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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침몰희생자들의 추모하는 조형물 <못다핀 꽃>에 묶인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 바람에 휘날리는 노란리본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침몰희생자들의 추모하는 조형물 <못다핀 꽃>에 묶인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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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주말이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 릴레이 일일 단식 활동에 참여했다. 일일 단식을 하면서 거리에 오가는 시민들을 상대로 세월호 특별법 촉구 서명을 받았다.

그 다음 주 월요일, 어느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 가슴에 단 거 뭐예요?"
"응? 아, 이 노란 리본? 세월호 참사로 죽은 단원고 학생들과 여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단 거야. 전에 너희도 달아들 봤잖아."
"선생님, 어제 ○○ 마트 사거리에 계셨잖아요. 거기서 달고 오신 거죠?"

아는 체하며 말한 아이는 전날 릴레이 단식장에서 만난 녀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서히 잊혀져 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잠깐 얘기를 나눌 참이었다. 그런데 바로 전날 거리에서 나를 본 한 아이가 내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을 그냥 넘기지 않고 말을 건넨 것이다.

"그래, 맞아. 민혁이(가명)도 그때 노란 리본 받아갔지?"
"네."

다른 아이들이 물었다.

"○○ 마트 가면 노란 리본 받을 수 있어요? 지금도 계속 단식하고 있어요?"
"그럼, 리본 받을 수 있지. 거기 가면 노란 띠에 추모 글을 써서 붙일 수도 있어. 일부러 가 볼 필요까지야 없겠지. 하지만 그곳을 지날 일이 있으면 가서 리본도 받아 달고, 추모 글도 쓰면 좋지 않을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도 받고 있단다."

노란 리본으로 우연히 시작된 세월호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났다. 얼마 전, 나는 노란 리본을 달았던 옷을 빨래하기 위해 리본을 따로 떼 놓았다. 그뒤로 노란 리본은 내 옷장 수납함 한쪽에 조용히 있었다. 내일은 꼭 달고 나가야지 했다가도 아침 출근 길에 번번이 깜박 잊고 그냥 나갔다.

노란 리본 달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할 우려 있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교육부가 지난 16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황당무계한' 공문 한 장을 보낸 사실을 알았다. '교원 복무관리 및 계기교육 운영 관리 철저 요망'이라는 제목의 공문이었다. 자세히 알아보니 한 번 통지로 모자라 '재통지'까지 한 모양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공문 사진을 보고도 한참이나 두 눈을 의심했다. 이게 정말 21세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교육부에서 만든 게 맞나.

교육부는 공문을 통해 현재 각급 학교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월호 참사 관련 공동수업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학교 앞 1인 시위, 점심 단식, 노란 리본 달기 등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면서 이를 금지할 것을 통지해 놓았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니 더욱 놀라웠다. "근무시간 내 학교 내 1인 시위는 불법이므로 교원의 조퇴·연가는 불허"하고 "학생들의 중식(점심) 단식 참여를 유도하는 행위에 대해 엄중 단속"할 것을 지시해 놓았다. 가장 압권이었던 내용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달기 금지였다. 리본 달기가 교육활동과 무관한 정치적 활동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교육부의 공문 지시는 황우여 장관의 확인과 검토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공문을 보낸 교육부 교원복지연수과 관계자는 17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황우여 교육부장관에게도 전반적인 공문의 내용과 조치 사항을 모두 보고했다"며 "노란 리본 달기는 세월호 추모를 빙자해 특별법 제정을 위해 정치적으로 변질됐기 때문에 금지한 것이고, 1인 시위는 근무시간 외 학교 밖에서 한다면 개인의 표현의 자유이므로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 비겁하다. 교사들의 1인 시위는 일과 전이나 후에 학교 밖에서 이루어진다. 점심 단식은 자발적으로 참여해 실시한다. 교육부는 이런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교사들이 근무시간에 학교 안에서 1인 시위를 하거나 학생들에게 단식을 유도하고 있는 양 호도한다.

