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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지의 식당은 제각기 다른 공기를 품고 있다. 어떤 식당은 북적대고 활기가 넘쳤고, 어떤 식당은 너무나 고요해서 내가 태어난 곳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를 일깨워 주기도 했다. (바라나시에서)
 여행지의 식당은 제각기 다른 공기를 품고 있다. 어떤 식당은 북적대고 활기가 넘쳤고, 어떤 식당은 너무나 고요해서 내가 태어난 곳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를 일깨워 주기도 했다. (바라나시에서)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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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 고단한 몸을 이끌고 들어서면, 여행자가 되는 식당이 있었고 이방인이 되는 식당이 있었다. 훗훗하고 화기애애한 공기 속에서 여행자는 내일의 여행 계획을 세웠고, 형광등 불빛이 안개처럼 가라앉는 곳에서 이방인은 먼 미래를 꿈꿨다.

바라나시 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의 벽은 꽉 차 있었지만 어쩐지 허전해 보였다. 그들이 존경하는 구루(정신적인 스승)의 사진과 함께 어울려 있는 내 고향 사람들이 즐겨 먹는 라면의 부조화 때문일까.

그런 곳에서 나는, 조악한 의자에 등을 기대고 턱이라도 괸 채, 언제 나올지 모르는 음식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당장 내일 어디로 가야 할지 계획하기보다는 먼 훗날 마지막 여행지가 어디가 될지, 아득히 가늠해 보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한 바퀴 돌고 나면 파리로 이사를 갈 테다. 가서 꼭 백일만 살아볼 참이다. 그게 여행이지 무슨 사는 거냐고 비웃지 마시라.

가서, 호텔 말고 소박한 방을 구하고 냄비밥을 지어 먹고 빨래를 널고 지내면 그게 사는 거지 뭐 사는 게 별건가. 아, 창가에 푸른 화분도 하나 놓아야지. 한 달 내내 저 혼자 잘 자라는 선인장 같은 거 말고 매일매일 물주고 바람 쐬어 주어야 탈 없이 잘 자라는 아주 까다로운 녀석으로. 어디 나갔다가도 그 녀석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고야 마는. 그게 사는 거지 뭐 사는 게 별건가.

하루는 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화초처럼 자란 손톱을 깎고, 하루는 말이 통하지 않는 헤어숍에서 머리를 자르고, 하루는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다 늦은 나이에 탱크탑을 걸친 채 싸댕질(싸돌아 댕기기), 또 하루는 서점에 가서 그 나라말로 된 두꺼운 책을 골라, 마치 읽는 것처럼 마지막 장까지 들여다봐야지. 그 나라의 낯선 글씨가 그림처럼 아름답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파리에서 백일, 베니스에서 백일, 페즈에서 백일, 이스탄불에서 백일...꼭 백일이어야 한다. 더도 덜도 말고 백일. 그렇게 석 달 열흘을 살아 볼 것이다. 마늘과 쑥만으로 버텨 마침내 인간이 된 곰탱이의 미련한 이야기에서처럼 진득하게.

그럼 혹시 아는가. 백 일째 되는 날, 나의 고단한 여행이 일상이 되고, 지루하고 이끼 낀 일상이 비로소 여행이 될지도. 여행이 일상이고 일상이 여행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될지도. 세상 모든 여행은 그렇게 끝날 것이다. 떠나는 건 돌아오기 위한 것이니까.

p.s   못다 부친 사진들

바라나시의 어느 가트에서.
 바라나시의 어느 가트에서.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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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국민음식 중 하나인 뿌리. 만두피처럼 반죽한 것을 뜨거운 기름에 튀기면 금방 부풀어 오른다. 톡 터뜨려 속이 텅 빈 뿌리에 소스를 얹어 먹으면 바삭하고 고소하다. (아그라에서)
▲ 뿌리 인도의 국민음식 중 하나인 뿌리. 만두피처럼 반죽한 것을 뜨거운 기름에 튀기면 금방 부풀어 오른다. 톡 터뜨려 속이 텅 빈 뿌리에 소스를 얹어 먹으면 바삭하고 고소하다. (아그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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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개는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겁이 많거나 거만하거나. 어찌어찌 올라는 갔는데 내려오는 방법을 몰라 주눅 들었거나, 내려다보는 맛에 혹해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 싫어졌거나.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둘 다 아닐지도. 어쩌면 저건 자기 방식의 명상이었는지도. 바라나시의 개들은 사람들을 향해 짖거나 구걸하지 않을 정도로 점잖았으니까.
 저 개는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겁이 많거나 거만하거나. 어찌어찌 올라는 갔는데 내려오는 방법을 몰라 주눅 들었거나, 내려다보는 맛에 혹해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 싫어졌거나.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둘 다 아닐지도. 어쩌면 저건 자기 방식의 명상이었는지도. 바라나시의 개들은 사람들을 향해 짖거나 구걸하지 않을 정도로 점잖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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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는 죽은 자의 직계 유족으로서, 어떤 이는 속죄의 의미로, 어떤 이는 사원에 머리털을 공양하기 위해, 머리를 민다. (바라나시)
 어떤 이는 죽은 자의 직계 유족으로서, 어떤 이는 속죄의 의미로, 어떤 이는 사원에 머리털을 공양하기 위해, 머리를 민다.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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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궁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그라)
 행복은 궁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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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에 간다면 하루쯤은 자전거를 빌려 타고, 관광객이 몰려다니는 서부 사원군과 반대 방향으로 달려 보자. 그러면 한적하고 조용한 사원을 만날 수 있다.
 카주라호에 간다면 하루쯤은 자전거를 빌려 타고, 관광객이 몰려다니는 서부 사원군과 반대 방향으로 달려 보자. 그러면 한적하고 조용한 사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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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란, 남편이 죽으면 살아있는 부인도 함께 장작더미에 화장을 시키는 힌두교식 장례 풍습. 메헤랑가르 성의 문에 새겨진 31개의 슬픈 손도장은 한 철부지 마하라자가 거느렸던 부인들의 것으로 사띠를 거행한 증표. 아직도 인도에서는 공공연히 혹은 비밀리에 사띠가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조드뿌르)
▲ 사띠 사띠란, 남편이 죽으면 살아있는 부인도 함께 장작더미에 화장을 시키는 힌두교식 장례 풍습. 메헤랑가르 성의 문에 새겨진 31개의 슬픈 손도장은 한 철부지 마하라자가 거느렸던 부인들의 것으로 사띠를 거행한 증표. 아직도 인도에서는 공공연히 혹은 비밀리에 사띠가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조드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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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음이 부처님 마음인 것을. (아잔타 석굴)
 엄마 마음이 부처님 마음인 것을. (아잔타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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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색깔만큼이나 인도 여행은 찐~했다. (아그라의 어느 시장에서)
 저 색깔만큼이나 인도 여행은 찐~했다. (아그라의 어느 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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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3년 1월 한달 동안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태그:#인도의 식당, #바라나시, #인도, #인도여행, #찬단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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