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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죽음'을 시종일관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익숙한 방식으로 잊어버리길 원했다. 그리고 지금은 내심 '세월호도 끝났'고 '야당도 끝났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정말 그럴까?

추석 연휴 후 광화문 광장이 한산해졌다고 한다. 보수단체와 보수 언론은 세월호 농성장을 분열과 증오에 갇힌 광장으로 여론몰이 했다. 농성장 철거주장까지 들고 나섰다. 하지만 유가족과 세월호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국민들은 희망을 꺾지 않고 있다. 한 여름의 땡볕과 쏟아지는 빗줄기와 눈보라를 함께 맞으며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게 삶이고, 희망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십자가 도보순례 당시 단원고 이승현군 아버지 이호진씨는 "5·18 광주민중항쟁이 끝내 진실을 밝힌 것처럼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15년이 걸리든 세월호의 진실은 밝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서명과 단식과 몇 차례의 집회로만 끝날 일이 아니라 집요하게 끝까지 함께 걸어가자고 명토박아 뒀다. 

유가족들이 고립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경향각지에서의 다양한 사회적 연대의 복원이 절실하다. 안산에서는 8월 29일 시청 앞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촉구 안산시민농성장'을 열었고, '세월호 1호 기억저장소'도 활동에 들어갔으며, 세월호 현수막은 안산을 노랗게 물들였다. 동네촛불도 쉼 없이 불을 밝히고 있다. 안산의 세월호는 연대의 끈을 더욱 세차게 끌어당기고 있다.

유가족의 지친 피로와 상처 또한 사회적 연대 속에서 치유돼야 한다. 그 상처는 '4·16 특별법' 제1조 (목적)에 명시되어 있듯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통해 '희생자의 명예로운 넋을 위로·기억하며, 피해자 및 그 가족 지원 등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기리'는 가운데 치유된다. 그와 함께 병행해야 할 것이 유가족과 국민들을 치유하고 '세월호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제 5개월을 넘긴 세월호 국민 행동은 혹독하고 모진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호흡조절에 들어가야 한다. 긴 호흡으로 새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상흔을 치유하며 삶과 이야기를 다시 공유하는 치유의 과정이 뒷받침 돼야 한다. 치유와 회복을 위한 모든 과정이 '세월호 충전소'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이유다.

'치유공간 이웃', 세월호 유가족의 아픈 속살을 부둥켜안다

동양화가 김선두 화백이 '치유공간 이웃'에 재능기부한 그림 ‘봄소풍’. 김 화백은 "밝고 따뜻하게 그려서 아이들 영혼을 차가운 바다에서 건져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양화가 김선두 화백이 '치유공간 이웃'에 재능기부한 그림 ‘봄소풍’. 김 화백은 "밝고 따뜻하게 그려서 아이들 영혼을 차가운 바다에서 건져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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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을 치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단원고 2학년 학생 중 97명이 살았던 와동에 정혜신 박사가 주도하는 '치유공간 이웃'(아래 이웃)이 지난 11일 문을 열었다. 와동체육관 인근에 마련한 '이웃'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방과 맞닿은 왼편 벽면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꽉 채운 그림이 눈 안 가득 들어온다.

'아이들이 지천을 화사하게 물들인 꽃동산 속을 재잘거리며 미끄럼도 타고 왁자지껄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그 한켠에서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러 모으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나 둘, 나비처럼 날아오르는가 싶더니… 아, 밤하늘의 별이 된다. 아이들은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자신들을 집어 삼킨 칠흑 같은 세상을 밝히는 별빛이 되었다.'

단원고 학생들을 기리기 위해 동양화가 김선두 화백(중앙대 미대 교수)이 그린 '봄소풍'(위 사진)이다. 김 화백은 '그림을 밝고 따뜻하게 그려서 아이들 영혼을 차가운 바다에서 건져주고 싶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박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으로 거처를 옮긴 후 유가족의 집과 학교 등지에서 심리 상담을 하는 등 안산 보듬기에 주력해 왔다. '이웃'은 유가족·주민과 긴밀한 소통을 하는 한편 서로 맞잡은 따듯한 손길로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는 '공동체 복원'을 지향해 갈 계획이다.

정 박사는 페이스 북을 통해 "세월호 유족들이 가다 넘어지면 약 바르고, 허기지면 함께 밥술 뜨고, 지치면 쉬었다 가고, 외로우면 함께 울고, 아이들 얘기하다 함박꽃처럼 웃을 수 있는 곳, '이웃'은 그런 치유적 공기를 품은 곳"이라고 밝혔다. '이웃'은 세월호 유가족의 이웃인 자원봉사자들의 땀과 헌신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주민들과 함께 마을공동체 회복에 나선 '힐링센터 0416 쉼과 힘'

안산명성교회에서 15일 개관한 ‘힐링센터 0416 쉼과 힘’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진행한 ‘기억-손도장 퍼포먼스’에서 단원고 최진혁군의 할아버지 최광균씨와 양온유양의 아버지 양봉진씨가 도자기에 핸드 프린팅을 했다.
 안산명성교회에서 15일 개관한 ‘힐링센터 0416 쉼과 힘’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진행한 ‘기억-손도장 퍼포먼스’에서 단원고 최진혁군의 할아버지 최광균씨와 양온유양의 아버지 양봉진씨가 도자기에 핸드 프린팅을 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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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2학년 학생 107명이 살았던 고잔1동에서도 치유와 공동체 회복을 실천하는 '힐링센터 0416 쉼과 힘'(아래 쉼과 힘)이 15일 문을 열었다. 위치는 단원고 정문 앞이다. 지난 6월 17일 명성교회와 군자종합복지관,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가 힐링센터 운영 업무협약식을 가진 후 세월호 참사 150일째에 개관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킨 셈이다.

