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14일은 한국농구에 잊지 못할 날이다. 이제는 추억의 이름이 된 이충희, 박수교 등이 활약하던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이후 20년 만에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문경은, 이상민, 전희철, 서장훈, 현주엽 등 농구대잔치 세대와 프로농구가 낳은 천재가드 김승현, 그리고 역대급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 받던 대학생 김주성과 방성윤이 가세한 한국농구대표팀은 야오밍, 왕즈즈 등이 포진된 최정예 중국 대표팀을 연장접전 끝에 102-100으로 제압하고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제 어느덧 12년의 세월이 흘렀고 당시 대학생이던 김주성은 대표팀의 최고참이 됐고 당시 8살에 불과하던 이종현은 한국농구의 희망이 됐다. 한국농구는 12녀 전보다 라이벌이 더 늘어난 2014년, 안방에서 부산의 기적을 재현할 수 있을까.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몰락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한국농구는 아시아정상으로 군림할 것이라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우승의 기적에서 깨어난 이후 한국농구는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국농구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한 번도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고 2006 도하 아시안게임 5위, 2009년 아시아선수권대회 7위에 그치며 아시아 농구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작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농구월드컵 출전권을 따내긴 했지만 이는 중국이 8강에서 탈락하는 행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4강에서 필리핀에게 패한 한국의 3-4위전 상대는 대만이었다).

16년 만에 참가했던 농구월드컵에서도 결과는 처참했다. 한국은 내심 상대적으로 전력이 떨어지는 앙골라와 멕시코를 잡고 16강에 올라 최강 미국과 맞붙는 청사진을 그렸지만 현실은 5전 전패 예선탈락. 전 경기 10점 차 이상의 완패였다.

한국은 16년 만에 출전하는 농구월드컵을 앞두고 뉴질랜드와 5차례 평가전을 가졌지만 정작 개최지인 스페인에서는 단 한 차례의 연습 경기도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실전에서 경기력 저하로 직결되고 말았다.

물론 농구월드컵에서 얻은 성과도 있었다. 특히 김주성의 뒤를 이을 김종규와 이종현이 세계적인 빅맨들을 상대로 맞서 싸운 경험은 향후 한국농구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이종현과 김종규는 블록슛 부문에서 각각 1위와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중국 약해졌지만 이란-필리핀 등 적수 많아져

과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상대는 오로지 중국뿐이었다. '만리장성을 넘으면 금메달'이라는 구호가 당연했다. 하지만 세대교체를 단행한 중국의 전력은 이제 야오밍이 뛰던 시절만큼 막강하진 않다(물론 한국이 승리를 낙관할 만큼 만만한 전력이란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금메달 전선을 막고 있는 가장 높은 장벽은 아시아 최고의 센터 하메드 하디디가 버틴 이란이다. 218cm 120kg의 압도적인 체격을 자랑하는 하디디는 지난 농구월드컵에서도 득점 6위(18.8점), 리바운드 2위(11.4개)에 오르며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하디디를 대인마크할 수 있는 센터를 보유하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철저한 도움수비와 하디디에게 연결되는 패스를 차단하는 밀착마크로 하디디를 고립시켜야 한다. 작년 존스컵처럼 하디디에게 30득점 이상을 허용한다면 결코 이란의 벽을 넘을 수 없다.

농구가 국기(國技)인 필리핀 역시 한국에게는 쉽지 않은 상대다. 농구월드컵에서 득점 2위(21.2점), 리바운드 1위(13.8개)를 차지했던 'NBA리거' 안드레 블라체의 출전은 불발됐지만 가드진의 개인기와 외곽슛은 한국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블라체의 불참이 결정되자 대회 보이콧까지 고려했던 필리핀은 블라체의 자리를 또 다른 귀화선수 마커스 다우잇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블라체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211cm의 신장을 가진 장신 센터 다우잇 역시 한국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국은 농구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귀화선수 영입을 추진하려다 실패한 바 있다. 게다가 대표선수들의 국제대회 경험도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12년 전에도 한국은 경험이 부족한 김승현(9어시스트)과 김주성(21점)의 대활약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이제 무대는 부산에서 인천으로 바뀌었다. 잇따른 국제대회의 부진으로 자존심을 구긴 한국농구가 안방에서 치러지는 아시안게임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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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시안게임 남자농구 유재학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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