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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순희 시민기자는 울산 동구의 마을 도서관, 꽃바위작은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 누구나 오순도순 소박한 정을 나누는 마을 사랑방 같은 작은도서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매주 수요일 도서관견학이 있어요~아이들은 도서관을 찾아옵니다~
▲ 수요일 아침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도서관은 즐겁습니다~ 매주 수요일 도서관견학이 있어요~아이들은 도서관을 찾아옵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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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만 되면 도서관은 꼬마 손님들로 북적입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엄마의 품을 떠나 어린이집에 온 3~5세의 아주 어린 꼬마부터, 그래도 나름 의젓함을 보여주는 6~7세의 아이들로 수요일은 시끌벅적하니 그야말로 도서관놀이터가 됩니다.

"아~녀하세요?"
"네에~ 우리 친구들 어서와요~"

정확한 발음조차 힘든 꼬마 아이들의 등장.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남다릅니다. 쫄망쫄망 친구 어깨에 손을 얹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들어오는 아이들은 도서관입구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빅북구연 선생님들 앞에 쪼르르 앉습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어떤 책을 들려주실지 궁금함을 가득 안은 채 말입니다.

"자, 우리 친구들~ 여기가 어디에요?"
"도서관~"
"네에~ 우리 친구들 도서관에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알지요~?"
"네~ 책 봐요~"
"만화책 봐요~"
"친구랑 놀아요~"
"엄마가 책 읽어줘요~"

한 줄로 들어서는 아이들은 아직도 어리둥절합니다~
▲ 도서관견학이 있습니다~ 한 줄로 들어서는 아이들은 아직도 어리둥절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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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무슨 얘기하나 귀 기울이며 저를 쳐다봅니다~
▲ 저는 언제나 대타역할에 충실합니다~ 아이들이 무슨 얘기하나 귀 기울이며 저를 쳐다봅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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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특이한 대답들이 나옵니다. 아무 것도 안 한다는 아이들도 있고, 놀다가 집에 간다는 아이 등등. 아이들은 질문을 하면 정말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답을 합니다. 맞습니다. 아이들 말처럼 도서관에선 책도 보고 친구랑 이야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구경도 하고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하다 가면 됩니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바라보고 있다 빅북구연을 들려줍니다. 빅북 선생님들이 한 번씩 빠질 때가 있는데, 그때 저는 대타역할을 맡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해진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항상 대타역할을 합니다.

"샘~ 오늘은 효정샘이 안 와서 선비하고 선비어머니 역할 하세요~"
"대사도 몇 번 안하는 데 쪼매 섭섭하네~해설하면 안 돼요?"
"샘~ 샘은 사투리가 장난이 아니라 아이들한테 좀 그렇~지요"
"아이고, 알아심더, 어디가나 사투리 땜에 문제네요~"

다정다감한 해설부분이지만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읽어버리니 당연 빅북샘들의 불만 아닌 불만이... 결국 전 대신하는 역할조차도 주인공은 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지요. 그래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해야 할 입장이긴 합니다. 이번엔 선비와 선비어머니역할을 해야 하는데 가만히 대본을 보니 선비 5줄에 선비어머니 1줄이 전부입니다. 간단해서 좋긴한데 좀 아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라바책갈피만들기에 함께하네요~
▲ 라바에 반했네요~ 아이들은 라바책갈피만들기에 함께하네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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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 아이들은 라바를 들고 좋아라합니다~
▲ 어때요? 예쁘죠? 신난 아이들은 라바를 들고 좋아라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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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도서관에선 수요일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빅북구연, 간단한 만들기, 자유독서, 사진촬영 등으로 구성된 견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아이들이 도서관을 다녀갔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 흐뭇함이 밀려듭니다.

조용하던 도서관이 아이들의 목소리에 놀이터가 되어 버리긴 하지만, 그래도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도서관 문을 나서는 아이들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처음엔 조용한 도서관에 시끌벅적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하하호호 웃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부담스럽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도서관이 새것에서 벗어날 때마다 이젠 아이들의 그 웃음소리가 그립습니다.

목요일마다 그리고 금요일마다 열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저희 도서관을 찾아오는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곧 초등학교를 입학 하게 될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자유롭게 도서관으로 들어서고, 조용히 그림책코너에 앉아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또 돌아갈 땐 항상 자기가 볼 그림책 한 권을 들고, 대출반납대로 옵니다.

처음 도서관을 이용할 때 아이들 이름으로 도서회원증을 발급받은 상태라, 아이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회원증을 내밀고, 그 앞에 그림책을 한 권 올려놓습니다. 책을 빌리지 않고 그냥 도서관 문을 나서려는 아이들은 '삑삑삑' 소리 나는 것이 신기해서 일부러 입구에 서 있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선생님이 시키지 않아도 줄을 서서 책을 빌려가고, 줄을 서서 도서관 문을 나섭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우르르 왔다가는 아이들이었지만 어느새 혼자서도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 이용자가 다 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처음은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겠지요. 사서인 저는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 좋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있어 도서관은 행복합니다~
▲ 제법 의젓하게 책을 빌려갑니다~ 이런 아이들이 있어 도서관은 행복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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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감사합니다~"
"선생님~근데요~호랑이가 무서워요~"
"선생님~안녕히 가세요~"
"그래, 잘 가라~담에 엄마랑 아빠랑 같이 와서 책 봐아~"
"우리 엄마는요~ 바빠요~"
"안 바쁠 때 와서 봐라~"
"네~에~

'호랑이형님' 빅북구연이 끝난 뒤 아이들은 라바책갈피를 만들어 손에 쥐고, 사진도 찍고, 마지막으로 책 한 권씩 읽고 돌아갑니다. 아직은 서툰 역할을 한 제게도 아이들은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늘 끝나고 나면 '좀 더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의 눈을 바라볼 때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동화구연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전 걸음마를 채 떼지 못한 초보입니다. 좀 더 분발해 올해 안에는 꼭 주인공 역할을 해 보고 싶다고 빅북구연 샘들한테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마 분명 거절을 당하겠지만, 그래도 좀 더 노력하면 좋아지지 않을까요? 물론 울산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투리는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겠지요?

"샘들~오늘도 고생했심더~토끼 귀가 부러져서 웃음 참느라 힘들었데이~"
"안 그래도 그거 보고 사서샘 웃음보가 터지면 우야노, 싶었네요~"
"다행이 한쪽 귀가 팔랑팔랑 거리니 꼭 춤추는 것 같아 웃음은 모면 했죠~"
"암픈 우리 사서샘 웃기면 안 된다니까~"
"아, 그건 그렇고 샘들~담엔 저 주인공 함 시켜 주이소~"
"그건 안 된다고 얘기 했는데에~, 사투리가 넘 많아요~"
"그라믄 좀 고치믄 시켜줄꺼죠~?"
"네네~"

이렇게 협상 아닌 협상을 마친 뒤 가을비가 내리는 도서관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한바탕 웃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런 편지 받을때마다 사서라서 행복합니다~
▲ 아이들이 직접 쓴 '사랑의편지' 이런 편지 받을때마다 사서라서 행복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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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서관견학, #빅북구연, #책갈피, #꽃바위작은도서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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