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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계 여성 최초 독보적 수식어와 함께 하는 김영숙 사범(9단)
 태권도계 여성 최초 독보적 수식어와 함께 하는 김영숙 사범(9단)
ⓒ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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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계에 여성으로서 독보적이며 최초라는 수식어가 꼭 붙는 이가 있다. 바로 김영숙 사범이다. 그는 세계 최초의 여성전용태권도장을 열었고 이화여대에 최초로 여성태권도부를 창설했으며 여군교관으로서 전투경찰들을 지도하였다. 또한 최초의 여성 국제심판으로 활약하였고 2000년에는 세계최초 국제여성태권도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9월 4일 무주태권도원 개원식에 참석했던 김영숙 사범을 지난 6일 가산 GTN-TV 회의실에서 만났다.

그의 태권도에 대한 이야기를 1부와 2부에 걸쳐서 들어보자.

"집에서 말리다 말리다 결국 인정을 한 거죠"

- 태권도계에서 여성최초로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태권도를 하게 된 계기는?
"오빠(김영삼, 89년 국가대표 감독)가 태권도 사범이었어요. '막내야 가서 오빠 찾아와라' 그러면 도장을 가곤 했어요. 그 당시 저는 도복이 없었어요. 도장을 나가겠다 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저는 남이 안하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오빠가 없는 시간에 도장을 찾았어요. 일찍 했는데도 오빠 모르게 해야 해서 단도 늦게 보게 됐죠. 나중에 오빠가 포기했고요. 도복이 없어 어머니 옷을 잘라서 도복을 만들어 입었어요. 집에서는 태권도를 못하게 말리다 말리다 못 말리고 결국 인정을 한 거죠."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태권도를 향한 그의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태권도를 향한 그의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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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으로서 태권도계에 발을 들일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항상 저에게 최초라는 타이틀은 어찌 보면 족쇄와도 같았어요. 그만큼 여러 어려움이 있었죠. 여성 태권도인이 전무한 가운데 항상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함께 대련할 여성이 없었기에 남성들과의 대련을 할 수 밖에 없었고요. 주위에서 수근대기를 '여자가 뭐 태권도 오래하겠어. 곧 그만 하겠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럴수록 아주 더 열심히 이를 꽉 깨물고 연습에 연습을 했습니다. 당시에 승단시험은 그렇게 합격률이 높지 않았어요. 반은 떨어진다고 봐야했죠. 그 속에서 4단까지 한 번에 미끌어짐 없이 획득했습니다."

-여성사범으로 다양한 시범도 하셨네요.
"60년대에서 70년대 극장에서 대한뉴스를 내보낼 때 태권도 시범을 했어요. 당시에 유단자 20명과 함께 경복궁에서 시범을 한 것을 촬영한 거죠. 점프·겨루기 등을 했는데 그때는 멀티라는 단어 없었어요. 나는 여자니까 겨루기, 호신술, 품새 다해야 했어요. 제 손을 보세요. 부러지고 또 아물었다가 부러지고 해서 그 흔적이 손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 손을 보니 격파를 많이 하셨던 거 같은데요.
"격파한다는 것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아래서부터 위로 순간적인 힘을 내는 거잖아요.시범을 하러 갈때는 관장님을 통해 연락이 왔어요. '하루에 30번을 쳐라'고 했을 때 저는 300번 쳤어요. 밸런스가 맞아야 하는데 몰라서 한쪽으로만 쳤죠. 두드릴 때 정말 아팠지만 빨간벽돌을 보면서 '내가 성공해서 다른 나라에 가서 태권도를 알릴 것이다. 대한민국 여자이기에 시범이 끝나면 반드시 한복을 입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정서는 한복에 고무신에 버선을 신어야 했어요. 버선은 풀을 먹어야 했고요. 그래서 풀을 먹였을 때 두드리는 것을 연습으로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풀먹인 버선을 두드리며 격파 연습을 했어요.

