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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나바 마이(재한일본인 미술비평가), 지엔이민(성공대 대만문학계 교수), 홍성담 작가, 종쇼우메이(성공대 대만문학계 학부장)
 왼쪽부터 이나바 마이(재한일본인 미술비평가), 지엔이민(성공대 대만문학계 교수), 홍성담 작가, 종쇼우메이(성공대 대만문학계 학부장)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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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대만 타이난시 국립 성공대학에서 '홍성담 그림전'이 펼쳐졌다.

이번 전시에는 1980년 오월을 담은 판화 <새벽> 연작 50여 점이 전시됐고, 걸개 그림<세월오월>이 문예당 건물에 걸렸다. <세월오월>은 광주 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서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풍자했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고국이 아닌 이국만리 대만 땅에서 먼저 펼쳐졌다.

<세월오월>, 한국 아닌 대만에서 최초 전시

이번 <세월오월> 대만 전시는 미국, 일본, 독일 전시에 앞서 세계 최초로 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홍성담 작가를 초청한 타이난시 성공대학교 대만문학계 학부장 종쇼우메이교수는<세월오월> 전시 거부 사태에 대해 "대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이) 우리보다 민주화가 앞섰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노동운동과 전교조 활동에서 영감을 얻어 대만 민주화에 적용하기도 했다. 한국의 민주화가 역행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홍성담 작가를 초청한 이유에 대해선 "저항 예술이 무엇인지, 국가 폭력으로부터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며 "대학 당국도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은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의 서승 교수가 홍성담 작가의 작품을 분석한 '동아시아, 인간 중심의 문화 창조-홍성담의 미술세계' 기념 강연도 함께 열렸다. 강연이 시작되자 학생, 시민, 교수 등 150여 명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자리를 채워 <세월오월>과 홍성담 작가에 대한 높은 관심을 짐작케 했다.

강연을 앞둔 지난 17일, 서승 교수를 인터뷰했다. 홍성담 작가의 작품과 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후퇴 문제 또한 함께 짚어봤다. 아래는 서승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서승 "정치적 억압 교묘... 한국사회 권력구조 드러난 사건"

강연 전날 타이난 시 호텔 숙소에서 만난 서승 교수, 제일교포 3세로 1971년 서울대 유학 왔다가 국가보안법의 올가미에 걸려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당시 수사과정에서 입은 전신 화상으로 국가폭력의 잔혹함을 몸으로 증명하는 한국현대사의 초상으로 꼽힌다.
 강연 전날 타이난 시 호텔 숙소에서 만난 서승 교수, 제일교포 3세로 1971년 서울대 유학 왔다가 국가보안법의 올가미에 걸려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당시 수사과정에서 입은 전신 화상으로 국가폭력의 잔혹함을 몸으로 증명하는 한국현대사의 초상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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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인문학의 위기'를 진단해 오신 걸로 안다.
"현대 인문학의 위기는 이윤 추구를 앞세우는 경제적 가치와 질서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면서 나왔다.인간을 위해 만든 물질이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공동체에서 뿌리 뽑힌 인간은 수단화, 단편화, 상품화되고 만다. 이 무자비한 이윤추구 논리가 인간과 사회의 피폐와 붕괴를 가져왔으며, 노동자, 대중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 홍성담 작가를 '인문학적 인간'으로 평가한 바 있는데, 이유는?
"그는 전남의 인구 2000명 남짓 되는 조그만 섬, 하외도에서 태어났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과 가족같은 마을 사람들의 품에 안겨 하늘과 바람과 별, 물고기 등을 벗삼아 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인간의 본질, 교감 능력, 거짓과 가짜를 알아내는 직감 등 그의 미적 감수성은 그런 배경 속에서 배양됐다. 홍성담은 인문학적 인간이다. 가혹한 경쟁에서 이기려 하지도 않고, 이길 수 없는 인간이다."

- 홍성담의 작품 세계를 어떻게 보나.
"작가 홍성담을 미의 세계에서만 머물지 않게 한 것은 바로 1980년 5월 군부가 300명에 이르는 광주 시민을 학살한 광주 민중항쟁이었다. 포악한 국가폭력에서 살아남은 그는 그 진실을 고발하기 위해 도주 생활하며 목숨을 걸고 판화를 새겨 거리에 살포하고, 다시 도주하는 미술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그 와중 권력과 불의에 항거하는 '저항의 미술'이 형성됐고, 광주를 비롯한 전국의 수백 명이 조직된 미술운동이 탄생했다. 시위대 앞을 장식하거나 집회단상을 장식하는 민중 투쟁의 기치로써 '걸개그림'이라는 독특한 회화 양식도 창조됐다."

