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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땡볕이 따갑던 지난 13일 오후 3시,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엔 난데없이 초코바들이 던져졌다. 인터넷 커뮤니티 수컷닷컴과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 30여 명이 초코바를 박스째 가져와 시민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초코바를 먹으며 단식을 한다"며 유가족들이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광화문 광장은 종북 좌파가 점령하고 있다"며 "초코바를 사면 경제활성화도 되고 무작정 경제를 죽이는 유가족들의 단식보다 낫다"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이들의 행사는 지난 6일 피자와 치킨을 먹으며 유가족들의 단식투쟁을 조롱했던 '폭식투쟁'의 연장선이었다. 많은 이들은 저들의 행위를 반인륜적이라며 비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이목을 끈 건 '폭식투쟁'이라 불리는 반인륜적 퍼포먼스의 주인공들이 20대라는 사실이었다.

"나도 일베 하지만, 폭식투쟁은 진짜 별로였다"

일베 회원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도시락 나들이' 등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일베 회원들과 시민들이 피자와 치킨을 먹고 있다.
▲ 피자 먹으러 광화문 나온 일베 회원들 일베 회원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도시락 나들이' 등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일베 회원들과 시민들이 피자와 치킨을 먹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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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20대들의 목소리는 대부분 진보진영에서 나왔다. 지난 2013년 말 이슈로 떠올랐던 '안녕들하십니까'의 시작은 한 대학생의 대자보였고,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등의 선언도 촉매는 대학생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의 '반값등록금' 촛불시위  역시 주된 주체는 대학생들이었고 국정원 규탄 집회 등에서도 대학생들이 낸 목소리는 작지 않았다. 이렇듯 그동안 20대들의 정치행위는 주로 진보진영, 범야권진영에서 나왔다.

폭식투쟁은 이와 대비되게 보수, 그것도 극우 성향을 띠는 20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보수 성향의 20대들이 거리로 나온 것은 분명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자유대학생연합, 한국대학생포럼 등의 청년 단체가 있었지만 진보진영과 달리 집회의 주축은 어버이연합, 자유청년연합과 같은 노년층이었다.

물론 일베를 '보수적인 20대 모두를 대표하는 사이트'로 일반화시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번 폭식투쟁 관련, 일베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게나마 나오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대학생 A(23·남)씨는 "나도 일베를 하지만, 이번 폭식투쟁은 진짜 별로인 거 같다, 낄낄대는 건 인터넷에서만 했어야지 오프라인에서 유족들 앞에서 저러니깐 뭐랄까 천박하더라"라며 "소위 '행게이'라 불리는 이들이 한 거지만 너무 자기네들의 놀이에 취해있는 거 같다"라고 폭식투쟁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또 그는 "수컷닷컴의 운영진이나, 일베 회원들이 진짜로 유족들 뜻에 반대한다면 그 방법은 조롱이 아니어야 한다"라며 "일베가 그렇게 까던 '나는 꼼수다'와 저 폭식투쟁이 다를 게 뭔가?"라고 밝혔다.

일베를 드나드는 또 다른 누리꾼 B(26·남)씨 역시 같은 의견을 냈다. B씨는 "원래 남들 앞에서 일베 한다고 얘기 안 했는데, 저런 걸 보면서 더더욱 부끄러워졌다"면서 "그간 일베의 의견에 많이 동조했고, 여전히 세월호 특별법에 동의 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런 폭식투쟁까지 긍정하지는 않는다"면서 "광화문 앞에서 음식을 먹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유족들 앞에서 저러는 건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고 결국 '보수'라는 이름에 스스로 먹칠하는 거 같다"라고 폭식투쟁에 반대했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자식을 잃은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며 사회적 약자가 돼버린 유족들을 조롱하는 우익 청년들이 당당하게 거리로 나서는 것이 '2014년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이번 사건은 한국의 청년들이 얼마나 보수화, 수구화되었느냐만을 보여주진 않는다. 여전히 세월호 특별법에 찬성하는 대학생들도 많고, 유가족들의 투쟁에 동조하는 단식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 사건은 시대의 감수성을 절실히 느껴야할 청년들이 반인륜적 행위에 얼마나 무감각해졌는지 잘 보여준다.

예로부터 단식은 가진 건 자기 몸밖에 없는 약자들이 벌이는 행동이었다. 자신의 몸으로 초인적인 의지를 표명하는 투쟁 앞에서 '폭식'으로 조롱하거나 '네크로필리아(시체에 대하여 성욕을 느끼는 성도착증의 한 증상)'라며 패륜적 언행을 일삼는 증오범죄자들이 당당해지는 현실이 2014년의 한국이다. 문제는 저런 폭력들이 한동안 끊이지 않을 거란 점이다. 일베와 수컷닷컴의 회원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승리감과 성취감을 내보이고 있고, 여당의 한 의원은 여전히 "일베 등 20대 우파들은 아직 희망이 있다"라며 치켜세운다.

승리와 강함을 중시하는 시대정신 안에서 약자를 혐오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시대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개인의 감수성이 온전히 지켜질 리 만무하고 연대의 가능성 역시 너무나 미약하다.

우리는 근 몇 년 간 20대들이 '일베'라는 광기 어린 '그들만의 리그'에서 정치적으로 사회화되는 것을 목격해왔다. 그곳에서 그들은 지역과 여성을 비하하고 약자에 대한 증오와 우월감을 당당히 내보이게 배양되었다. 그렇게 사회화된 청년들이 이제는 '애국보수'라 참칭하며 거리로 나오는 것을 우린 목도하고 있다. 이 지옥과 같은 현실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더 큰 연대가 일베에 대한 최선의 방어다

일베 회원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도시락 나들이' 등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일베 회원들과 시민들이 피자와 치킨을 먹고 있다.
 일베 회원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도시락 나들이' 등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일베 회원들과 시민들이 피자와 치킨을 먹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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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와 관련된 작은 경험이 하나 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내가 들락거리던 게임 커뮤니티에서 <경향신문>에 광고를 게재한다고 했고, '거리에 나서는 건 무섭지만 저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적은 금액이었지만, 모금에 참여했다. 그때 그 연대는 내 의식에 큰 지표가 되었다.

광화문에서 초코바를 뿌리며 우월감을 느끼는 일베들을 직접 막을 수는 없다. 설령 막는다고 하더라도, (슬프게도)그들 역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기에 제2의 일베, 제3의 일베는 나타날 것이다. 여전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약자를 구타하는 누군가에 분노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대를 파괴하고자 하는 누군가를 막을 때의 최선은 그들을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연대를 과시하는 것이다. 유가족들에게 그들을 조롱하는 누군가가 전부가 아니라 당신들에게 손 내밀고자 하는 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연대이자, 일베에 대한 최선의 방어일 것이다.


태그:#일베, #광화문, #세월호, #초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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