시무식에 참석했을 당시 모습.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은 지난해 1월 2일 현대자동차그룹 시무식에 참석했을 당시 모습.
ⓒ 현대기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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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직원들도 낙찰 가격에 대해 사뭇 놀란 분위기였다. 하지만 현재 양재동 사옥의 상황과 향후 그룹 비전 등을 들면서 나름대로 긍정적인 전망도 많았다. 이번 입찰에 참여한 계열사의 부장급 직원은 "부지 낙찰값을 언론보도를 보고 들었다"라면서 "처음에는 놀랐지만, 현대맨의 뚝심이 발휘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현대차도 시장의 우려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개발 이익을 올리기 위해 부지를 사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태경 현대차 이사는 "단순한 중·단기 수익 창출 목적이 아니라 30여 개 그룹사가 영구적으로 사용할 통합 사옥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통합사옥은) 글로벌 톱 5위의 완성차로 올라선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와 글로벌 네트워크 관리를 위한 공간이 될 것"이라면서 "향후 100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본 최고경영층의 구상과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고 경영층의 의지'는 곧 정몽구 회장의 의지인 셈이다.

또한 과도한 낙찰가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대차는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이기훈 현대차 차장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강남 지역의 부동산값 상승률이 연평균 9~10% 이상"이라면서 "향후 10~20년 후를 감안할 때 삼성동 부지의 미래 가치는 충분하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매년 부담하는 임대료 등이 2400억 원을 넘어선다고 했다. 삼성동에 통합사옥을 지을 경우 연 8조 원의 재산 가치가 발생한다는 근거도 제시했다.

'승자의 저주' 우려에 대해서도 현대차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연 이사는 "과거 일부 기업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승자의 저주'가 나왔지만, 현대차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그룹의 재무건전성이나 자금조달 능력 등을 감안하고, 향후 미래 가치 등을 반영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현대차의 과도한 땅값과 향후 개발비 등을 감안할 경우 자칫 그룹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이날 현대차 주가는 무려 9.17%(2만 원)나 폭락해 19만8000원을 기록했다. 또 현대차와 컨소시엄을 이룬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주가 역시 각각 7.80%, 7.89% 하락했다. 적어도 이날 주식시장만큼은 현대차의 입장과 사뭇 다른 셈이 됐다.


태그:#현대차, #한전부지, #삼성, #정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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