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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현 정부가 여전히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시민들의 요청에 답할 때까지 진상규명 노력을 이어가겠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줄곧 2년여 동안 시민사회의 성난 규탄과 드센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꿈쩍하지 않는 게, 흡사 데자뷔 현상(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는 것 같이 느끼는 현상)에 갇힌 듯한 묘한 느낌이다. 거대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이 거세게 일었을 때도, 국정원의 서울시 간첩사건 증거 조작 논란이 비등할 때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뜨겁게 일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18대 대선 이후 불거지기 시작한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대한 규탄 및 진상규명 요구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진 게 고작 1년 전 일이다. 대선 개입사건 해결을 위해 특검 요구도 잇따랐다. 하지만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입을 굳게 다물며 여론을 호도하는 데만 열중했다.

박근혜 정부 '침묵-겁박', 시민사회 요구 '묵살 매뉴얼?'

박근혜 정부가 불법 선거 개입에 대해 여전히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자, "정부가 시민들의 요청에 답할 때까지 진상규명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분노의 함성이 방방곡곡에 울려 펴졌다. 여기에 더해 올 초에는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와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검 실시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침묵이 대응 매뉴얼처럼 돼버렸다.

이런 와중에 국가적 참사인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탑승객 476명 가운데 300여 명이 넘는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생 324명이 타고 있던 터라,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직후 초동 대처부터 허둥댔던 정부의 무능과 혼선, 공직자의 무사안일 행태 등 허술한 재난대응시스템이 여실히 노출되면서 정부 책임론에 대한 비난과 질타가 쏟아졌다.

이때도 역시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과 함께 "정부가 시민들의 요청에 답할 때까지 진상규명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시민사회 목소리가 나왔고, 이는 지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렇듯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시민사회는 줄기차게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되, 메아리는커녕 고요한 침묵, 더 나아가 겁박으로 일관하는 권력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대형 이슈 잠재워주는 <조선> <동아>

정홍원 국무총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총체적 부실대응에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를 밝혔지만,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해 다시 자리에 앉아 '국가개조'와 '적폐일소'를 선봉에서 지휘하고 있다. 나라 밖에서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책임회피라는 비난 여론만이 높아졌을 뿐이다. 참으로 얄미우리만치 국민의 눈높이와 목소리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 권력을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이 선택했다. 불과 2년 전 일이다. 앞으로 남은 3년이 참으로 길게 느껴지는 이유다.

더욱 얄미운 것은 국민의 분노와 불안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권력의 편에서 이러한 대형 이슈를 수면 아래로 잠재우는데 앞장서고 있는 수구 보수언론들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그들의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단연 선두에서 종횡무진 여론을 호도하며 훈계하고 때로는 나무라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특히 국정권 대선개입에 날선 비수를 들이댔던 '채동욱 검찰'을 채 5개월여 만에 하차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조선일보>의 국민정서와 어긋난 의제설정은 갈수록 가관이다, 권력에 기대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정의옹호'와 '불편부당'을 위해 신문을 만들겠다던 신문사 이념은 온데간데없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요구하며 단식 중인 유가족들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하는 국민들을 향해 <조선>은 '진저리', '극도의 피로감' 등의 표현을 써가며 권력을 비호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조선>은 사설 <'세월호'에 진저리 치고, 국회는 해산하라는 추석 민심>에서 마치 세월호 참사가 먼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인 양, "더 이상 언급하는 것 자체가 싫다"는 투로 훈계하며 호통을 쳤다.

<조선>, 세월호 참사·국정원 대선대입 판결 '호통', 왜?

사설은 "세월호특별법 갈등으로 민생 법안이 처리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이제 피로감 수준에서 불만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며 한 여당의원의 발언을 인용했다. 사설은 이어 "사람들이 '이제 그만'이라고 한다. 표현 수위가 높아서 놀랐다. 다들 세월호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면서 "사람들이 세월호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고 하는 둥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의 표현을 사설에 담았다. 이러고도 과연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틀 후인 12일 사설을 보면 언론이라면 의당 수행해야 할 상관조정의 기능까지 포기한 듯하다. 권력의 감시견이라기보다는 권력의 하수인, 또는 애완견이란 소릴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서울중앙지법이 11일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핵심 쟁점이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된 포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대부분 언론들이 법원의 아리송한 판결에 포문을 열었으나 <조선>은 거꾸로다. 반 국정원 세력을 향했다.    

<1년간 나라 흔든 '국정원 선거 개입' 결국 무죄>란 사설에서 "아직 2·3심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1심의 판단은 작년 한 해 동안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극심한 정쟁으로 몰고 갔던 이른바 '국정원 대선 개입'이란 것이 실은 실체도 없는 것이었다는 결론"이라고 판결을 반겼다.

이날 <동아>가 <원세훈 대선 개입' 헛발질 기소로 나라 뒤흔든 검찰>이란 사설로 역시 유일한 우군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각각 <'정치관여 했지만 대선개입 안 했다'는 법원 판결>, <선거 때 정치개입이 선거법 위반 아니라니>란 사설에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 논란은 막으려다 나온 '정치적 판결'"이라며 "참으로 이상한 판결"이라고 적었다. <조선>, <동아>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후안무치 궤변 언제까지...

심지어 <조선>과 <동아>와 다르게 <중앙일보>까지 이날 사설에서 반기를 들었다. <국정원 정치 개입 유죄, 뼈를 깎는 개혁 계기 돼야>란 사설에서 <중앙>은 이들 두 보수신문과는 다른 상관조정기능을 발휘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사건에 이어 최근 대공 사건마다 법원에서 판판이 무죄로 깨지고 있다"는 사설은 "정치적 중립성은 물론 실력도 의심받는 한심한 상황으로 추락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김동진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글에서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를 신랄하게 꼬집자 <조선>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법정 소란이나 다를 게 없는 어느 판사의 막말>이란 사설에서 신랄하게 두들겼다. "부장판사라는 사람이 제 정치적 취향에 맞지 않는 판결이 나왔다고 동료 재판장을 향해 막말을 퍼붓는 것은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는 행위나 다를 게 없다"고 우겼다.

언론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문제제기에 귀 기울이며 문제점을 파헤쳐야 마땅한데도 '막말'로 치부해 버린 보도태도를 볼 때마다 언론이기를 포기한 듯한 냄새가 진동한다. 이젠 정말 후안무치한 궤변이 지긋지긋하다. 


태그:#대선개입, #국정원, #세월호 참사, #보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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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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