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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코졸이 쓴 <교사로 산다는 것> 겉표지
 조너선 코졸이 쓴 <교사로 산다는 것> 겉표지
ⓒ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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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이라는 부제를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시민권과 시민불복종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습니다. 군대처럼 복종을 가르치는 기존의 학교 교육에 맞서는 '불복종 교육'은 자연스럽게 '시민불복종'으로 연결되더군요.

공부가 부족한 저에겐 낯선 인물이었지만, 저자 '조너선 코졸'은 미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성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그의 이름만으로는 그 명성을 짐작하기 어려웠는데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과 나란히 언급되는 미국의 비판적 지성이라는 저자 소개를 읽고 보니,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36년에 태어났으니 그는 여든을 바라보는 교육운동가이자 작가입니다. 하버드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장학생으로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후에 공립학교 교사가 된 것부터 평범하지는 않은 이력입니다.

1965년 보스턴의 흑인 거주 구역인 록스베리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종분리가 심한 교육환경 속에 방치된 학생들에게 인종차별에 저항한 흑인 시인의 시를 읽어주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의 빈민 아이들과 함께 하며 인종차별과 빈곤 문제에 집중하면서 지난 50여년 간 차별적인 교육과 사회불평등에 맞서는 교육운동가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해직교사 출신의 교육운동가 조너선 코졸

그는 미국 빈곤층의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고, 대중의 각성과 사회 변혁을 촉진하기 위한 글들을 주로 써 왔으며 <이른 나이의 죽음>, <야만적 불평등>, <국가의 수치> 등의 책을 통해 전미도서상을 비롯한 다양한 도서상을 수상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교사로 산다는 것>은 미국에서 1981년에 초판이 나왔으며 2009년에 개정판이 나온 책입니다. 30년도 더 지난 책이니 당연히 오래된 책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의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 책에 담긴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주입식 교육'의 폐해입니다. 조너선 코졸에 따르면 주입식 교육은 폐해에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반교육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1980년대 초반 미국의 공교육 현장의 구체적 모습을 다루고 있지만, 세계 여러나라의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과 별로 다르지 않은 보편적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2014년 한국의 독자와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양심적인 교육자들에게도 울림이 있는 까닭은 아이들을 낡은 사고에 묶어놓으려는 국가주도의 주입식 교육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조너선 코졸은 독자들에게 첫 질문으로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공립학교가 시대에 뒤지고 비인간적인 교육 기관이라면 "학생은 이 허위의 온상에서 12년 만 지내면 되지만, 교사는 대개 여기서 종신형을 치러야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합니다.

학교가 바로 서야 하는 까닭은 학생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사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평생을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교사에게 더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교사들이 먼저 타성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아이들에게 진실을 보여주라'고 권합니다. 미국의 유명 인사들이 남긴 말 속에 교육의 본질을 드러내는 진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 교육위원회의 성명서나 보고서를 보면 교육의 본질에 대한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학교의 의무는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고... 이상적인 가족상을 심어주며... 전통적 가치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많은 재산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재산과 인격,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나 철통 감시를 해주는 유능한 경찰이 있지 않습니까? 공립학교 체제는 그 자체로 일반인들에게 이런 혜택을 줄 수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말하자면 아이들이 이런 교육 받을 수 있도록 세금을 내는 것이야 말로 부자들이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타성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은 교사는 주저하지 말고 먼저 아이에게 이런 학교의 본질을 제대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학생이 강한 신념을 표시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한편, 저자는 바람직한 교사는 학생이 강한 신념을 표명하고 격렬한 논쟁적 언조로 말하는 것을 불온시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막연히 양극단의 주장을 배제하고 중도적인 입장을 지지하는 방식은 편견을 심어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극단에 대한 편견은 교사와 학생 모두의 의식을 마비시킨다. 모든 극단적인 생각이나 급진적인 견해는 원래부터 수상한 것이라 여겨지는 반면, 온건한 전술 - 신념이 아닌 개념-은 처음부터 믿음직스럽다고 여겨진다." (본문 중에서)

예컨대 '양극단'과 같은 표현은 항상 사악하고 무언가 위험하다는 선입견을 주기에 충분하며, 중도에 가까울수록 진실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주게 됩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인용합니다.

