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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도에서 본 석양
 선재도에서 본 석양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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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고 갯벌이 바닷물로 덮이자 강태공들 손놀림이 눈에 띄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망둥이를 건져 올려야 할 때란다.

"한번 해 볼겨?"
"낚시를 해 본적이 없어서."
"쉬워, 손에 느낌이 올 때 잡아채면 돼."

펜션 주인 손에 이끌려 낚시 대열에 합류했다. 낚싯대가 여러 개인 것을 보니 손님들에게 빌려주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낚시터는 펜션 앞마당. 불과 한 시간 전 까지만 해도 갯벌 이었던 곳이 바다 낚시터로 변해 있었다.

"낚시 처음이신가 봐요?"
"네, 어릴 때 대나무에 나일론 줄 묶어서 해보고는 처음입니다."
"지렁이는 빠지지 않게…스위치를 이쪽으로 제치면 릴이…"

알고 보니 좀 전에 안면을 튼 펜션 주인 지인이 낚시꾼이었다. 호박 부침개를 나눠 먹은 인연 하나로 그는 낚싯대 다루는 법을 알려주고 미끼로 쓸 지렁이까지 나눠 주었다.

낮에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낮에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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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줄을 바다에 담근 지 채 5분여가 지나지 않아 감이 왔다. 무엇인가 툭툭치는 느낌. 잽싸게 릴을 감았다. 묵직한 게 끌려오는 느낌이 온다. 이런 걸 손맛이라고 하나! 헌데, 이상하게 팔딱거리는 느낌이 없다.

"와 게다, 아저씨 그거 저 주세요."

옆에 있던 꼬마가 소리쳤다. 갯벌이 바닷물에 잠기기전 열심히 게를 잡던 녀석이다. 게는 잡힌 게 아니라 잡혀 준 것이었다. 낚싯바늘을 입으로 문 게 아니라 집게로 갯지렁이를 꼭 잡고는 절대로 놓지 않았다. 욕심이 명을 재촉 한 것이다. 인간이나 물고기나 역시 욕심이 문제다.

잠시 후 다시 느낌이 왔다. 무엇인가 팔딱거리는 느낌이다. 낚싯대를 슬쩍 잡아채고는 릴을 감았다. 근데, 아무느낌이 없다. 낚싯줄을 끌어 올려보니 미끼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약삭빠른 물고기 들이다. 다시 낚싯바늘에 갯지렁이를 꿰었다.

이후 몇 번이나 느낌이 와서 기대를 잔뜩 안고 릴을 감았지만 그 때마다 빈 낚싯바늘만 올라왔다. 얼치기 낚시꾼한테 잡혀줄 눈먼 망둥이는 없나보다 하고 낚싯대를 거두려고 하자 그제야 무엇인가 팔딱거리는 느낌이 왔다. 낚싯줄을 끌어 올리는 내내 팔딱거리는 느낌이 멈추질 않았다. 성공이다. 망둥이 한 마리가 꼬리를 방정맞게 흔들며 올라왔다.

"식사 하세요."

펜션 주인 부부
 펜션 주인 부부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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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존재라니... 기분 좋으면서도 미안했다

인심 좋은 주인장 어느새 저녁 밥상을 푸짐하게 차려 놓았다. 무엇이든 끓여 놓으면 맛있어 보이는 노란 냄비에 망둥이 매운탕이 한 가득이다. 도대체 이 많은 망둥이를 어떻게 잡았을까. 난 1시간이 넘는 동안 고작 한 마리밖에 못 잡았는데.

"이거 다 낚시로 잡은 겁니까?"
"그럼, 뭘로 잡것어, 다 낚시로 잡은 거여."
"실력 좋으시네요, 잘 안 잡히던데."
"아직 때가 안 돼서 그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밤이 피크여. 그 땐 낚싯줄을 넣기만 하면 딸려 나와, 너무 많이 올라와서 배따기 바뻐, 냉장고에 넣어 놨다가 반가운 사람 오면 끓여 주는거여."

'반가운 사람?', 내가 이 사람에게 반가운 존재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이곳에 온지 몇 달 만에 처음 방문한 터였기 때문이다.

그가 '선재도(인천시 옹진군)'라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는 소식을 들은 건 지난 7월 말 즈음. 그 때부터 전화 통화를 할 때 마다 "꼭 한번 갈게요"를 남발하다시피 했다.

펜션 앞 갯벌
 펜션 앞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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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선재도'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지방선거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직후에 외딴 섬 '선재도'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도 시흥에서 시의원을 지낸 이력이 있는 이른 바 '지역정치인'이다. 꽤 오랜 기간 지역정치계에 발을 담그고 있었고, 이순이라는 나이가 계급장처럼 붙어 있으니 '노정객'인 셈이다.

짠한 마음은 선재도로 가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러나 그가 운영하는 펜션 앞에 도착하면서부터 시나브로 부러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경치가 기가 막히게 좋았기 때문이다. 이정도 경치면 죄를 짓고 유배를 왔다고 해도 그리 억울할 게 없어 보였다.

앞마당은 큰 맘 먹고 한 시간만 걸으면 샅샅이 훑을 수 있는 아담한 갯벌이고, 그 옆에는 영흥대교가 시원스럽게 뻗어 있다. 갯벌 넘어 바다에서는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데, 이 모습을 한데 모아보니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망중한을 즐길 셈으로 고요해 보이는 갯벌에 발을 들였다. 고요하다고 느낀 건 내 착각 이었다. 갯벌에서는 갖가지 생명체가 쉴 새 없이 꼬물거리며 자기 몫의 삶을 부지런히 살아내고 있었다.

밤 낚시, 펜션 앞
 밤 낚시, 펜션 앞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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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틈나는 대로 앞마당 같은 바다에서 낚시질을 했다. 뒷마당 한켠 작은 텃밭엔 호박을 심어 반가운 사람이 오면 호박 부침개를 해 주었다. 도무지 바쁠 게 없는 삶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걸음걸이도 느긋해져 있었다.    

외롭지는 않을까! 좀 그럴 것 같기는 하다. 아무래도 도시 보다는. 허나 어쩌면 기우일지도. 그의 옆에는 음식 솜씨 좋은 부인이 있었고, 주말을 맞아 다니러 온 아들과 손녀들이 있었다. 수더분한 그를 만나기 위해 누군가 뻔질나게 들락거릴 게 분명했다. 이 정도면 '신선놀음'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성 싶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경관을 사람들은 일찍이 어떻게 표현 했을까 궁금해 포털에 '선재도'라 입력해 보았다. 보는 눈은 시공간을 넘어 누구나 비슷했는지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고 춤을 추던 곳이라 하여 선재도'라 이름 지었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땅 거미가 지고 영흥대교에 가로등이 환할 때 꼭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의 새 보금자리를 떠났다. 그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백미러에 비쳤다. 어둠이 모습을 감춰 줄 때 까지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담한 갯벌과 꼬리를 방정맞게 흔드는 망둥이가 돌아오는 내내 그림자처럼 등 뒤에 따라 붙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선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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