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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언니와 나는 한방을 썼다. 언니는 초등학교 6학년, 나는 3학년이었다. 우리 자매는 나이 차이가 나서 싸울 일이 별로 없었지만 잠잘 때만은 예외였다. 서로 이부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려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펼쳤다.

우리 집에는 방이 네 개 있었지만 방 하나는 물건들을 넣어두는 고방처럼 사용하는 곳이었고 아래채 사랑방은 할아버지가 거처하셨다. 나머지 방 두 개에서 부모님과 우리 4남매가 생활했다. 어린 두 동생은 부모님과 잠을 잤고 나머지 방 하나가 우리 자매 몫으로 돌아왔지만 밤마다 이부자리 쟁탈전을 하느라 조용할 날이 없었다.

조용한 집을 놔두고 무슨 방 타령이냐 하지만 집과 일터는 또 다른 개념이겠지요?
 조용한 집을 놔두고 무슨 방 타령이냐 하지만 집과 일터는 또 다른 개념이겠지요?
ⓒ 곽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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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자리 전쟁, 그리운 어린 날

그래도 내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중학생이 된 언니가 공부 때문에 집을 떠나 나 혼자 잠을 자게 되자 무섭고 외로워서 잠을 설쳤다. 언니가 그리워서 눈물을 짜기도 했다.

지금 나는 사랑채에 안채까지 두 채나 되는 집에 산다. 방도 많아서 네 개나 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방마다 다 주인이 있었지만 애들이 어른이 되어 집을 떠난 뒤로는 이 너른 집에 우리 부부만 산다. 겨울이 되어 연료비 걱정을 해야 할 때면 우리가 너무 큰 집을 차지하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자책을 할 때도 있다. 이렇게 노는 방이 많은데도 나는 요즘 또 다른 방 하나를 얻을 궁리를 한다. 내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모종의 작전을 짜기도 한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타박을 준다.

"집이 이렇게 넓은데 또 무슨 방을 얻으려고 해?"

남편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내겐 작업실이 필요하다는 것. 자칭 작가인 나는 글쓰기를 제일 우선으로 두고 산다. 30년 가까이 살림을 살았으니 이제 집은 가만둬도 저절로 굴러간다. 애들도 다 자랐으니 내 손이 갈 일도 별로 없다. 글쓰기에만 열중해도 괜찮을 연륜이 된 셈이다.

글이란 게 그냥 뚝딱 나오는 줄 알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오죽하면 글쓰기의 대가이신 고 박완서 작가도 글쓰기의 어려움을 여러 번 토로했겠는가. 그러니 나처럼 신출내기 작가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일 못하는 목수가 연장 탓한다더니 나는 글 쓸 환경이 주어지지 않음을 늘 한탄한다. 돈 버는 일을 그만두고 이제 쉬면서 글만 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다시피 하는 게 요즘의 나다.

그런 나를 보면서 남편은 의아해한다. 방이 이렇게 많고 집안일 할 것도 별로 없는데 왜 집을 놔두고 도서관에 가서 글을 쓰느냐면서 방 탓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게 또 그렇지가 않으니 집에 있으면 자꾸 딴짓을 하게 되고, 산만해져서 집중이 안 된다. 그래서 남편에게 항변한다.

"애들이 뭐 자기 방이 없어서 독서실에 가나? 그곳에 가야 집중이 잘 되니까 가는 거지."

집 놔두고 독서실에 가서 공부하는 애들을 이해 못 했는데 이제야 알겠다. 문제는 분위기라는 것을.

꿈을 펼칠 '내 공간'이 필요했다

강화 아래 장판(장터)이었던 이 거리에는 옛 이야기들이 녹아 있습니다.
 강화 아래 장판(장터)이었던 이 거리에는 옛 이야기들이 녹아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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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아래 장판(장터)에 들어선 중앙시장은 농촌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로 인해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강화 아래 장판(장터)에 들어선 중앙시장은 농촌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로 인해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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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읍 대로변에 큰 건물 두 채가 나란히 마주 보고있다. 강화읍의 요지에 그 건물이 있다. 강화 중앙시장이다. 중앙시장이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16년 전 우리가 강화로 이사를 왔을 때도 있었으니 아마도 역사가 족히 30년은 됐을 것 같다. 건물이 들어서기도 전에 그곳은 중앙통이었다. 일명 강화 아래장판(시장)이 그곳이었으니 중앙시장의 역사는 강화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만 해도 강화는 경제가 잘 돌아갔다. 그때 강화의 땅값은 이웃한 김포보다 몇 배나 비쌌다고 한다. 인삼농사에다가 베 짜는 공장까지 있어서 강화에 돈이 많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아래장판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장이 열리는 날이면 사방에서 온 사람들로 강화읍이 들썩였고, 그 한가운데 아래장판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호시절도 어느 결에 지나갔다. 섬유공장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강화의 경제는 저물기 시작했고 장터 역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중앙시장은 아랫장터에 들어선 새로운 시장이었다. 반지하 1층에는 큰 슈퍼마켓이 들어섰고 지상 1층에서 2층까지는 옷가게며 신발가게 그리고 이불가게에 포목점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호황을 누렸다. 중앙 시장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잘 돌아가던 중앙시장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문을 닫는 업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장사를 하는 점포보다 셔터가 내려진 곳이 더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농촌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로 경제 활동을 하는 인구가 줄었기 때문이었다.

