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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열린 '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 결성 500일 문화제 모습
 지난 13일 열린 '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 결성 500일 문화제 모습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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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편지(백지선)

사랑하는 내 딸아, 중학교를 졸업하고 성심여고에 입학이 정해져서 네 손을 잡고 걸어온 이 학교. 정말 동화 속에 나오는 학교처럼 조용하고 아담한 학교였지.

너무나 조용해서 걱정했던 2년 전, 그런데 웬 청천벽력인지... 화상경마장이라는 상상도 해보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지. 지난해에는 우리가 싫다고 하면 없어질 거라는, 순수하리 만큼 바보 같은 엄마 마음으로 살았다.

지난 겨울처럼 추운 겨울이 또 있을까. 뼛속까지 시리게 아픈 매서운 화상경마장 바람은 마음에 상처를 내고 그것도 부족해서 동상으로 인한 관절염까지 엄마에게 선물해줬지. 올 여름은 무덥고 힘들었지만 예쁜 딸이 있어 견뎠단다.

우리 딸에게 안전한 통학로를 만들어 주고픈 엄마 마음. 엄마가 돈을 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고 좋은 대학 보내달라고 애원한 것도 아닌데... 오직 안전한 통학로 확보라는 이 소원 한 가지인데... 왜 이리 이 소원이 큰 소원이 되었는지 엄마도 생각하면 답답하단다.

이 소원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엄마는 불평하지 않으련다. 왜나면 나는 내 딸을 믿는다. 이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극복하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지. 내 딸은 내년에 졸업해서 이 길을 자주 밟지 않겠지만, 또 다시 예쁜 딸들이 올 것이고, 엄마 같은 엄마가 또 있어서 딸들을 지켜주겠지. 학교는 등불이 될 것이고 훌륭한 선생님이 계시니 엄마는 괜한 걱정 않으련다.

그러니 딸들아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 곁에는 항상 엄마가 있을 거니깐. 그리고 확신을 갖자. 이 길이 예전처럼 평화로운 길이 될 거라는 믿음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애써주신 선생님, 학부모님 주민 모든 어르신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지난 13일 열린 '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 결성 500일 문화제 편지낭송 모습.
 지난 13일 열린 '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 결성 500일 문화제 편지낭송 모습.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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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편지(성심여고 2학년 이정원)

엄마, 마사회가 왜 이 자리에 있는 이 건물로 들어서려는지 모르겠어요. 이 화상경마장에 얼마나 많은 투자금이 들어갔고 마사회 매출이 어떤지도 모르겠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풀린 눈으로 시범 개장 중인 이 곳으로 왜 오는지도 모르겠어요.

화상도박장이 생긴 여러 지역의 학급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이유도 모르겠어요. 도박을 레저스포츠로 말하고 경마꾼을 경마팬이라 말하며 화상경마장을 찬성하는 이유도 모르겠어요. 몇몇 사람들이 우리 학교를 마을의 등불이 아닌 상권 개발의 장애물로 여기는 이유 또한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런 나라도 이것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어요. 옳지 않은 일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요. 그 일은 대단히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에요. 주변에서 무슨 말이 들려와도 옳은 일을 관철시켜야 해요.

그러나 그동안 엄마의 고생을 보며 느꼈어요.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이 참 힘들다는 것을요. 월, 화, 수, 목, 금 열심히 일하신 후 주말은 항상 쉬시던 엄마가 이번 여름은 내내 반납했죠. 그 모습이 제 눈에 제일 안쓰러워 보였어요. 하루, 이틀은 이러한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며 약간의 화도 내시면서 의욕적으로 집을 나서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그러기에 엄마는 끝까지 집회에 참석하셨어요.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절망과도 같은 일일까요? 집회에 참석했던 몇 주 동안 엄마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던 거겠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그리고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들을 위해 애써주시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어요.

시험이 끝난 이후에 몇몇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걸 시작으로 합창대회가 끝난 날은 1,2,3학년 전원 참석하기도 했어요. 또한 방학 때는 1학년을 시작으로 8월 31일 2학년을 마지막으로 거의 참석했어요. 비록 우리들은 며칠간 집회에 참석하였지만, 이 일을 500일 동안 해왔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 걸까요?

하지만 엄마 나는 믿어요. 정의는 언제나 우리의 편이라는 것을요. 우리는 떼쓰는 게 아닌 합당한 권리를 지켜달라고 의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에요. 지금까지 오직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 힘써주신 엄마, 학부모님들, 선생님, 지역주민들, 그 외 우리들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태그:#용산 화상경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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