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타짜: 신의 손>의 한 장면.

영화 <타짜: 신의 손>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타짜-신의 손>(이하 타짜2)을 본 건 지난 추석날 밤. 부모님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배부른 오후 혹은 지긋지긋한 설거지의 시간을 보내고 저녁상까지 물린 아내와 함께였다. 시댁 탈출이 늦어져서 심기가 불편했던 아내가 어렵사리 마음을 추스르고 나름의 용단 혹은 차선책으로 선택한 영화였다.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했다. 귀경길이 웃음 꽃 피는 무사귀환이 되느냐, 아니면 미간에 내천(川)을 그린 채 짓누르는 침묵에 숨막히는 고행길이 되느냐는 순전히 영화의 재미가 결정짓는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왜 아니겠는가. 아내로서는 서럽지만 시시한 시댁 나들이를 한 뒤에 보는 영화인 데다가 이렇게 애를 맡기고 홀가분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 1년에 한두 번 뿐인 것을. 같은 영화관에 있던 관람객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2시간이 흘렀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어, 벌써 11시가 넘었어. 빨리 가자. 애 깼겠다."

2시간이 지나도록 시계 한 번 보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이 말. 그 만큼 재미있었다는 말이다. 비록 (영화관의 시설탓이었는지) 영화 음질이 형편없었음에도 나는 웃었으며 안도하였다.

오락거리로는 부족함 없어

내가 보기에도 영화는 몰입감이 좋았다. 2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오락거리로서는 부족함이 없다. 스토리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영화의 인물, 사건, 상황 장치는 익숙하고 나름대로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하면서 스토리를 따라와 주었고 캐릭터는 감정 이입이 가능할 만큼의 설득력이 있다. 거기에 잔인하지만 충격을 주는 반전도 사이사이 긴장을 늦추지 않을 만큼 들어가 있다.

애초에 영화를 만들 때부터 제작자는 오락 영화를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제작자의 돈 씀씀이를 보면 이는 분명하다. 영화 제작에서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부분. 주조연과 감독 캐스팅 비용이다. 톡톡한 재미와 시선 자극에 올인.

<타짜2>가 풍미 그윽한 녹차같은 맛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 우리가 더 많이 마시는 건 녹차보다는 탄산음료 아니던가. 평론가들은 최동훈의 <타짜>와 비교하면서 <타짜2>를 한 수 아래로 취급하거나 한 술 더 떠 전작의 명성에 '고박(독박) 씌운 듯'이 평을 하는데 그건 개운치 못하다.

왜? 이름만 비슷할 뿐 색깔과 지향점이 다른 영화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잘못이기 때문이다. 피자와 파전은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맛을 낸다. 그게 당연하다. 또한 오롯이 제대로 된 맛을 보려면 파전에는 막걸리, 피자에는 콜라다. 연기가 능숙한 조승우는 <타짜>에 걸맞고, 연기보다는 인지도와 튀는 멋이 있는 최승현, 신세경은 <타짜2> 속에 서 있어야 제 그림을 맞춘 거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두 주연과 이하늬의 연기(곽도원과 유해진의 살벌한 연기는 말하면 입 아프니 통과)가 인지도를 휘발시키는 억지 춘향이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세 사람이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연기에 비하면 엄지를 세워주고 싶다.

많은 재료가 들어간 영화라는 화려한 밥상 위에서 이들은 간이 잘 밴 고기전과 말끔하게 잘 빚은 송편으로 자리했다. 그 맛이 들기까지 배우의 노력도 있었겠으나 무엇보다 강형철 감독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해 안 가는 부분들

그러나 영화를 곱씹어 보자면 단맛만 우러나는 건 아니다. 애초에 여운은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고 그게 콘셉트라고 해도 기본은 지켜줘야 하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식당에서도 음식이 수준 이하라면 "사장 나오라 그래"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내가 와서 답해주시라고 해도 감독님이 응해주시지는 않겠으니, 그저 속풀이로 이해 안 가는 몇 가지 부분을 들춰보려 한다.

장동식의 추격이 멈춘 까닭은?

대길과 미나의 비극이 쉼없이 쫓기는 줄행랑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추격자는 장동식이다. 그것은 영화 속 인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일관된 에너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추격이 갑자기 멈춰버리는 기간이 있다. 김군과 고광렬이 싸운 뒤부터다.

다 잡았다 놓쳤으면 더 길길이 날뛰고 더 센 놈을 보내 복수를 하는 게 장동식 답지 않나? 그런데 갑자기 손을 놓고 기다린다. 왜? 두 주인공이 반격을 해야 하고 그것으로 영화 분량을 채워주기 위해서? 그게 아니라면 소재파악이 되는 악성 채무자를 갑자기 방치한다는 데서 영화 에너지가 엉뚱하게 소모되고 있다. 치밀하지 못한 구석이다.

우 사장은 왜 돌아버렸나?

대길과 우 사장의 악연은 합심해서 장동식의 뒤통수를 치고 나서 깔끔하게 마무리 될 수도 있었다. 어차피 돈과 도박으로 얽힌 사이, 서로 줄 거 줬고 받을 거 받았으니 뒤 안 돌아보고 헤어지면 그만이다. 그런데 대길이 우 사장의 귀에 대고 짧은 말을 던진 뒤로 우 사장이 확 달라진다. 대길과 미나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 난 거다.

귀속말은 아마도 진실한 사랑 타령이었을 것 같은데 얼마나 대단한 말이었기에 돈만 아는 여자가 돈을 다 내버리고 여기저기 들이받고 돌아다니는지, 납득이 어렵다. 혹시 우 사장, '시간 똘아이'였나?

어설프고 맥빠지는 후반부

톤이 전혀 맞지 않는 카 체이싱(추격전)을 빙글빙글 돌리고 나서부터다. 영화의 생동감이 좍좍 빠져 버린 건, <타짜>를 포함한 몇몇 영화의 오마주도 아니고 베끼기라고 해야 하나? 이성을 잃고 복수로 치닫다가 갑자기 도박판을 벌인다는 설정이 억지스럽다. 굳이 옷 벗자고 드는 것은 그 의도가 빤히 보여 허술하다. 또, 대길의 결정적인 한 장은 도대체 어쨌다는 건지 말로만 때우기에는 너무 상상력 부족 아닌가?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의문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떠올랐다는 거다. 즉 어쨌든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고민없이 즐겁다. 이건 마치 도박과 같다. 마지막 패를 내려놓고 나면 지독하게 허무할지언정 화투짝을 쥐는 그 순간에는 짜릿해서 또 화투판을 찾게 되는 그 도박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타짜2>는 진정한 도박영화이며 도박의 정수를 느끼게 해주는 크고 넓은 계산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아날로그캠핑 블러그에도 게재했습니다.
타짜2 신세경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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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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