격파를 할 때 주먹을 말아쥐고 말아쥔 주먹에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공간이 없어야 돼요. 그걸 다듬어주어야 하는데 막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두손이 여러번 부러지고 해서 주먹을 쥐었을 때 꽉 쥐어지지 않아요. 비가 오거나 하면 마치 오른팔이 잘려 나간 듯이 아파요. 종아리도 성치 않고 보호대 없이 했으니까요. 남자들 속에서 태권도를 하면서 양손, 코뼈 다부러져 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자신을 채찍질 한 거죠. 그러면서 다시 하곤 했습니다."

- 여성전용 태권도 체육관을 최초로 세우셨어요.
" 내가 뭔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70년도 이화여대 앞에 세계 최초 여성만의 태권도 체육관을 세울 때요. 그 당시 한국여성연맹이 있었어요. 박영숙 사무총장님, 이태영 여류 변호사님, 성심 사대를 창설하신 이수정 선생님 등 여성 모임 구성원들이 태권도 사범으로 참석했죠. 이화대학교 체육대 학장님 성정숙 선생님을 대회장으로 모시고 회현동 여성회관에서 여자만의 도장을 오픈 시범도 하고요.

그리고 이화여대에 태권도부를 창설하고 싶었어요. 학교 측을 계속 두드렸지만 '안돼 감히 여자가'라는 싸늘한 반응만이 돌아왔죠. 그때 한성일 교수님이 이화여대 학장이 되셨어요. 유럽에 다른 학교 학회에 가셨다가 그쪽에서 "당신네 나라는 태권도가 퍼지고 베트남에서도 하는데 당신네 학교에서는 태권도를 얼마나 하냐?"라는 질문을 받은 거예요. 한 교수님이 돌아오셔서 도움을 주셨고, 태권도부(동아리)를 시작하게 된 거죠."

- 경찰과 여군도 가르치셨네요.
"예, 마포 전투경찰을 가르치게 되었어요. 제가 오빠의 도움을 얻어 첫클래스를 하게 되었는데 버스에 120명을 두차로 나눠서 효창운동장으로 향했어요. 10명씩 12줄로 줄이 세워졌죠. 마이크가 필요한 지 물어서 마이크 필요없다고 말하고 육성으로 말했죠. '다른 도장에서 한 사람 없느냐?' 파란띠 빨간띠와 경험이 없는 전경으로 나누어서 가르치게 되었어요.

또 제가 미국가기 전 1979년까지 여군교관을 했어요.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진이 72년도 여군교관들을 교육하며 찍은 건데요. 여기 가운데 있는 여군이 애제자고 그 옆이 전데요. 이때가 2월달이었는데 엄청 추웠어요. 그때는 저보다 나이 많은 여군도 있었거든요. 의장대에 태권도를 가르치는 젊은교관이  20살~25살이었고 여군들이 짖궂게 장난을 쳐서 클래스를 못하고 가게 만들곤 했어요.

아까 얘기한 애제자가 같은 동네에 살던 후배예요. 클래스를 하기전 뭐 도와줄게 없냐 하길래 '제 사랑하는 제자가 군대 와 있다. 운동 가르치는 동안은 조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죠. 첫클래스 시간인데 여자 중대장 마이크 잡고 '태권도 시간이다'라고 했지만 아무도 안와서 강제로 데리고  왔어요. 그때 스마일 운동을 한참 하던 때였는데 미니스커트를 입고 갔어요. 군대에서 웬 사복입은 여자가 오니 여군들이 어리둥절해 했고 '내가 태권도 사범이다, 여러분도 여자고 나도 여자다, 미용체조부터 가르칠 것이다'라고 했죠. 그렇게 하자 제 클래스에 들어오더라고요. 도복 이외에는 아무것도 입지 못해 시범을 했죠. 추운날씨에 손등이 쩍쩍 갈라지고 그와중에도 열심히 가르치고 여군들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외에 72년도 정난여상 태권도부를 만들었고요. 미8군에서도 가르쳤고요."