"나는 내 말이 과격하게 들리지 않을까봐 걱정이다. 나는 어디서든 제약없이 말하고 싶다." (본문 중에서)

극단주의자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극단주의인가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마틴 루터킹이 감옥에서 쓴 편지에서 언급했듯이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극단주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극단주의'라면 탓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이야기하면서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이웃을 보면서 '중립'을 말하는 것은 고통을 외면하는 일이라는 뜻이겠지요.

교황이 짧은 방문을 마치고 떠나자마자 세월호 유가족들의 특별법 제정 요구를 '극단적'이라고 비난하는 자들이 우후죽순처럼 튀어나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어쨌든 교사는 학생들에게 '중도'가 진실에 가깝다는 그런 편견을 심어주지 않아야 하며, 학생에게 굳은 신념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가 보여주는 진정성과 살아있는 신념이야 말로 보이지 않는 교육 과정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마침내 학생들이 '아니오'라고 자신의 신념을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부당한 일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불복종 교육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인권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박할 수 없다면 권력을 쥔 사람의 권력은 무한히 커질 것이고, 토론에 부칠 수 없다면 그들의 견해는 독단으로 흐를 것이다." (본문 중에서)

권력을 견제하고 독단을 막기 위해서는 누군가 반박할 수 있어야 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하며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초입니다.

하지만 격하게 논쟁하고도 서로 존중할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는 것과 그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공격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 또한 동시에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또 양심적인 교사라면 '교과서의 감옥에서 벗어나' 진리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자는 링컨이 흑인의 자유를 위해 싸운 투사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예시로 소개합니다.

링컨이 노예해방선언서에 서명한 것은 정치적으로 유리한 선택을 한 것일 뿐이며, 그가 서명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흑인해방운동가들이 여러 해 동안 필사적인 투쟁을 벌인 결과라는 것입니다.

"저는 백인과 흑인이 어떻게든 정치적, 사회적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한 적도 없고 지금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백인과 흑인은 육체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 정치적으로 평등한 조건에서 영원히 함께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런만큼 우리가 함께 사는 동안에는 우월한 지위와 열등한 지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백인이 우월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누구 못지 않게 지지합니다." (분문 중에서)

링컨이 노예해방선언서에 서명한 것은 정치적 선택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백인 우월과 흑인에 대한 차별적인 생각을 버리지 않았으면서도 결국 노예해방을 위한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까닭을 바르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링컨은 노예해방 위해 싸우지 않았다는 진실 가르쳐야...

한편, 저자는 무기력한 교사가 되지 않으려면 '교사용 지도서'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교사용 지도서는 교사에게 있어서 마약과 같은 존재입니다.  교사용 지도서에 매달리는 교사는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수업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며, 지적 자존감을 잃게 될 것입니다.

창조적이고 활기찬 수업, 진리를 찾아가는 수업이 진행되려면 교사용 지도서에서 벗어날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는 역대 대통령의 업적을 나열하거나 전쟁과 장군 그리고 그들의 전공에 대해서만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사회의 정의와 진실을 알릴 수 있어야 하며, 가난한 아이들은 자신의 삶과 다른 가난한 이웃들의 삶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 소유하고 어떤 사람은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입니다.

이 밖에도 이책은 학교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가르치는 까닭, "자유세계, 평화를 사랑하는" 따위의 관례적 표현에 담긴 '진실'이 무엇인지를 파헤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학생들에게는 조금 더 '자유롭게 사고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주라고 주장합니다.

이 책의 특징은 문제제기에만 머무르고 있지 않습니다. 저자는 양심적인 교사들이 교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실전 전략과 구체적 예시를 이 책을 통해 소개합니다.

오래 전에 쓰인 책이기도 하고, 미국의 현실을 다룬 책이기도 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례들은 낡은 이야기 일 수도 있고, 남의 나라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저자가 제안하는 기본적인 전략 역시 여전히 유효합니다.

비겁하지 않은 교사, 양심의 소리를 따르는 교사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숙고하게 만드는 울림이 큰 책입니다. 그러나 이런 조너선 코졸의 가르침 대로 살아가려면 이 땅에서는 여전히 해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사로 산다는 것 - 학교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

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이계삼 해제, 양철북(2011)


태그:#교사로 산다는 것, #조너선 코졸, #전교조, #교육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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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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