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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의원과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문재인 의원과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 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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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 이적행위와 반역죄로 처벌해야 한다."

2007년 1월 12일,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 <동아일보>에 쓴 칼럼의 핵심 주장이다. 

그는 이 칼럼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인해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아침이 오면 해가 뜬다는 사실만큼  분명하다"며 "북한에 전달하는 식량과 현금이 핵 개발로 이어질 것을 알면서 대북 '퍼 주기'를 계속했다면 이적행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선 '반역'을 단죄하기는커녕 '민족'이란 허울 좋은 명분을 앞세우고 옹호하는 일이 일상화됐다"고 개탄하고 "대통령 후보가 되어 노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사람이라면 북핵 개발의 진상을 가려내 잘못된 정책을 밀고 나간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빈말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 이후 이 교수가 이런 견해와 강경한 대북관을 바꿨다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2011년 3월 <경향신문>과의 대담에서도 이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정상회담은 북한 핵 개발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결국 실패했고, 북한이 핵을 갖게 된 이상 상당한 기간 동안 북한과 대화하기 어렵게 됐다. 그런 것을 감안하지 않는 정책은 곤란하다"고 강경한 대북관을 이어갔다.

그는 또 "첫 번째 정상회담은 이해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핵실험 1년도 안 돼 평양에 갈 필요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햇볕정책 부정하는 이상돈을 영입 시도하다니...

박근혜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 새누리당 비대위원, 불과 한 달 전까지도 새누리당 당원,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이적행위·반역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상돈 교수.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과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낸 문재인 의원과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그를 "합리적 보수"라고 포장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상돈 논란' 때 문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혁신과 외연확장. 우리당의 재기와 집권을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할 두 마리 토끼"라며 "반대쪽이었던 사람도 합리적 보수라면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두 마리는 토끼'는 이상돈-안경환 교수를 말한다.

박영선 대표도 지난 12일 이상돈 교수를 "개혁적 보수"라고 칭하고,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승리를 위해서 갖춰야 할 필요충분조건"이라고 강변했다.

이런 인식 속에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적행위·반역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상돈 교수를 제1야당의 지도부가 당 대표로 극진히 모셔가려 했다. 

중도 우클릭을 거듭하면서 새누리당과 차이 나는 분야라곤 기껏해야 대북정책 정도만 남아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저런 대북관을 갖고 있는 인사를 영입하겠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요즘 새정치민주연합을 보노라면, 당 대표가 돌아가면서 당을 망가뜨리려고 작정한 것 같다. 7·30 재보선 공천 참사,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 두 차례 번복 파동, 박근혜 대통령 탄생 일등공신 당 대표 영입 불발 사태, 박영선 위원장의 탈당 검토 소동까지... 막장 드라마의 끝을 보는 듯하다.

타이밍도 오묘하다. 집권여당의 실책으로 기회가 넝쿨째 굴러오는 시기마다 딱딱 맞춰 '자폭형 참사'를 터트리고 있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중에 이상돈 영입 파동은 60년 야당 역사에 희대의 블랙코미디이자 '황당한 자살골'이다.

이번 사태 책임을 두고 박 대표와 문 의원이 '거짓말 공방'을 벌이는 볼썽사나운 광경도 연출됐다. 박 대표는 분을 참지 못 하고 '탈당 검토' 소동까지 벌였다.

당의 위상이 끝 모르게 추락하고 당원들의 자존감을 땅에 떨어뜨린 책임은 1차적으로 박영선 대표에게 있다. 그러나 문재인 의원의 처신도 책임있는 지도자로서 아쉬움이 크다. 문재인 책임론과 정치력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교수 당 대표 영입 방침이 알려지자 소속 의원들은 물론 당원·지지자 할 것 없이 당 안팎에서 거센 반발과 분노가 순식간에 일었다.

그러자 지난 12일 박영선 대표는 당 중진 문재인·박지원·정세균·김한길·문희상 등과 '6인 회동'을 하고 '이상돈·안경환 투톱 카드 철회, 박영선 사퇴 주장 자제'를 합의했다. 이어 그 합의 결과를 당의 공식 방침인 양 당 대변인이 브리핑을 했다.

문제는 그 자리에 참석한 중진 5인은 그런 결정을 할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비대위원도 아니고 당의 공식 직책을 맡고 있지도 않다. 이게 새정치민주연합의 엄연한 현주소다. 이 당의 당원은 허깨비가 된 지 오래다. 6인 회동이 이를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박근혜 정권의 '개국공신'을 느닷없이 제1야당의 당수로 앉히는 문제는 그 어떤 사안보다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야당이 어렵기로서니 당 대표를 새누리당에서 '꿔다 쓴다'는 건, 스스로 새누리당과 아무런 차별성이 없다는 걸 전 국민에게 공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지난 60년 동안 면면이 이어 온 야당 역사와 남북 평화·협력정책의 지주였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다. 더불어 박근혜 정부를 반대하는 당원과 야권 지지자들에게 심대한 모멸감을 안겨주는 사안이다. 

정체성 사라진 '괴물 야당'

심각한 점은 또 있다. 이상돈을 합리적·개혁적 보수로 규정할 정도로 새정치민주연합 일부는 중도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갖고 있다. 더불어 잘못된 흐름에 단호하게 제동을 걸 수 있는 주체세력도 없다. 새 인물이 없고, 세대교체가 안 돼서도 아니다. 

안철수와 박영선. 두 사람은 야당에게 요구되어 온 '새 인물'과 '세대교체'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제1야당의 당 대표까지 오르면서 젊은 리더십을 선보일 기회도 주어졌다. 그러나 대중의 평가는 어떠한가. 본인의 실패를 넘어 야당 전체의 몰락을 걱정할 정도로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제대로 된 주체세력이 부재한 이유를 찾기란 그리 복잡하지 않다. 확고한 철학과 일관된 진보개혁적 행보로 야성을 보여주는 정치인에게는 집단적으로 왕따를 하고, 그때그때 주류세력에게 줄대기 바쁜 정치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의원의 선수(選數)가 따로 없다. 초선, 중진, 친노, 486... 어느 한 세력도 예외 없다.

그 결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야당 지지자들의 피땀으로 국회에 등원한 130명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국회의원 배지가 부끄럽지 않은가. 야당 역사상 이렇게 지지자를 모독한 적이 있는가.


태그:#박영선, #이상돈,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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