여군 교관 당시 모습
 여군 교관 당시 모습
ⓒ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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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대사관 비서가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왔는데..."

- 기억에 남는 수련생 제자들이 있다면?
"1970년도 여성만의 체육관이 매스컴을 통해 소개된 후 지방에서 어떤 여자가 왔어요. 부모없이 도우미로 있다가 태권도를 꼭 해야겠다며 찾아온 거예요. 태권도를 해서 여자운전수가 되어야 겠다며 여자 스스로 자길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태권도를 생각한거죠. 한 번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대사관 비서가 태권도를 배우러 왔어요. 그런데 태권도 도장에 와서 다짜고짜 신고 있던 부츠를 벗더니 '미스김 이것좀 저기좀 갖다 나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곳은 도장이고 저는 사범이고 규칙이 있다'라고 이야기를 했죠."

- 수입은 어땠는지?
"여자만의 도장을 할 때 수입 별로 없었어요. 부모 모르게 오는 여자아이가 50~60%였거든요. 그래도 세계문학 전집을 한달에 한권씩 꼭 사서 태권도뿐만 아니라 지식도 같이 함양할 수 있도록 했어요."

- 도장운영시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면?
"당시 (품새에는) 지도관, 창무관, 무 덕관, 함무관, 오도관 등 10개 이상이 있었잖아요. 각 사범 관장님들이 자기들만의 품새를 하면 돼요. 나는 무덕관 품새 형을 주로 했는데 여군을 가르치다보니 다른 도장의 품새를 배워야 했어요. 고등학교 중학교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합회형을 알아야 했어요. 그래서 저에게 배우다가 다른 도장을 가면 빠르게 배울 수 있는 거예요."

영화 '위험한 영웅'에서 무술지도와 대역 등을 맡았다.(왼쪽에서 3번째가 김영숙 사범)
 영화 '위험한 영웅'에서 무술지도와 대역 등을 맡았다.(왼쪽에서 3번째가 김영숙 사범)
ⓒ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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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도 출연하셨는데요.
"예, 여성태권도 사범으로 이름이 나고 매스컴도 타면서 영화촬영 제의가 들어왔어요. 김창숙, 우연정씨가 나왔던 영화인데 이분이 이소룡 친구인데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요. 저는 무술지도하고 대역 출연도 해야했어요.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저예요. '위험한 영웅'이라는 영화인데 내용은 태권도 클래스에서 김창숙씨와 우연정씨가 태권도를 배우면서 사범을 사랑하는 내용이고요. 이외에 협기라는 한중합작 영화에도 출연했고요. 그 시절에 카메라도 없고 지금 이 사진이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 당시 사진이네요."

- 여성태권도연맹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있다고 하던데요.
"유정회 국회의원 1호 기자출신인 이학선 총재님이 유희상, 김종필 전총리, 정주영 전 회장과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에 다녀 오신 거예요. 그곳에서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새마을 운동과 태권도 밖에 없다고 느끼신거예요. 오셔서 체육회에 이야기해서 저를 발굴하신 거죠. 한국여성태권도를 만드는 데 초대이사로 임명하셨어요."

한국여성태권도연맹창립총회에서
 한국여성태권도연맹창립총회에서
ⓒ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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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의 여성태권도 대회를 미국에서 하셨는데요.
"세계최초의 여자만의 대회를 2000년도 미국에서 하게 되었어요. 'The First Women's Open Taekwondo Championship'을 한거죠. 우리나라 국화는 무궁화, 캘리포니아를 상징하는 동물은 곰이에요. 그래서 곰순이 캐릭터를 만든 거죠. 그리고 국내외, 미국 유수의 유명인들에게 축사를 받은 거죠. 미국사람들도 혀를 내밀었어요. 어떻게 축사문을 다 받았냐고요? 고충이 컸죠. 한국에서 대회를 하면 말이라도 통하지만 미국에서 하게 되면 비자를 내줘야하고 차를 보내줘야 하고 영어통역이 있어야 하죠. (포스터를 보여주면서) 여기보시면 곰순이 캐릭터가 옆차기를 하죠. 대회를 하고 나서 역대 이렇게 리포트를 한 적이 없다고 해요.

