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가계부채가 1000조 원에 이르지만 정부는 그저 부동산 활성화에만 혈안이 된 모습입니다. "빚 내서 집 사라"는 정부의 대표 정책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를 완화시킨 데 이어 2주택자 전세 소득 과세를 철회하고 재건축완화 정책도 연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례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파리의 주택 전경
 파리의 주택 전경
ⓒ 한경미

관련사진보기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몇 달 전인 1918년 3월 9일, 프랑스 정부는 임대료를 무한정 고정하기로 했다. 이는 전쟁 막바지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고 있는 프랑스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조치로, 전쟁 초기인 1914년 8월 1일 전에 입주한 모든 임차인들에게 해당되는데 이는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을 말한다.

국민을 위한 정부의 이 정책은 30년 동안 지속되지만, 결과적으로 부동산 위기를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낮은 임대료로 인해 새로운 건물은 세워지지 않았고 기존 건물에 대한 재정비도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건물들은 점점 낙후돼 갔다.

결국 30년 후인 1948년 9월 1일에 이르러서야 자유 임대료가 가능하게 되는데 기존의 임대인들은 여기서 제외된다. 이때부터 새로운 건축물들이 여기저기서 버섯처럼 솟아난다. 이는 당시 시골 사람들의 대거 도시 진출과 전쟁 후의 베이비붐으로 늘어난 인구,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다수의 해외 이주자들의 프랑스 진입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65년까지 프랑스 부동산 구매비와 임대료가 갑자기 상승하게 되는데, 이는 1973년까지 이어져 프랑스에서 주거를 구하는 것이 직업을 구하는 것보다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렇게 주거에 관한 경제적 부담이 증가하게 되자 정부는 주거 보조비를 지급하게 된다.

임차인 편익 먼저 생각한 프랑스의 Alur법

2012년 7월까지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올 경우, 주인이 원하는 대로 방세를 정할 수 있었다. 집을 얻은 세입자는 초기에 두 달 치 방값 정도를 보증금으로 내야 한다. 공인중개사무소를 통해 구했을 경우에도 중개수수료를 집주인과 반반씩 나눠 내야 한다. 보통 임대 계약은 3년마다 한 번씩 하는데(가구 등 집기가 갖춰진 경우에는 1년. 프랑스에선 가구가 구비돼 있는 집과 비어 있는 집으로 나눠 임대를 한다), 1년에 한 번씩 방세를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집주인 마음대로 인상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 전 년도의 인플레이션 율에 맞춰야 한다.

하지만 2014년 1월 국회를 통과한 Alur(Acces au logement et un urbanisme renove, 주거 접근 가능성과 개량된 도시계획)법은 임차인들의 눈과 귀를 반짝 뜨이게 했다. 올랑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던 이 정책은 임차인의 편익을 봐주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우선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계약 초기에 내던 보증금을 내렸다. 임차인들은 당초 두 달 치 방세를 보증금으로 냈는데, 이것을 한 달 치로 줄였다. 또 공인중개사무소에 의해 자유롭게 결정되던 중개수수료도 한 달 치 방세로 제한했을 뿐만 아니라, 임대인과 임차인이 반반씩 부담하던 것을 임대인 혼자 부담하게끔 변경했다.

그러나 이 법의 중요성은 무엇보다 임대료 상한선에 있다. 이 법으로 인해 일부 지역에 임대료 상한선이 정해지게 됐는데 해당 지역은 파리, 리용, 툴루즈, 니스 등 28개의 대도시로 지난 몇 년 사이에 임대료 상승률이 심하고 임대물이 드문 지역이다.

 스튜디오(한국의 원룸 같은 방) 임대 광고
 스튜디오(한국의 원룸 같은 방) 임대 광고
ⓒ 한경미

관련사진보기


임대료 한도를 정하는 데 이용되는 게 '중간 임대료'다. 중간 임대료는 같은 지역*면적에 해당하는 임대료를 가격에 따라 둘로 나눈 뒤 가장 낮은 임대료의 가장 높은 금액이나 가장 비싼 임대료의 가장 낮은 금액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리 6구의 20㎡에 달하는 원룸 방세가 각각 500, 550, 600, 700유로라고 치면, 이 4개의 방세를 가격 수준에 따라 둘로 나눈다. 결국 500, 550유로와 600, 700유로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가장 낮은 임대료의 가장 높은 금액인 550유로, 가장 비싼 임대료의 가장 낮은 금액인 600유로 둘 중에서 하나로 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 각 지역에선 다음 세 가지를 토대로 임대료 기준을 정할 수 있다. 첫째가 중간 임대료, 둘째가 인상된 중간 임대료(중간 임대료보다 20% 이상 인상해 적용할 수 없고 임대계약서에 전 임차인이 낸 임대료의 금액을 명시해야 된다), 셋째가 인하된 중간 임대료이다. 임대 계약서엔 제비용을 제외한 임대료를 적는데 인상된 중간 임대료를 넘지 않아야 한다. 3년이 지나서 임대 기간을 연장할 경우에도 중간 임대료가 이용되는데 만약 임대료가 이 금액을 넘어서면 임차인이 계약 갱신 6개월 전에 임대료를 조정을 요청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중간 임대료가 600유로인데 자신이 내는 임대료가 620유로라면, 주인에게 초과하는 20유로를 낮춰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임대료 인상 고발 위해 만든 '어두운 목요일 그룹'

