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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노란손수건 회원들이 7월 15일 국회에 세월호 특별법 서명지를 제출하기 위해 서명지가 든 박스를 들고 걸어가고 있다.
 엄마의 노란손수건 회원들이 7월 15일 국회에 세월호 특별법 서명지를 제출하기 위해 서명지가 든 박스를 들고 걸어가고 있다.
ⓒ 김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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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마땅히 구조됐어야 할 아이들이 수장되는 비극을 생중계로 목격했습니다. 내 자식을 잃은 것처럼 비통한 심정으로 매일 눈물 흘리고 통곡의 날들을 지내온 엄마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지시를 따르다 죽어간 아이들.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엄마들을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게 최선이라 생각해온 엄마들은 그동안의 무관심과 무지를 반성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나라님만 믿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모이게 된 곳이 바로 '다음 카페 엄마의 노란손수건'입니다.

반찬값 아껴 세월호 참사 알리는 광고 제작... 투사가 된 엄마들

지난 5월 5일 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까지 '엄마들의 침묵 행진'을 시작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들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유가족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던 '엄마의 노란손수건'은 밤을 지새기도 했습니다. 밤마다 엄마들은 800개의 노란 리본이 담긴 병 목걸이와 600개의 핸드폰 고리를 만들어 유가족께 전달했습니다. 그렇게 엄마들은 유가족에게 다가갔습니다.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 안전한 사회로 거듭나게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입니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라님들 때문에 엄마들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가족 분들과 함께 같은 지역 회원들끼리 혹은 개인적으로 서명 용지를 들고 다니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 350만 명의 서명지를 국회에 전달을 하던 그날도 엄마들은 함께 했습니다. 평범하던 엄마들은 난생처음 국회에 발을 디뎠습니다. "엄마들이 국회까지 오게 될 줄이야"하고 탄식한 엄마도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두고 유가족을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신문에 전면 광고를 내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촉박한 시간에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찬값 아끼고 생활비 쪼갤 각오를 했습니다. 친구에게 아쉬운 소리로 후원 요청도 하고 모아 뒀던 목돈도 내면서 엄마들은 십시일반 성금을 냈습니다. 단 3일간의 모금으로 '한겨레'에 전면광고를 게재하는 벅찬 성과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낳아 첫 백일은 엄마가 키웠지만, 사고를 참사로 만든 100일은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광고에 들어간 내용입니다. 이 게재를 통해 참사100일, 특별법에 대한 해결책을 담은 정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350만 명의 세월호 특별법 서명 제출이 무색하게 졸속으로 이뤄진 여야 1차 야합. 선거 전 세월호 진상을 밝혀주겠다던 야당마저 믿을 수 없다는 사실에 분개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들은 쉽게 좌절할 수 없었습니다.

"뒤집을 수 있다! 뒤집어야 한다!"

8월 30일 청와대에 세월호 특별법 추가 서명지를 전달하기 전 서울역에서 서명을 받기 위해 유가족들과 함께 준비를 하고 있다.
 8월 30일 청와대에 세월호 특별법 추가 서명지를 전달하기 전 서울역에서 서명을 받기 위해 유가족들과 함께 준비를 하고 있다.
ⓒ 김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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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결심으로 국회 앞에서 13개 온라인 커뮤니티 엄마 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믿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의 무능에 믿을 곳은 국민, 우리뿐이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행동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유가족의 상황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주요 언론을 대신해 세월호 소식을 알릴 갖은 방법을 의논해 실천에 옮기고, 유가족 비방글에 대처하기 위한 문구를 만들어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역에서. 유가족이 함께하는 서명 동참 운동에서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주길 염원하며 머리 위로 피켓을 올렸습니다. 새누리 당사와 새정치민주연합 당사 앞에서 1인 시위도 했습니다.

"할 일 없는 여편네들이 살림이나 하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아직도 세월호야? 경제 먼저 살려야 한다!"

따가운 눈총과 폭언에 상처받기도 했지만, 유가족의 아픈 마음에 비하면 '이쯤이야'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처절했던 유민 아빠의 46일간의 단식 기간 동안 세월호 이전의 평범한 엄마들은 점점 더 격렬한 투사가 되어 갔습니다. 혈혈단신의 몸으로 동네에서 피켓을 들고, 유인물을 배포하고, 노란 리본을 나누고, 서명을 받는 일까지. 1인 4역을 하기도 합니다.

"그만하라고 하지만... 엄마들은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엄마들의 바람은 사고의 철저한 진상규명입니다. 유가족들의 한을 덜어드리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나라가 안전한 나라가 됐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3보1배로 청와대를 향해 추가 서명 용지를 전달하던 날, 경찰들에게 가로막혀 4시간 16분을 보내고 나니, 단순한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세월호 때문에'라는 원망을 듣지 않으려고 몸이 부서져라 직장 일, 아이 일, 시댁 일, 친정 일, 집안 일에 더욱 바지런을 떨며 하루를 열심히 살아갑니다.

잊지 말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만하라 합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라 합니다. 그러나 엄마들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세월호 이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습니다. 길어질 것 같은 이 싸움을 우리 엄마들은 이제 새로운 일상으로 받아들입니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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