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 포스터

제보자 포스터 ⓒ 영화사 수박


2005년 11월 22일. MBC <PD수첩>의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편이 방송되기 전까지 황우석, 그는 신이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만큼은. 그러나 방송 보도 이후 이어지는 의혹과 조사에 연구 결과는 거짓으로 밝혀졌고,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그 사건은 1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씁쓸한 촌극으로, 혹은 누군가에겐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신화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제보자>는 바로 이 황우석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물론 제작진과 배우들은 민감한 소재이기는 하나 영화는 영화로 봐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실화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아쉬운 점은 황우석이라는 인물이 아닌 영화 <제보자> 자체를 관객이 즐기기 바랐던 것에 비해 장르 영화로서의 영화적 재미는 떨어진다는 것이다. 영화 초입에는 '본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으나 영화적으로 재구성된 픽션임을 밝힙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그렇다면 실제 사건이 지니고 있는 화제성에 기대지 말고 영화적 완성도로 승부를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아쉬운 점은 유연석이 맡은 제보자 역할이다. 의문의 전화가 걸려오는 게 아니라 윤민철PD가 먼저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제보자 캐릭터가 몹시도 아쉽다.

아쉬운 점은 유연석이 맡은 제보자 역할이다. 의문의 전화가 걸려오는 게 아니라 윤민철PD가 먼저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제보자 캐릭터가 몹시도 아쉽다. ⓒ 영화사 수박


임순례 감독이 밝혔다시피 영화는 '제보자'에 초점을 맞춘다. 이장환 박사(이경영 분)의 내부비리를 고발하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PD추적'팀의 윤민철 PD(박해일 분)가 사건을 추적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이장환 박사의 연구 실적이 모두 조작되었다는 충격적인 제보 때문에 방송국의 제작진들은 고심하고 결국 윤민철과 김이슬(송하윤 분)은 진실에 한발한발 다가가게 된다. 남편의 행태에 회의적이던 김미현 연구원(류현경 분)도 결국 엄청난 진실 앞에 용기를 내게 되는데...

의문의 제보자와 드러나는 의혹들. 그리고 그것을 추적하는 양심있는 언론인과 그들을 방해하는 거대세력의 음모. 그리고 추적과 배신, 긴장. 아마도 이런 류의 영화를 접하는 관객들이 대부분 떠올리는 장면일 것이다. 사실 이 영화 <제보자>는 그런 면에서 장르 영화의 공식에 충실하지는 못했다. 물론 부드러운 화법으로 언제나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온 임순례 감독이기에 일반적인 상업영화와는 다른 색깔을 보여주리라 기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 스스로가 밝혔듯이 국민적 관심을 끄는 충격적 진실이나 화제성보다는 영화 자체의 극적 완성도와 재미에 충실하려 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그간 고수해왔던 방식이 아닌 조금 더 조밀한 연출을 택한 임순례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전의 다른 작품들보다 카메라 무빙을 많이 사용하고 커트나 앵글을 다양화했다"라고 밝혔다.

좀 더 젊고 빠른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연출의도를 드러낸 임 감독은 확실히 이전 그의 작품과는 달리 장면 전환이 빠르고 핸드헬드나 트레킹 숏을 많이 사용하였다. 음악 역시 <더 테러 라이브>의 이준오 감독과 작업하여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새롭게 시도했다. 이 모든 게 영화적 긴장감을 높이고자 하는 감독의 연출 의도였다. 그리고 그런 감독의 고심에 배우들의 연기와 소재 자체가 주는 흥미에 더해져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제보자>는 어느 정도는 스릴러 영화로서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미덕도 가지고 있다.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인의 투철한 사명감과 의지가 주는 감동도 있고, 중간중간 웃을 수 있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황우석 박사와 줄기세포 사건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영화는 반쪽짜리 영화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정도로 이 영화의 상당 부분이 황우석 박사와 <PD수첩> 사건에 기대고 있다. 애초 대한민국 관객들이라면 황우석 사건을 모를 리 없다는 전제에서 영화가 만들어진 듯한 인상이다. 미국 영화처럼 실명을 드러내고 실제 사건을 재연해 낸 것이 아니라 실제 사건에서 소재만 얻어서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면 실제 사건과 상관없이 영화만으로 충분히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황우석과 <PD수첩>을 떼어 놓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영화다.

 박해일과 유연석은 나쁘지 않은 호흡을 보인다. 유연석은 "박해일 선배의 오랜 팬이다. 출연을 결정하고 현장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눈을 마주치고 연기했을 때 짜릿하고 행복했다"라고 밝혔다.

박해일과 유연석은 나쁘지 않은 호흡을 보인다. 유연석은 "박해일 선배의 오랜 팬이다. 출연을 결정하고 현장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눈을 마주치고 연기했을 때 짜릿하고 행복했다"라고 밝혔다. ⓒ 영화사 수박


박해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14년 만에 임순례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는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 듯이 캐릭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소화했다. 어떻게 보면 조금 뻔하긴 하지만 그것이 또 박해일의 매력이 아닐까?

유연석은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 캐릭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와는 조금 다른 역을 원해서 영화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그가 연기한 '심민호'라는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과 그 역할은 굳이 유연석이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는 점이다. 영화의 타이틀 롤인 제보자 역을 맡았지만 실제로 극중 뚜렷한 기능을 한다든가 관객들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배우인 이경영은 이장환 박사 역을 맡아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 모습과 비겁하고 약한 인간적인 모습을 잘 소화해 내었다. 이장환 박사 역에 이경영 외에 다른 대안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웬만한 사람이면 시나리오만 보고도 그를 떠올렸을 것이다.

시사교양국 팀장 이성호 역의 박원상은 1996년 <세친구> 때부터 <와이키키 브라더스>, <날아라 펭귄> 등 임순례 감독과 꾸준히 함께 해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윤민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극에 다양성을 더해주는 역할을 연기했다. 김이슬 역의 송하윤은 당찬 조연출 역을 맡아 자신만의 매력을 뽐냈다. 하지만 지나치게 상투적인 역할로 아쉬움을 남겼다. 심민호의 아내 역을 맡은 류현경이나 국장 역의 권해효도 왠지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국익과 진실 중에 무엇이 우선인가? 촛불을 든 저들과 마이크를 쥔 저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인가, 자기 이익인가? 이 영화로 인해 이제는 잊혀진 그 논란이 다시 불붙을지도 모르겠다.

국익과 진실 중에 무엇이 우선인가? 촛불을 든 저들과 마이크를 쥔 저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인가, 자기 이익인가? 이 영화로 인해 이제는 잊혀진 그 논란이 다시 불붙을지도 모르겠다. ⓒ 영화사 수박


<제보자>는 전국민이 다 아는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큼 많은 기대와 관심을 받은 채 뚜껑을 열 준비중이다. 그러나 황우석이 아니라 이장환이고, <PD수첩>이 아니라 <PD추적>이라면 영화는 그 자체만으로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을 뒤흔든 줄기세포의 스캔들, 영화 <제보자>는 10월 2일 관객의 검증을 기다리고 있다.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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