추모의 표시로 다는 리본을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모는 대한민국 교육부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노란 리본이(리본 달기가) 정치 행위라는 걸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두둥"하고 말한 한 누리꾼의 조롱이 오히려 서글퍼졌다. 내 나라 대한민국의 '국격'이 고작 이 정도인가 싶어서 말이다.

노란 리본 달기는 세월호 참사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

'유가족의 요구를 수용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대학생들이 25일 오후 서울대와 경희대를 각각 출발해 도보행진으로 출발해 청운·효자 동사무소 앞 농성중인 유가족을 만나 노란 리본을 선물 받고 있다.
▲ 노란리본 선물하는 유가족 '유가족의 요구를 수용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대학생들이 25일 오후 서울대와 경희대를 각각 출발해 도보행진으로 출발해 청운·효자 동사무소 앞 농성중인 유가족을 만나 노란 리본을 선물 받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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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 달기는 세월호 참사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노란 리본이든 검정 리본이든 비명에 간 이들을 추모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 감정의 발로다. 대체 교육부는 어떤 근거로 리본 달기가 '정치적'이라고 판단하는가. 어느 누가 추모를 위한 리본 달기의 정치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교육부에게 주었는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헌법 제31조 4항이 보장하고 있는 명백한 기본권이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교육이 권력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당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교육계 내에 현안이 불거져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정치적 중립성 위반'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들고 있다. 헌법이 권리로 보장하고 있는 조항을 하위 법령으로 무력화면서 비판론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의무 조항으로 둔갑시키곤 했다.

'정치'에 대한 국민적인 반감이나 혐오 정서에 기댄 꼼수라 아니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 모든 교육 활동, 아니 인간의 모든 활동이 '정치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그만큼 교육부의 이번 조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많은 국민의 목소리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강해 보였다. 그렇다면 교육부 자신이야말로 자신이 금기시하는 정치적 중립성을 가장 앞장서서 위반하고 있는 게 아닌가.

교육부가 말하는 '교육 활동'이란 어떤 것일까. 노란 리본 달기가 교육 활동과 무관한 것이라는 판단은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나온 것일까. 죽은 이를 추모하는 리본 달기가 교육 활동과 무관하다면 교내·외 행사에서 수없이 이루어지는 애국가 부르기와 호국영령을 위한 묵념 등은 교육 활동과 어떻게 연결될까.

교육부는 공문에서 공동수업이나 1인 시위 등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음을 지적했다. 학생들이, 여러모로 미심쩍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하는 일에 앞장서는 교사를 보면서 어떤 '편향된 시각'을 받는다는 것일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마땅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학생들은 오히려 그런 교사를 보면서 진실 앞에서는 결코 굴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퇴근하는 길에 친한 선생님 한 분이 온라인 모임 게시판에 "교육부, 네 미숙함이나 걱정해라. 너의 편향적 시각이나 교정해라"라는 말을 올려놓은 걸 보았다.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문득 내 옷장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노란 리본의 '운명'을 떠올려 보았다. 추모 리본에 대해서조차 '친절한' 정치적 해석을 내놓으면서, 교사들이 정치적 중립성 시비에 휘말리지 말도록 챙겨주는 교육부의 깊은 뜻도 새겨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그 조그만 노란 리본이 옷장 안에서 '운명'을 마치도록 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퇴근하자마자 내일 입고 갈 셔츠에 노란 리본을 고이 달았다. 억울하게 죽어간 안산 단원고 학생 희생자들의 명복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완전히 밝혀질 때까지 달고 다닐 작정이다.

교육부에 묻고 싶다. 학생들의 '미성숙'을 걱정하며 편향된 시각에 물들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에 진심으로 진정성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걱정은 붙들어 매두시라.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우리 학생들은 교육부가 걱정하는 것만큼 '미성숙'해 보이지 않는다. 비록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이지만, 타인의 죽음에 애도할 줄 알고 그 죽음의 억울함에 분노할 줄 아는 건강한 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말이다. 대체 누가 미성숙하고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는지.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태그:#노란 리본 달기 금지, #교육부, #1인 시위, #중식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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