텅빈 시장 거리
 텅빈 시장 거리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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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장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저 좋은 자리에, 저렇게 큰 건물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니 아깝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곳을 다른 용도로 쓸 수는 없을까. 강화군에서 매입해서 주민들을 위한 시설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지난 여름부터 중앙시장에 조용한 바람이 불고 있다.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머리를 모아 시장을 살릴 방도를 찾고 있다. 강화읍이 예전의 번성을 찾아 사람들로 북적이고 떠났던 젊은이들이 다시 찾아왔으면 하는 꿈을 꾸며 일을 벌이고 있다. 

비누 공예를 하는 처녀는 자기 가게를 낼 꿈에 부풀었다. 만화를 좋아하는 월숙 씨는 만화방을 내겠단다. 부인이 만든 빵을 자랑하며 나눠주기를 좋아하던 곽 선생은 아예 부인을 위한 빵 가게를 차릴 생각이다. 도자기 전시실을 차리겠다고 한 사람도 있고, 집 꾸미기를 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문을 즐겨 하던 광은 씨는 인테리어 가게를 열겠다고 한다. 클래식 애호가인 한 사람은 정년퇴직 후 음악 감상실을 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돈을 쫓기보다는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 모든 일이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비어있던 가게를 얻고 페인트칠을 하는 것도 한바탕 놀이였고 재활용 가구들을 가져와서 리폼을 하는 일도 즐겁기만 했다. 

텅빈 시장 거리, 활력 불어 넣을 수 있을까
 텅빈 시장 거리, 활력 불어 넣을 수 있을까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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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던 강화 중앙 시장에 새바람

농사를 짓는 이도 한자리를 얻었다. 채소를 꾸러미로 만들어서 팔겠다고 했다. 때마다 나오는 제철 야채들에 이웃에서 키우는 콩나물까지 얹어서 팔겠단다. 손맛 좋은 이에게는 밑반찬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들어왔다. 신바람 나는 놀이판이 벌어지고 있다.

그 이들의 놀이판을 기웃대며 구경하노라니 마치 내 일이기라도 한 양 신명이 났다. 그러다 문득 나도 내 방을 하나 가질까 하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놀이판에 구경꾼으로 머물지 말고 신나게 춤추며 한 자리를 차지하는 건 어떨까. 그래서 내친김에 중앙시장을 찾아갔다.

마침 주말이라 그런지 문을 닫은 가게들이 더 많아서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한복집 아주머니는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아예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고 건어물집 아주머니도 의자에 앉은 채 졸고 있었다. 미용실에만 사람 소리가 날 뿐 시장 안은 휑했다.

중앙시장 근처의 골목들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큰길을 벗어난 뒷골목이라서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저 골목들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의 강화를 그대로 안고 있는 골목이며 오래된 가게들이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녹아 있겠는가. 나는 그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다. 

오랫동안 아이들의 방과 후 학습을 돌봐주는 일을 했다. 십여 년도 넘게 했으니 그 방면에서는 일명 전문가라 자칭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일이 재미가 없고 더불어 몸도 힘들었다. 그만 두고 싶었지만 돈을 버는 재미를 놓기 싫어서 계속 일했다.

그러다 얼마 전, 한 글을 보게 됐다. 유수의 신문사 기자를 역임했고 이름 있는 단체의 사무총장까지 했던 사람이 그림 그리는 데 꽂혀 모든 일을 놓았다는 이야기였다. 돈벌이는 최소한으로 하고 그림 그리는 데만 열중하는데, 저자는 하도 좋아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냐"고 물었다. 그 글을 보고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에 답을 내렸다.

'돈에 끌려다니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비록 주머니는 가벼워지겠지만 그 대신 다른 것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한 건 당연하다. 가슴이 뛰고 설레는 건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게 아니다. 돈을 쫓아가는 것도 행복한 길이겠지만 꼭 돈을 벌지 못해도 신나고 재미있는 것들도 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돈보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다

어릴 때 언니와 함께 쓰던 방은 비록 좁았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나밖에 없던 앉은뱅이 책상은 언니 것이었지만 따뜻한 아랫목은 내 차지였다. 긴 겨울밤에는 윗목에 있던 고구마 가마니에서 고구마를 꺼내 깎아서 언니와 나눠 먹었다. 밤마다 이부자리 전쟁을 했지만 둘이어서 외롭지 않았다.

중앙시장 어름에 생길 내 방도 그럴 것이다. 좁은 골목을 따라 있는 가게들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주워 담고 색을 입혀보자. 강화읍이 담고 있는 사연들은 내게 그 옛날의 앉은뱅이 책상이고 또 아랫목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설렘을 안고 중앙시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행여나 내게 정신적인 사치를 부린다며 쓴소리를 할 사람들에게는 미리 방패 막을 친다.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내일을 꿈꿔본다.

'행복해진다는데, 이런 사치 좀 부리면 뭐 어때?'

학생들을 가르쳤던 월숙 씨의 만화방 꾸미기에 제자들이 찾아와서 일손을 보태주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쳤던 월숙 씨의 만화방 꾸미기에 제자들이 찾아와서 일손을 보태주고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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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화도, #강화나들길, #청년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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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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