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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L물류의 주요 화주사인 뚜레쥬르 앞에서 1인 시위하는 KNL물류 해고노동자
 KNL물류의 주요 화주사인 뚜레쥬르 앞에서 1인 시위하는 KNL물류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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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홈플러스, 뚜레쥬르, 샤니, 신세계SVN 등 KNL물류가 운송대행을 하는 전국 12개 주요사업장 앞에서 KNL물류와의 운송계약 중단을 촉구하는 동시다발 선전전이 진행됐다. 선전전을 진행한 KNL물류의 해고 노동자는 KNL물류와 그 모기업인 빙그레에서 20년 넘게 일해 오다가 지난 3월 25일 '도급계약 만료'라는 사유로 길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이다.

이날 이들은 지난 25년 동안 청춘을 바쳐 일하고도 결국 해고로 내몰린 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25년간 똑같은 현장에서 일하면서 이들은 빙그레에서 자회사인 KNL물류로, 그리고 다시 재하청사로 강제 이직됐다. "해고가 무효"라는 노동부의 판결을 받고도 빙그레는 "노동부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해고 노동자들은 울분을 쏟아냈다. 이들은 주요사업장들을 향해 "KNL물류와의 운송계약을 중단할 것"을 호소했다.

노동부 "하청업체, 원청 소속 하나의 부서로서 기능"

인천국제공항과 삼성전자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의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을 때 이미 확인된 사실이 있다. 거대 자본과 원청 사용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현재의 비정규법제도로는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의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청노동자에게는 권리가 없다. "일을 부려먹을 때는 사장님인데, 손톱만한 권리라도 주장하면 남모르는 사람이 되는" 처지다.

그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의 판단은 의미가 있다. 비록 빙그레가 고용노동부의 판단을 따르지 않고 있지만, 하청노동자의 처지개선을 위한 한 가닥 실마리를 제공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애초 1988년 주식회사 빙그레에 입사했다. 그리고 10년 후 김호연 빙그레 전 회장의 3남매가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는 자회사인 KNL물류로 이동을 강요 받았고, 3년 뒤 다시 소사장제의 명목상 회사로 이동했다. 20년이 넘게 고용계약만 달리한 채 같은 현장에서 같은 일을 한 것이다. 이번 해고도 지난 2013년 말 회사가 또 다시 인력파견업체로의 재하청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당시 근무하고 있던 200여 명의 노동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강제 이직을 수용했다. 그러나 강제 이직을 거부한 7명의 노동자를 회사는 손쉽게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 만료를 이유로 집단 해고했다. 이들 중 4명이 남아 아직도 싸우고 있다.

이 노동자들의 해고와 관련하여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지난 6월 11일 "소사장(하청사업자)은 사실상 원청에 속한 하나의 부서로서 기능하는 데 지나지 않으므로, 해고노동자는 KNL물류와 이미 묵시적인 근로관계가 있는 것"으로 봤다. 다시 말해서 도급계약 만료를 이유로 한 KNL물류의 집단해고가 애초 성립하지 않으니 그 자체로 무효라는 판정이다.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의 공문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의 공문
ⓒ 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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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이번 판정을 두고 대기업 빙그레와 KNL물류가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노동부의 판단이 불법"이라는 표현을 공문에 명기하며 결과를 부정했다.

KNL물류는 공공운수노조에 보낸 공문에서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의 금번 판단은 법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것"이라며 "매우 문제의 소지가 큰 과정을 거친 결론"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아무런 대외적인 법적 구속력이 없음은 물론 월권에 기한 불법적 판단"이라며 "귀 노조의 교섭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노동자의 유일한 생계수단은 노동을 제공하는 육체다. 이들에게 해고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노동부의 해고무효 판결 이후, 빙그레와 KNL물류가 제일 먼저 했어야 하는 일은 벌써 넉 달째 거리를 헤매고 있는 해고 노동자에 대한 사과였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노동부 판정을 부정하다 못해 법을 집행하는 노동부가 불법이라고 나섰다. 말 그대로 해고노동자를 두 번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부의 불법적 판단'에 대해서도, 자신이 해고 시킨 노동자를 상대로도 다시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원청 정규직과 하청업체 비정규직 목숨값의 차이

또한 이번 집단해고는 애초부터 커다란 윤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지난 2월 해고 노동자들과 똑같은 일을 했던 노동자 한 명이 빙그레 남양주 공장에서 암모니아 가스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고인은 앞서 언급한 하청의 재하청으로의 이직을 거부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재하청 노동자로 전락했던 그는 가스누출이 확인된 지 두 시간이나 지나 현장에 투입됐다가 사망했다.

당시 빙그레와 KNL물류의 정규직 노동자는 이미 모두 대피한 상황이었다. 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는 그 목숨의 존귀함에도 차이가 있다는 인식이었을까. 이 노동자의 죽음은 빙그레 자본의 민낯을 드러냈다.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제 목숨 하나 지킬 수 없는 하청의 재하청"을 거부했다. 정작 빙그레와 KNL물류의 집단해고는 한 노동자의 비극적 죽음이 이들에게 별다른 성찰을 제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노조의 교섭 요구 공문에 대한 KNL물류의 회신 공문
 노조의 교섭 요구 공문에 대한 KNL물류의 회신 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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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일, KBS <시사기획 창>은 김호연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해 보도했다. 빙그레는 앞으로는 회사를 위한 인건비 절감이 중요하다 강조하면서, 뒤로는 미국 땅에 7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이 유령회사와 수십억 원 규모의 장부거래를 통해 회사 재산을 오너 일가의 재산으로 편취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이번 집단 해고는 어떤 면으로 봐도 쉬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KNL물류가 운송대행을 하고 있는 사업장은 해고 노동자들이 돌아가야 할 현장이다. 그 사업장을 찾아가서 'KNL물류와의 운송계약을 중단하라'라고 외치는 것은 제 무덤을 파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들의 뻔뻔함과 오만함에 대해 고발하지 않고서야,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하청노동자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노력과 고민을 다하지 않고서야, 빙그레와 KNL물류가 제대로 된 회사가 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고객의 행복과 함께 노동자의 행복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일이 오늘 이들의 싸움에 달려 있다. 이들이 빙그레 본사 앞에서, 김호연 회장 집 앞에서, KNL물류 본사앞에서 원직복직투쟁을 한 지 170여 일이 지났다. 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정찬무 시민기자는 공공운수노동조합 공항항만운송본부 조직국장입니다.



태그:#빙그레, #KNL물류, #하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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