저는 오픈 세러모니할 때 태권도복을 입고 입장을 했어요. 미스태권도도 선발을 했고요. 이 사진은 대회장으로서 인사말 한 것이고요. 그런데 비자 때문에 더 오실분들이 못오셨죠. 국제 심판들한테 상패하나씩 다해주고요. 각종 기념품을 만들었고요. 1회 밖에 못했어요. 포스터는 하나밖에 안 나왔어요."

제1회 국제여자오픈태권도 대회 포스터
 제1회 국제여자오픈태권도 대회 포스터
ⓒ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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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5년 뒤에 또 대회를 하셨는데요.
"2000년 대회가 끝나고 빚을 졌어요. 어렵게 빚을 갚았어요. 그리고 2005년도에 'LA 시장배'를 하게 된 거죠. LA는 미국에서 두번째가는 도시이기에 함부로 시장의 이름을 걸고 대회를 할 수가 없었어요. 다 신원조회가 들어가고 그렇게 2005년도 대회를 하게 된 거죠. 이 대회를 할 때 대한민국정부에서 문화원을 통해서 '국립국악단'을 보내주셨어요. 이 대회를 하고 나서 또 빚을 지게 되었죠. 큰일을 혼자하면서 큰빚을 지게 되었는데 후회는 안 해요. 이런 일은 때가 있고 돈이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거든요. 지금도 열심히 빚을 갚고 있습니다."

제1회 국제여자오픈태권도 대회를 결산하는 리포트,이전까지는 이러한 결산 자료가 전무했다.
 제1회 국제여자오픈태권도 대회를 결산하는 리포트,이전까지는 이러한 결산 자료가 전무했다.
ⓒ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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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심판으로 활동했다
 국제심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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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으로 가셔서 더 다양한 활동을 하셨는데요.
"79년 10월 도미를 하게 되었죠.  그리고 1982년 12월 제3회 팬 아메리칸 태권도대회에 미국 여자대표팀 코치가 되었고요. 그때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어요. 미국태권도연맹(U.S.T.U)여성분과 위원장을 했었고  세계태권도연맹(WTF) 여성분과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국제심판을 여성 세계최초로 1,2급을 취득했고요. 세계태권도대회 심판으로서도 활동하였고요. LA 등지에서는 청소년 선도와 지역체육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 덕분인지 한 전문잡지에서 저에게 'First Lady Taekwondo'라는 호칭을 붙여 주더라고요. 두가지 의미 같은데 하나는 태권도에 여성이 하는 최초라는 의미인 것 같고요. 또 하나는 미국은 영부인에게만 붙여주는 First Lady를 저한테 'First Lady Taekwondo'라고 붙여준 것은 최상의 예우라고 생각합니다."

- 여성 유명인 경호도 하셨네요.
"예, 태권도 여성 사범이다 보니 그런 의뢰가 많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다양한 여성 유명인들의 경호를 했어요."

김연아 선수를 경호하기도 했다.
 김연아 선수를 경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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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 6단인 두딸과 함께
 공인 6단인 두딸과 함께
ⓒ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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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따님분들도 태권도를 하고 있는 태권 가족이신데요.
"예, 두 딸(미셀, 소피아)도 태권도를 하고 있고요. 둘다 6단입니다. 셋이 모여 태권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태권도가 모녀 사이를 더 끈끈하게 연결해주고요. 작은딸은 IOC 리포트로서 통역을 합니다. 태권도를 하다 보니 통역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해서 여기 저기 찾는 곳이 많은 모양이더라고요."

