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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온 나라가 교황의 몸짓 하나, 손짓 하나에 울고 웃었던 감동의 도가니였다. 프란치스코 신드롬까지 남겼던 방한. 이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까지 교황은 자신의 메시지를 모두 전했다.

교황의 목소리는 가는 곳마다 울렸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라는 사도 시대의 이상을 저버리지 말라"는 주교들을 향한 외침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은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 깨어 일어나라"는 청년들을 향한 촉구에서, "교회가 이 나라의 정치 사회적 문제에 적극 참여해 그 해결에 기꺼이 이바지하도록 하라"는 한국 교회에 대한 권고에서 우리는 광야의 소리를 들었다.

16일 오후 충북 음성군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수도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해 노래 선물을 하고 있다.
▲ 음성꽃동네 수도자들 만난 교황 16일 오후 충북 음성군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수도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해 노래 선물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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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흔적 지우려는 움직임들... 꽃동네가 대표적

이런 교황의 외침이 한국 교회에는 너무 버거웠을까? 교황이 떠난 지 한 달, 그가 남기고 간 메시지를 교회 쇄신에 접목하고자하는 가시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교황 방문의 흔적을 지우려는 안타까운 움직임들만 감지됐다. 염수정 추기경의 '세월호 유가족 양보' 발언을 비롯해, 꽃동네의 국고 보조금 진실을 밝히려던 작은예수회 박성구 신부에 대한 서울대교구의 직무 정지 조치가 그 예다. 단 한 달 만에 교황 방한의 감동은 그렇게 새벽 안개처럼 사라져 가고 있다.

꽃동네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드러났다. 꽃동네 방문 중 교황은 "자선 사업에서 나아가 인간 성장과 증진을 도모해 모든 사람이 저마다 품위 있게 일용할 양식을 얻고 자기 가정을 돌보는 기쁨을 누리게 하라"며 꽃동네가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했다.

그 후, 수용 시설을 기반으로 한 장애인 사업인 꽃동네에서 사회 통합과 자립을 꾀하는 새로운 장애인 복지 사업으로 방향을 바꾸는 노력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꽃동네의 첫 반응은 KBS2 <추적 60분>의 의혹 제기에 대한 장문의 반박문이었다. 지난 8월 30일 방송된 <추적 60분>은 '꽃동네에 묻습니다'라는 타이틀로 오웅진 신부의 꽃동네 관련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과 의혹에 꽃동네는 일말의 반성도 없이 구태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여느 정치인들처럼 이 문제를 이념 대결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됐다. 이러한 꽃동네의 모습에서 장애인 사랑을, 예수 정신을, 휴머니즘을 찾아볼 수 있을까. 

지금 꽃동네 문제의 본질은 비리가 아니라 그들이 '올바르게 장애인 복지사업을 하고 있느냐'다. 이는 장애인 복지 전문가인 나의 유일한 관심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꽃동네가 제출한 반박문의 장애인 복지 관련 내용인 7항에서 10항을 재반박해 보고자 한다.

꽃동네로 몰리는 예산... 탈시설 막는 원인 돼

7. 복지 예산이 꽃동네에 집중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국고보조금은 각 개별 사회 복지법에 근거하여 적법하게 지원받고 있고, 그 집행 내용은 투명하게 해당 관청에 보고하고 있으며, 지원 예산중 4분의3 정도가 인건비로 지출됩니다.

꽃동네의 예산은 집행 기관인 지자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부 자체 산하에서 '꽃동네'라고 딱 집어 예산이 내려온다. <추적 60분> 방송에 등장한 가평군 담당 공무원과 음성군 주민에 따르면 '군의 복지 예산의 큰 부분을 가져가는 꽃동네 때문에 군민들이 받아야 할 복지 혜택을 군비 부담만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 때문에 음성군과 가평군은 재정적 열악함을 감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고자 꽃동네는 새누리당 경대수 의원 주도하에 대규모 수용시설의 경우 전액 국비로 지원하자는 내용의 일명 '꽃동네 법'(보조금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이고 최근에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지원 자체를 거절당했다.

8. 꽃동네가 대형 복지시설이라서 나쁘다는 주장에 대하여... 참된 복지는 크기가 문제가 아니고,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또한 꽃동네를 소형화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막대한 예산(시설의 개수와 그에 따른 직원 수 등)을 국가가 지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복지 선진국처럼 고액의 세금을 납부해야 가능하며, 어느 곳이나 복지 시설이 들어서도 반대 민원이 없어야 하는 복지의식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선진국은 수십 년 전부터 수용 시설 중심의 장애인 복지정책에서 사회 통합과 자립 생활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책 전환 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산의 효율성을 제고한 선진국 복지의 실제 모습이다.

물론 사회 통합과 자립 생활의 의미는 경제적 차원으로 해석돼선 안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말하는 인권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묻는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를 조건으로 꽃동네 같은 수용소에 갇혀 한 평생 살아라"고 한다면 과연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 여기며 기꺼이 살 용의가 있는가?

꽃동네 수용 장애인에게 그런 삶을 은총이라 여기라는 자들의 무책임한 발언을 보면 그들이 대신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보기를 권하고 싶어진다.

9. 꽃동네의 탈시설화 주장에 대하여... 탈시설화, 재가 복지의 이론으로 꽃동네를 떠나 자활 생활을 하던 가족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였고, 화재 등의 사고에 대처하지 못해서 생명을 잃었습니다. 과연 재가 복지만이 전적으로 옳은 것인지 물어야 합니다.