"동아시아, 인간중심의 문화창조- 홍성담의 미술세계"를 주제로 서승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동아시아, 인간중심의 문화창조- 홍성담의 미술세계"를 주제로 서승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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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오월>은 어떤 작품인가?
"정치가, 군인, 관료, 자본가들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지옥도 속에서 스스로 거짓과 범죄가 없는 공동체를 이뤄낸 광주 시민군과 주먹밥 아주머니가 가라앉은 '세월호'를 들어 올려 학생들을 희망의 길로 구해내고 있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그림이다.

그림 한구석에 아버지인 독재자 박정희와 정보부 검사 출신의 김기춘 비서실장이 조종하는 허수아비로 박근혜 대통령이 그려져 있다. 그 이유로 광주시와 비엔날레 본부는 전시를 거부했다. 이번 사건은 평화 인권도시를 자처하는 광주가 중앙정부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이 작품을 거부한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어용 미술계에서도 '정치적 메시지가 예술로 승화될 수 없다'는 비판을 퍼부었다.

광주에서 벌어진 국군에 의한 시민 학살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던 자들이 이제 와서 <세월오월>과 홍성담 작가를 '정치 과잉'이라고 비판한다. 이것은 권력과 자본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기는 노예적 풍토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억압이 이처럼 교묘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표현의 자유, 비판과 풍자의 자유는 그들이 신봉하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이번 <세월오월> 전시 금지 사건은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와 이해 관계를 낱낱이 드러낸 것이다."

대만 예술가들도 "<세월오월> 전시 거부, 이해못해"

서승 교수의 강연에 이어 야마구치(일본인 소설가)작가와 진행한 토론이 진행됐다. 이어 홍성담 작가의 갤러리 토크도 이어졌다. 마지막에는 2014 광주비엔날레 <세월오월> 전시거부에 대한 대만 예술가들의 항의서 또한 채택돼 발표됐다. 전시는 오는 10월 3일까지 계속된다.

아래는 <세월오월> 전시 거부를 규탄한 대만 예술인(네이팅옌 대만대 예술학부 산하연구소장, 왕 모린 대만 극작가 겸 연극 연출가 등)의 항의서 전문이다.

2014 광주 비엔날레 <세월오월>전시 거부에 대한 대만 예술인 항의서

동아시아의 대표성을 지닌 <광주 비엔날레>는 올해 20주년을 맞아 <감로(甘露) : 1980년 이후>라는 행사를 열고 특별전<광주정신>을 계획했다.

이는 1980년 광주 사건의 아픈 역사를 뛰어 넘어 동아시아 민중들과 광주 시민들이 광주를 인권과 평화가 존중되는 새로운 지역으로 재건하자는 취지에서 진행 된 것이다. 그러나 현임 대통령의 형상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시를 거부 당했고, 개막식 당일에도 공개가 되지 않았다.

이는 이 행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동아시아의 예술가들에게도 큰 상처가 됐다. 전시가 거부된 작품 <세월오월>은 홍성담 작가의 지도와 광주 시민들의 의견, 또 여러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걸개 그림이다. 홍성담 작가는 광주사건을 주제로 한 판화 작품<광주 오월 연작>을 2013년 9월에 타이베이에서 전시한 바 있다.

홍성담 작가와 일본 등 동아시아의 예술가들은 이 전시 거부에 대항해 최근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또한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철회하기도 하였다. 대만은 냉전 시기 권위적 통치를 받은 나라로써 <세월오월>이 권위적 통치 수단으로 인해 전시거부를 당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대만 예술가들은 이 사실에 깊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고 홍성담 작가, 그리고 기타 동아시아의 예술가들과 나란히 서서<세월오월>의 <광주 비엔날레> 전시 진행을 함께 바라는 바다.

2014년 9월 18일 

(번역: 이하미/ 대만 성공대 졸업생)


태그:#세월오월, #홍성담, #성공대학, #타이난, #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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