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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현지시각) 스페인 최대 은행 산탄데르에서는 새 회장 아나 파트리시아 보틴(53·이하 아나 보틴)이 참석한 가운데 첫 주주총회가 열렸다. 아나 보틴은 지난 9일, 79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타계한 전 회장 에밀리요 보틴의 장녀이자, 1989년 이후부터 산탄데르 은행의 주요 자리에서 일해 왔다. 아나 보틴은 에밀리요 보틴 회장이 타계한 바로 다음날인 10일 열린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새로운 회장에 임명됐다.

이날 주주 총회에서 "오늘 첫 발언은 전 회장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하고 싶다"고 한 그녀는 타계한 아버지이자 전 회장인 보틴 회장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가진 기업가였다"라며 "위기에 신중히 대처하고, 고객 중심적인 경영과 탁월한 미래 예측력을 통한 기회 활용을 통해 산탄데르 은행을 유로존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라고 말했다.

위대한 혁신 경영가 vs 국가 경제위기의 원흉

에밀리요 보틴 회장의 타계 소식을 앞 다퉈 보도한 스페인 일간지들의 모습
 에밀리요 보틴 회장의 타계 소식을 앞 다퉈 보도한 스페인 일간지들의 모습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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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평가와 같이 에밀리요 보틴 회장의 타계 이후, 대다수 스페인 주요 언론(엘 문도, 엘 파이스, ABC)들은 에밀리요 보틴 전 회장을 "위대한 혁신가" "대담하고 국제적인 스페인 인물" "금융계의 예술가" 등이라고 표현하며 그의 생전 업적을 치하했다.

언론들은 에밀리요 보틴 회장이 재임 기간동안 과감한 인수합병 등을 시도해 산탄데르은행을 무려 72배나 성장시킨 점과 스페인 경제 위기 때도 피해는커녕 사업 확장에 성공해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은행으로 자리 잡게 만든 점, 남미*북미 등으로도 사업 확장을 시도했다는 점 등 은행가로서 28년 동안 그가 보여준 성공적 행보에 주목하며 그의 갑작스런 타계를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평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디아리오 푸블리코>는 지난 10일 보틴 회장의 타계 이후 불과 이틀 만에 구글에서 복사된 그에 대한 기사가 52만3000건이 넘었다는 통계와 함께 미화된 각종 수식어를 사용해 뽑은 기사 제목들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에밀리요 보틴 회장은 산탄데르 은행을 빠르게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법적, 비도덕적 문제가 발생해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법적 제재를 받지 않았고, 이에 대해 일각에선 '정권과의 결탁', '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지난 10일 포데모스 정당 대표 파블로 이글레시아는 대변인을 통해 "역사적으로 상징성 있는 인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가 나라를 위해, 시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늘날의 스페인 금융위기와 혼란, 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에서 보틴 회장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부동산과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피해자가 늘어나면서 스페인 경제위기의 원흉으로 '나쁜은행'들이 지목을 받고 있는데, 산탄데르 은행이 최악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최근까지 에밀리요 보틴 회장을 국민사기죄로 처벌해야 한다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가족 세습 4대로... 산탄데르, 괜찮을까

갑작스런 에밀리요 보틴 회장의 타계 이후 새 산탄데르 회장에 장녀인 아나 보틴이 임명되면서 산탄데르 은행의 가족 세습은 4대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에밀리요 보틴 회장을 향하던 양분된 목소리는 아나 보틴 회장에게로 향하고 있다.

사회당 대변인은 그녀의 회장 승계에 대해, "두말할 것도 없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평가했고, 그녀의 그동안의 실적들을 들어 "단순히 보틴의 딸이기 때문이 아닌 준비된 은행장"임을 강조했다. 또 세계 20대 은행 중 유일한 여성 최고 경영자인 점 또한 상당히 의미 있게 평가했다.

하지만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무엇보다 4대로 이어지는 보틴 가문의 세습에 대한 비판이 압도적이다. 좌파연합정당은 "결국은 가문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연임"이라며 "(아나 보틴이)아버지 보틴처럼 국가의 정책과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경제를 좌지우지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또 한 언론에서는 에밀리요 보틴 전 회장의 손자손녀들의 현재 행보들을 다루며 은근히 5대 세습의 주인공을 점치기도 했다.

아나 보틴 회장은 첫 주주 총회에서 "쉬운 일이 아닐 것이지만 성공의 도정을 유지하기 위해 나의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산탄데르 은행의 기업 문화를 더욱 확고히 하겠다며 "산탄데르 은행의 기업 문화는 은행 사업에 집중하고, 항상 고객 가까이에 있으며, 경제와 사회적 발전을 위한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타계한 에밀리요 보틴 회장에 대한 평가는 각각 다르지만, 그런 가운데 새 회장인 아나 보틴의 행보가 시작됐다. 산탄데르가 스페인의 경제와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은행이니만큼 앞으로 그녀가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주목된다.


태그:#스페인, #산탄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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