왜 장애인들의 일부가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해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최근 고 송국현씨와 고 오지석씨처럼 화재 등의 사고에 대처하지 못해 생명을 잃는가? 장애인 환경의 열악함의 가장 큰 원인은 지역사회 장애인에게 돌아가야 할 장애인복지 예산이 꽃동네 같은 수용 시설 보조금으로 들어가 지역사회 장애인이 제대로 된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데 있다.

대규모 장애인 수용시설을 한국 장애인복지 선진화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국고 보조금을 비롯한 복지 예산을 블랙홀처럼 삼켜 지역 사회 자립 생활 인프라 구축을 못하게 막아 놓는 것이다. 이렇게 장애인 수용 시설에 편중된 예산으로 인해 지역사회 장애인들은 삶의 질을 박탈당하며 빈곤에 허덕이는 악순환에 빠져 버렸다.

지난 8월 고발당한 구미 솔 장애인 생활 시설의 경우 보조금 횡령 금액만 6억 원이 넘는데, 그렇게 눈 먼 돈으로 사라지는 장애인 복지 예산이 얼마인지 감안해보라. 왜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가 장애인 당사자는 빈곤한데 시설만 배 불리는 주객전도의 상태에 빠지게 됐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번에 꽃동네의 문제점을 비판하니, 돌아 오는 반응의 대부분은 '꽃동네의 후원금이 줄어들면 어쩌나'였다. 

수용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가려 해도 붙잡는 것은, 장애인 수에 따라 내려오는 보조금과 관련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하는 바다. 꽃동네는 7항에서 "국고 보조금은 (중략) 그 지원 예산 중 4분의3 정도가 인건비로 지출되고 나머지 일부가 운영비로 지출된다"고 했다.

이런 인건비와 시설 운영비가 지역 사회 장애인의 사회생활을 돕는 활동 보조인 인건비로 지불돼 중증 장애인에게도 24시간 활동 보조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다면 어떨까.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화재 등의 사고에 대처하지 못해 생명을 잃는'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활동 보조 서비스 예산은 1~2급 장애인 50만 명을 대상으로 약 4000억 원 정도다. 이를 꽃동네 예산과 비교해 보면 사회 통합에 비해 수용 시설이 저비용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 드러난다. 이번에 서울시에서 최중증장애인 100명을 24시간 서비스할 수 있는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을 산출해봤는데 겨우 32억 원뿐이었다. 다시 말해 예산만 적절하게 지원된다면 중증장애인들 역시 지역 사회에서 충분히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교황의 권고 왜곡한 꽃동네의 반박문

10. 교황님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인간적 발전에 애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꽃동네야말로 교황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일례로, 꽃동네는 장애아동들을 위한 특수학교 꽃동네학교를 설립하여, 사회에서는 공부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을 위해 특수교사들이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가르칩니다. 학생들의 자활을 위한 직업학교(제과, 제빵)에서 기술을 습득하여 자립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반박은 교황의 권고를 교묘하게 반토막 낸 것이다. 교황 발언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저마다 품위 있게 일용할 양식을 얻고 자기 가정을 돌보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에 있다. 이 권고는 장애인을 사회 속으로 통합하라는 주문이다. 꽃동네는 교황의 권고를 왜곡하고 외면하고 있다. 꽃동네대학교에서 장애인 복지와 사회복지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학자적 양심으로 꽃동네의 시대착오적 실상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밝혀야 한다.

또 교황의 권고 중 '가정'이란 단어는 수용 시설에 있는 장애인을 원래 가족이 있는 가정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국가가 장애인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그들이 가족들과 살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반(反)예수적 장애인 수용 시설 사업

지난 6월 10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주최 하에 펼쳐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분홍종이배 보내기 기자회견'
▲ "진짜 꽃은 꽃동네가 아닌 장애인차별철폐 광화문 농성장에 있다! 교황은 이곳으로!" 지난 6월 10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주최 하에 펼쳐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분홍종이배 보내기 기자회견'
ⓒ 정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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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2000년 전 예수께서 그렇게 했다. 예수는 지금의 꽃동네에 갇혀 있는 장애인들처럼 소외되고 울타리 밖에(루카 14, 21~22) 있던 그 시대의 장애인을 사회공동체로 불러들여 함께 살게 했다. 사회 공동체에 함께하지 못하고 있던 장애인을 사회 안으로 통합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라 여겼고, 그것이 예수의 장애인 복지 정신이었다.
꽃동네 오웅진 신부가 예수를 따르는 사제라면, 예수의 이런 장애인 복지 정신에 어긋나는 반(反)예수적 장애인 수용시설 사업은 진작 그만둬야 했을 것이다.

꽃동네 폐쇄까지 바라진 않는다. 몇 차례 언급했듯, 꽃동네가 38년간 쌓아온 노하우와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 등의 복지 자원이 다른 복지 분야로 옮겨져 오웅진 신부와 수도자들이 마음에 지니고 있던 복지에 대한 열정이 다시 발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런 긍정적 변화의 움직임이 꽃동네에서 일어나길 바란다.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교회 쇄신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쇄신의 바람에 한국 가톨릭 교회와 꽃동네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고 변화를 바라는 요구에는 순응해야 한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시대착오적 판단은 어떤 결과로든 쇠락할 수밖에 없다. 변화를 향한 꽃동네의 결단을 거듭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중규는 장애인 인권운동가로 대구대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이자 정책네트워크 내일 장애인행복포럼 대표입니다. 이 기사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태그:#프란치스코 교황, #꽃동네, #오웅진 신부, #장애인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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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정권교체동행위원회 장애인복지특별위원장,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맹 수석부회장,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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