힐링뮤직콘서트를 시작으로 문을 연 개관식은 KBS 김재원 아나운서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쉼과 힘의 협력방안, 유가족과 지역주민의 바람 등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방송인 김혜영씨와 함께 '쉼과 힘'의 홍보대사로도 위촉됐다.

토크콘서트에서 단원고 최진혁군 할아버지 최광균씨는 "세월호 참사 전에는 노래를 무척 좋아했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려 목소리에서 나오질 않는다"면서 "세월호 참사가 언제 치유가 될지, 언제 다시 찬송가 등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희망을 갖고 버티고 있다"며 울먹였다.

양온유양의 아버지 양봉진씨는 "무거운 마음으로 개관식에 참석했지만 보다 나은 미래를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라며 "유형의 공간이 아닌 무형의 공간이 되어 소외된 이웃, 힐링이 필요한 이웃, 쉼이 필요한 이웃들을 찾아가는 힐링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날 명성교회 부설 엘림하우스 옥상 힐링 테라스에서는 0416 리멤버를 위한 '기억-손도장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김홍선 목사를 비롯 지역주민과 함께 최광균씨, 양봉진씨 등 유가족들이 도자 핸드 프린팅에 손도장을 남겼다. 쉼과 힘은 앞으로 유가족과 주민 등 416명의 손도장을 찍은 도자기를 다시 한 번 구운 후 힐링 테라스 벽면에 장식할 계획이다. 

'세월호 차량용 스티커'를 차에 붙이고 다닌다면?

9월 15일 문을 '힐링센터 0416 쉼과 힘'이 재능기부로 제작한 세월호 차량용 스티커 견본. 쉼과 힘은 9월 중으로 시민들에게 스티커를 무료로 나눠줄 예정이다. 가슴에 노란리본을 단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9월 15일 문을 '힐링센터 0416 쉼과 힘'이 재능기부로 제작한 세월호 차량용 스티커 견본. 쉼과 힘은 9월 중으로 시민들에게 스티커를 무료로 나눠줄 예정이다. 가슴에 노란리본을 단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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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식에 앞서 12일 기자를 만난 김홍선 목사는 힐링센터 0416 쉼과 힘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된다 해도 상처가 치유되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유가족들이 투쟁을 끝내고 마을로 돌아왔을 때부터라고 봐요. 개별적인 상흔이 서서히 드러날 테니까요. 그때 이분들이 쉬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필요해요. 모진 겨울날 외출했다 돌아왔는데 방바닥이 차가우면 더 춥지만 미리 예열을 해 두면 몸이 녹으면서 따뜻해지잖아요? 쉼과 힘은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겁니다. 유가족들이 돌아왔을 때든 중간에 휴식을 취하든 언제든지 '쉬고 난 후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놓자는 것이지요.

우선 할 일은 공동체 회복에 힘쓰는 거예요. 왜냐하면 참사 후 5개월이 지나니까 안산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간접 피해자인 주민들 중 일부는 '유가족 때문에 안 된다'는 등 위험한 말을 하고 있어요. 대립과 갈등이 서서히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지역공동체가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쳐 주는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쉼과 힘은 지역공동체성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결속시키는 프로그램에 주력하고자 해요. 이 공동체를 회복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개관 준비를 해왔습니다."

쉼과 힘은 상담 치유와 병행해 세월호 참사로 슬픔을 겪은 안산시 고잔1동·선부3동·와동의 12만 마을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날 비전으로 선포한 '쉼과 힘을 만드는 우리 동네', '기억하고 함께하는 우리 동네', '문화와 예술이 있는 우리 동네'는 활동 목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임남희 사무국장은 향후 사업과 관련 "유가족에게 중요한 사람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웃(유가족)을 곁에서 봐야 하는 '이웃'(주민)"이라며 "함께 부대끼는 가운데 예전의 마을을 다시-멤버(Re-member)해 우리 마을이라는 주인의식을 복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국장은 "4월 16일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주민 416명이 발의하는 'Re-member 0416 서포터즈'를 조직할 계획"이라며 "서로의 생활을 나누는 '이야기 서포터즈', 정보를 나누고 이어주는 '이음 서포터즈', 크고 작은 갖가지 도움을 받는 '후원 서포터즈', 쉼과 힘의 사업을 알리는 '홍보 서포터즈'로 나눠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쉼과 힘' 사무국은 엘림하우스 2층(단원구 고잔동 단원로61)에 마련했다. 2층에는 쉼과 힘 프로그램실과 상담실 등을 갖췄다. 9월 중으로는 재능기부로 제작한 '세월호 차량용 스티커'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 줄 예정이다. 스티커가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는 '쉼과 힘' 사무국으로 연락하면 된다.

상상해 본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명한 450만 명의 국민들이 세월호 스티커를 자가용, 택시, 버스, 트럭 등에 붙이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장면을. 그때는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을까, 하고. 과연 그때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세월호는 끝났다'고 할까.


태그:#세월호 참사 치유·회복 , #치유공간 이웃, #힐링센터 0416 쉼과 힘, #세월호 차량용 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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