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의 한 장면. ⓒ EBS


지난 2011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100회 특집으로 그간 무대 뒤에서 묵묵히 수고해 왔던 '세션맨'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덕분에 우리가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본향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것을 받아 EBS <다큐 프라임>은 한 발 더 나아가 음악을 지탱하는 악기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악기를 통해 들여다본 건 인간이 연주하는 행위였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총 3부작 기획으로 방송된 이 프로의 서두는 슬프게도 악기들의 무덤이 열었다. 강원도 한 산골에 폐악기들이 모여든다. 200년 간 전성기를 누렸던 바이올린, 유명 전자 기타 존재만으로도 아우라를 뿜었던 그랜드 피아노 등이 이젠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죽어간다. 마치 영화 <토이스토리>의 버려진 장난감들처럼 이것들은 한때의 영광을 뒤로한 채,  무덤과 같은 창고 속에서 숨죽인 존재들일 뿐이다.

폐악기 창고에 국내 최고의 악기장인 6명이 찾아왔다. 그들의 손에 의해 무덤이었던 창고는 작업장으로 바뀌고 죽었던 악기는 생명을 얻어간다. 그리고 찾아든 연주자들이 그 악기를 연주하며 악기의 존재 이유를 살핀다.

1부가 음악을 통해 살아나는 그리고 역으로 악기를 매개해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살폈다면, 2부('악기와 악기가 만났을 때')는 조금 더 악기 자체에 집중해 그 특성을 살핀다. 피아노,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전자기타 등의 연주자들이 저마다 자신 있는 곡을 뽐내보지만 각 악기가 내는 소리는 그저 소음일 뿐이다.

한양대 작곡가 정건영 교수의 수업을 중심으로 슈베르트 교향곡의 오보에와 클라리넷 합주에서 시작해 동요와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함께 하는' 음악을 살펴본다. 단순하게 음역대가 넓어진다는 특징을 짚은 게 아닌 통찰력 있는 진실에 다가가려 한 셈이다.

3부는 악기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건축학과 학생들, 미디어 아티스트, 카이스트 학생들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세상에 없는 악기를 만들어 본다. 가능할까? 이들뿐이 아니다. 악기를 변형하거나 손수 제작하여 연주하는 '저그 밴드'가 등장한다. 빨래판, 양동이, 그리고 대걸레자루 등을 악기처럼 연주하는 밴드다.

당근, 브로콜리, 무 등에 구멍을 뚫으면 그럴 듯한 관악기 소리가 난다. 얼음이나, 물방울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기도 한다. 전병준 미디어 아티스트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며, 우리가 마음을 연다면 그 음악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 빛과 소리, 공기, 그리고 알루미늄 튜브, 피아노의 진공관, 톱니바퀴, 심지어 총을 사용하여 새로운 악기와 음악 창조에 도전한다.

그렇게 탄생한 악기와 그 소리는 물론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음악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음악 같다. 마치 잭슨 폴락이 구멍 낸 물감 통을 캔버스 위에 일정한 진폭으로 흩뿌려 현대 미술의 새로운 사조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전병준은 그렇게 완성된 악기보다도 그걸 만들어 내기 위해 시행착오를 반복해 가는 그 움직임, 행위 자체가 음악 같다는 말을 한다.

2부에서도 마찬가지다. 함께 하는 음악의 귀결점은, '듣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음악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음악을 함께 하기 위해 전제 되어야 할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한 이해이다. 1부에서 무덤에서 악기를 되살려 낸 것, 그리고 그들을 다시 악기이게 만든 것은 바로 그것과 동고동락하던 인간들이었다. 결국 이 다큐멘터리는 악기를 매게로 인간의 도전과 화합, 그리고 창조의 행위를 보여주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BS다큐 프라임-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악기 전자기타 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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