파리 지역 임대료 관상소(L'Observatoire des loyers de l'agglomeration parisienne, Olap)에 의하면, 파리 임차인 중 25%는 중간임대료보다 인상된 임대료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임차인 4명 중 한 명은 새로 이사할 경우 초과분에 한해 임대료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외에도 프랑스에는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겨울법(loi d'hiver)이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임대인은 임차인이 몇 달 치 임대료를 내지 못해도 겨울인 매년 11월 1일부터 그 다음해 3월 16일까지는 추방하지 못한다. 임차인들이 추운 겨울에 길거리에서 얼어 죽지 않도록 하는 조치인데 2014년에는 그 기간이 3월 30일로 연장되었다. 적어도 이 기간 동안에는 주인의 독촉 없이 따듯한 실내에서 몸이라도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법이다.

이 외에 프랑스에는 '어두운 목요일 그룹(Collectif Jeudi noir/Group black Thursday)'이라는 게 있다. 2006년 10월에 형성된 이 그룹은 임대료 인상을 고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액의 임대료를 지급해야 하는 아파트 방문날이면, 15명~20명의 멤버들은 변장을 하고 한 손에 스파클링 와인을 든 뒤 펑크 음악과 함께 요란하게 도착해서 집 방문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들은 유머러스한 자신들의 행동이 언론에 소개되고 많은 호응을 얻자 다시 오랫동안 비어 있는 아파트들을 점령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은 오랫동안 비워둔 건물은 소유권이 행사되고 있지 않은 것이니, 주택난을 겪고 있는 자들을 위해 주거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2008년 2월, 비싼 임대료로 인해 일부 젊은 여성들이 매춘을 하는 사례까지 발생하자 이를 고발하기 위해 매춘부, 포주, 성전환자 등의 복장을 하고 주택부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2009년 2월엔 프랑스 언론 <메디아파르>와 공동으로 파리에 비어 있는 건물 리스트 50여개를 공개했는데, 무려 20만㎡(약 10억 유로)에 해당하는 면적이었다. 또 2010년 12월 27일엔 2006년부터 비어있는 엘리제 궁 근처의 대형 보험회사인 AXA건물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결국 2011년 2월 15일 추방 명령이 떨어져 3일 후에 추방됐다.

단 몇 개월 만에 태도 바꾼 프랑스 정부

 비어있는 스튜디오(원룸) 내부
 비어있는 스튜디오(원룸) 내부
ⓒ 한경미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임차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주거 접근 가능성과 개량된 도시계획법(Alur)'은 제대로 시행도 되기 전에 정치적인 이유로 위기에 놓이게 됐다. 현재 심한 위기를 겪고 있는 프랑스 정부와 프랑스 대통령 사상 최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올랑드 대통령은 최근 발스 총리 2기 내각을 새로 구성했다. 이후 주거 신정책 등을 발표했는데, 여기엔 임대료 한도를 정한 Alur 법을 적어도 2017년까지 적용하지 않을 것과 실험용으로 파리 시에 한해서만 적용한다는 것 등이 담겨 있다.

또한 주거를 임대할 때 필요한 보증금 (보통 두 달치 임대료에 해당)을 면제시키는 임대료 보편 보증(la garantie universelle des loyers, GUL) 제도도 해체하고 단지 "젊은 샐러리 맨(젊다는 나이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과 "환경이 아주 좋지 않은 자"들에게만 해당되도록 했다.

이는 사회당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날로 떨어지자, 지지율을 회복하려고 점점 더 우파 정책(신자유주의에 가까운)으로 기울고 있는 발스 내각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많은 프랑스 국민들이 자신들이 지지했던 사회당의 의미가 없어졌다며 현 정부에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에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정부는 우파 정책을 꺼내든 것이다.

이는 프랑스 정부가 국민들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미 널리 알려졌듯, 신자유주의는 가진 자를 옹호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에게 행해진 보호정책의 일부를 취소하겠다는 현 정부로 인해 결국 프랑스의 주거난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