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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부선(자료사진).
 배우 김부선(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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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이 됐든, 사건의 명칭이 됐든, 개인이 벌인 두 개의 '전쟁'이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하나는 1968년에 실제로 벌어진 김희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김의 전쟁>이다. 또 다른 하나는 1988년에 제작된 영화 <한나의 전쟁>이다.

두 작품에서 이름 없는 한 개인은 거역하기 어려운 시대상황과 불화하며 양심의 문제로 갈등한다. 사람들은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할 수도 있는 이 '불화'에 '전쟁'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그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민주주의 문제를 앓고 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영화배우 김부선씨가 서울 한 아파트 동네의 '폭행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내가 이 사건을 '김부선의 전쟁'으로 명명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부선씨는 이 전쟁의 주인공이다. 이것은 결코 김부선씨가 제 성질에 못 이겨 벌인 작은 동네싸움이 아니다.

지난 12일,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반상회에서 김부선씨는 난방비와 관리비 관련 비리 문제를 폭로하려 했으나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과 폭행 시비가 일었다. 서울시가 지난 16일 밝힌 바에 따르면, 조사 결과 이같은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폭행이 있었던 당시의 전후관계와 아파트 단지의 비리 문제는 이제 모두 경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김부선씨의 문제를 특정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촌극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김부선씨는 대한민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상당수가 앓고 있는 문제를 용감하게 제기했다. 이 다툼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치르고 있는 전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는 김부선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중 일부도 지금 풀뿌리 민주주의와 관련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도 심각하게 앓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일정한 자치 단위에 살면서도 주민들은 운영위원회 대표가 누가 되는지, 관리사무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도통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으니 대표가 스스로 나서서 해 보겠다고 해서 뽑혔는지, 주변에서 해 보라고 추대해서 뽑혔는지조차 모른다. 어쨌든 선출된 사람에게 표를 준 사람이 있기는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의 인물이 좋아서 뽑았는지, 학벌이 좋아서 뽑았는지, 경력이 좋아서 뽑았는지, 고향이 같아서 뽑았는지를 모른다. 입에 발린 소리에 넘어가서 뽑았는지, 불쌍해서 뽑았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무관심한 상황에서는 일부 주민들의 의사가 과대 표출된다. 몇몇이 공모해서 자기들의 이익 챙기기에 도움이 될 대표를 만들어 내도 막을 방도가 없다. 이렇게 뽑히는 인물이 공동체의 이익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사적 이익 챙기기에 발군의 능력을 가진 사악한 사람이거나,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둔한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이 아파트 단지를 대한민국으로, 아파트 운영위원회 대표를 대통령으로 치환해 보자. 그렇게 뽑힌 대표(대통령)는 관리사무소(관료기구=관피아)를 장악하거나 결탁해 부패구조를 온존하거나 오히려 강화한다. 협조적인 주민들(기득권층)의 부담은 덜어 주는 대신 힘없는 주민들에게는 더 많은 부담을 강요한다. 공공사업은 부풀리고, 수의계약을 남발하고, 예산은 사적 용도로 유용한다.

기득권층에 편입된 주민들은 아파트 운영위원회나 동대표자 회의, 부녀회 등(국정원·검찰·언론 등)을 장악한다. 비리구조에 관한 정보를 은폐하거나 왜곡함으로써 선량한 대다수 아파트 주민들(국민들)이 진실에 접근하는 길을 차단한다.

일부 주민들이 의혹을 품는다 하더라도, 참여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걸림돌을 극복하면서까지 관심을 쏟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내 피해가 무시할 만한 것이라고 자기암시를 하며 사안을 애써 무시하기 일쑤이다.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선뜻 대표에게 항의하거나 관리사무소에 쳐들어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기득권층에 편입된 이들은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만들어 특정 개인을 고립 시킨다. 이를 눈치 챈 일개 주민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려면 많은 용기를 내야만 한다.

서울의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전경.
 서울의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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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무시' 속에 숨는 양심들

문제는 아파트 단지의 관리비뿐만이 아니다. 나라의 살림도 마찬가지다. 공공선택학파의 거두 맨커 올슨 메릴랜드 대학 교수는 이를 '합리적 무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합리적 무시'란 사회의 공적자금을 몇몇 악당들이 아무런 제재도 두려워하지 않고 눈먼 돈 취급하는 사태를 일컫는 경제용어이다.

가령 어떤 정책이 10명의 집단에게 10억 원의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가정하자. 그로 인해 다른 100만 명이 입는 피해가 100억 원에 이른다 한들 이들은 서슴지 않고 정치인이나 관료들에게 로비를 한다. 반면 피해를 입는 국민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피해는 1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개인 1인이 감당하는 피해가 워낙 작으므로 부정한 몇몇이 부당하게 누릴 1억 원의 혜택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실제 사회에서도 이익단체들과 관료들의 작당이 국민 여론에 의해 크게 문제시 되는 일이 드물다. 이 역시 '합리적 무시'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까지 우리가 보아 온 나랏일도 대략 그렇다. 김부선씨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운영에 대해 제기한 문제도 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입을 꾹 다물고 참고 사는 것은 '쿨'한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부당함이라도 문제를 파헤치고 용기 있게 해결에 나서는 것이 진짜로 '쿨'한 것이다. 가히 '김부선의 전쟁'이라 칭할 만하지 않은가.

김부선씨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그가 제기하고자 하는 아파트 관리비 수납 실태와 관리사무소 운영 실태 등은 대한민국의 지배기구가 그대로 시현하고 있는 비리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운영위원회의 부정부패라는 문제의 본질을 김부선 개인의 성격에 대한 시비로 흐린다. '쌍방 폭행' 여부로 물타기를 한다. 이런 모습까지도 지금 대한민국의 기득권이 '세월호'를 '국정원'을 덮으려는 것과 닮지 않았나.


태그:#김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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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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