김영숙 사범 프로필
태권도 9단

1970년 5월 세계최초의 여성만의 태권도 도장 개관
1972년 2월 여군 훈련소 태권도 교관 최초
1973년 제7기 지도자 교육수료
1974년 코치 아카데미 수료,경기 지도자 2급취득
1974년 이화여자대학교,성신여사대,연세대 태권도부 창설,1979년 도미전까지 지도
1974년 주한 미국대사관 가족 및 직원들 지도, 프랑스,이탈리아,칠레,독일,스위스,싱가폴 순회 시범 도미전까지
1974년 마포경찰서 전투경찰지도(1979년 10월까지)
1978년 프리월드게임 한국여자대표팀 감독 및 코치 최초
1979년 3월 한국 여성태권도연맹 창설 최초
1979년 7월 대만,22개국 태권도 초청경기,한국 여자대표팀 코치
1980년~1987년 미국태권도연맹(U.S.T.U)여성분과 위원장 역임
1982년 12월 제3회 팬 아메리칸 태권도대회,미국 여자대표팀 코치 최초
1984년 세계태권도연맹(WTF) 여성분과위원 임명
1987년 10월 제8회(남자),제1회(여자) 세계태권도 대회 심판,(스페인 바르셀로나)
1987년 10월 한국체전 재미 태권도부 감독
1989년 4월 제2급 국제심판 취득 (여성 세계최초)
1995년 11월 제12회(남자) 제5회(여자) 세계 태권도대회 심판,(필리핀 마닐라)
1997년 8월 팬 아메리칸 태권도 연맹 여성분과 위원장
1998년 12월 제1급 국제심판취득(여성최초)
2000녀 7월 제1회 국제여자오픈 태권도대회 주최(세계최초)
2002년 6월 세계태권도연맹으로부터 '여성분과위원장'으로 임명
2003년 11월 세계태권도연맹 여성분과위원회의 '어드바이저' 취임
2005년 제1회 LA 시장배 쟁탈 국제 태권도 대회 및 코리언페스티벌 주최
2010년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16기)수료
전 세계 무도인연합회 여성분과 위원장 겸 이사
전 팬 아메리카 태권도연맹 여성분과 자문위원
12기 평통자문위원(체육분과)
15기 평통 전문위원
현 월드태권도 도장운영
캘리포니아 경영 과학대학(CALUMS) 태권도 학과장

수상경력

1978년 10월 감사장,서울특별시장
1981년 11월 공로상,Miami 시장
1982년 감사장,Gobierno Muncipal De Ponce,Puerto Rico
1994년 2월 사회봉사상(청소년선도),LA 시의회의장
1999년 4월 사회봉사상(청소년선도) LA County 제2지역 감독관
1999년 충청대학교 최고 영예상 및 감사장
2001년 2월 사회봉사상(지역사회발전),LA 제2지역 감독관
2002년 4월 대한민국 이만섭 국회의장으로부터 '미국대표'로 공로상 수상
2003년 10월 세계태권도 화랑문화제 최고 지도자상 수상(진천군)
2004년 2월 웨스트 버지니아 주지사 Bob Wise로부터 공로상 수상
2005년 4월 제브 야브슬라브스키 슈퍼바이저(제3지구)로부터 공로상 수상
2006년 부시대통령으로부터 체육진흥발전에 기여한 공로상 수상
2009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체육진흥 발전에 기여한 공로상 수상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와이즈뉴스(http://www.whysnews.com), GTN-TV(http://www.gtntv.co.kr), 내외신문(http://naewaynews.com), 위키트리,최주호기자의 개인블로그(http://blog.ohmynews.com/rkeldj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영숙 사범, #김영숙 9단, #태권도 여성최초 김영숙 사범, #GTN-TV, #와이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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